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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1 - 새 시대를 열어간 사람들
이덕일 지음 / 김영사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위대한 인물의 주변 사람들이 걸출한 재능을 지녔음에도 전설적인 인물에 가려 정당한 관심과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일이 흔히 있다. 예컨데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이 소크라테스 사후 어떻게 됐는지 알려주는 책은 거의 없다. 그들 역시 각 분야에 뛰어난 사람들이었는데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더불어 역사의 관심에서 멀어져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난 정말 궁금했다. 그들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정약용 형제들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허난설헌, 허균 남매와 더불어 조선시대 최고의 천재형제였던 정약용, 정약종, 정약전. 그들은 실학의 집대성이라는 다산학의 주인공 정약용에 가려 흔히 들러리로 언급되기 일쑤였으나 이 책에서는 그들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리고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정약용의 삶 역시.
실학자들은 흔히 현실정치에서 소외됐었기 때문에 그들의 사상이 위대했음에도 세상을 바꾸지는 못했다고 국사책은 언급하곤 한다. 하지만 정약용은 유배생활을 하기 전까지 현실정치의 일선에서 뛰던 벼슬아치였으며 정조의 총애를 받아 암행어사로 활동하기도 했고, 후에 재상자리까지 점지된 인물이었다. 정약용을 그토록 총애했던 정조는 어떤가? 실학자는 아니었지만 누구보다 강한 개혁의지를 갖춘 계몽군주였으며 국가를 위해서는 아버지를 죽인 정적과도 얼굴을 맞대고 정사를 의논했던 위대한 정치가였다. 하지만 당대 최고 인물들이 개혁의 흐름에 있었음에도 결국 세상은 바뀌지 못했다. 당시 다수를 점하고 있었던 기득권 세력인 노론 벽파가 개혁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국왕암살까지도 기도했던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현실정치의 중심에 있었으나 상황이 이렇다면 그들의 개혁의지는 바람앞의 등불과 같은 것이었다.
실제로 독살일지도 모르는 정조의 죽음 이후 정약용 형제의 운명은 급물살을 탄 가랑잎같이 전락한다. 당시 노론 벽파가 그들을 제거하기 위해 내세운 것은 그들이 천주교도라는 것이었다. 정약용 형제가 젊을 때만 해도 천주학은 서학의 일종으로 새로운 기술과 특이한 사상을 뜻할 뿐이었으나 천주교측에서 제사를 거부하는 강경노선으로 나가고, 조선의 지배층이 천주교를 성리학을 거부하는 이단으로 보면서 천주교는 금기가 된다. 정조 생전에도 천주교를 공언하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이었고 정조 사후에는 정적을 풍비박산 낼 수 있는 노론벽파의 최대 무기로 쓰인다. 그 철퇴를 맞은 것이 정약용의 집안이었다.
정약종을 제외한 형제들이 일찌감치 천주교를 버렸다는 것은 그들의 결백을 증명하는 방패가 되지 못했다. 한때 연관되어 있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결국 정조의 시신이 채 식기도 전에 정약용과 정약전은 유배를 가고, 천주교를 지키기 위해 가족들과 소식까지 끊었던 정약종은 천주교도로서 순교한다. 형제들 중 가장 늦게 천주교를 믿었으나 박해가 시작되고 다른 양반들이 모두 배교할 때도 끝까지 신앙을 지켰던 정약종. 베드로를 연상케 하는 그의 순교는 선교사도 없이 종교가 먼저 전파되었던 조선 천주교의 순결함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정약종은 죽었지만 정약용과 정약전은 살아남아 귀양길을 떠난다. 그리고 완성된 것이 정약용의 다산학. 그리고 어류 백과사전인 정약전의 수산어보였다. 유배객의 생활은 주민들의 외면 속에 가난과 외로움의 극치였다고 하는데 가까운 절의 스님인 혜장선사를 감복시켜 제자로 삼은 정약용이나 어부들과 어울려 지내며 아이들의 훈장노릇을 한 정약전의 유배생활은 그리 비인간적이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혜장선사는 한 젊은 스님으로 하여금 정약용을 시중들게 했는데 그 젊은 스님이 정약용을 시중들다 머리가 자라는 줄도 모르고 나중에는 본분을 잊고 물고기까지 요리하곤 했다는 시를 지으면서 정약용은 슬핏 웃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런 소소한 기쁨이 정약용을 위로하기에는 현실이 너무 비정했다. 풍비박살 난 집안과 유배생활 동안 죽어간 가족들. 하지만 결국 정약용은 자신의 운명에 초탈한 것 같았다. 그를 완전히 제거하려는 음모가 꾸며져도, 유배가 풀리지 않아도 개의치 않았다. 자신의 방대한 저작의 유일한 독자로 인정했던 형이 먼저 죽고 시대에 대한 기대도 모두 상실한 채 그는 어떻게 정신을 닦을 수 있었을까. 단지 우리는 그가 저술에 온 힘을 쏟으며 자신의 글이 후대에 전해지기를, 그래서 역사가 정약용과 그의 형제, 친구들을 왜곡 없이 평가해주기를 바랬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다.
시대와의 불화는 때로 역사와 악수하는 길이 되기도 한다. 부조리한 시대에 순응하지 않는 자의 용기는 역사를 믿는 데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래로부터 사람들을 안고 흐르는 역사에 오점을 남기지 않고 나아가 기여했다는 믿음. 그것은 후대가 지켜줘야만 살아남는 믿음이기도 하다. 그들이 믿은 것은 후대의 역사, 곧 우리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약용을 지키고 있는가. 이 책이 묻는 것도 그것이다. 정약용의 양심과 학문세계, 정약종의 순결, 정약전의 실학정신을 우리는 지키고 있는가. 정약용 형제를 안고 흘렀던 역사는 우리에게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