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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김혜자 지음 / 오래된미래 / 2004년 3월
평점 :
사람은 적당한 신파나 타인의 불행에는 눈물을 흘려주지만 뼈에 검은 피부만이 덮혀있을 뿐인 아프리카 아이의 튀어나온 두 눈은 마주보지 못한다. 절대적인 비참은 동정을 사기보다는 오히려 증오를 받는다. 고작해야 할 수 있는 것은 몸을 돌리고 손끝으로 약간의 돈을 건네주는 것뿐이다. 혹시 그들이 말을 걸지 않을까 두려워하면서.
김혜자도 생의 대부분을 그렇게 보냈다. 그녀가 아프리카와 조우하게 된 것은 우연에 가까운 일이었다. 월드비젼에서 그녀에게 친선대사의 일을 부탁하지만 않았던들 김혜자의 여행지는 아프리카가 아니라 유럽이었을 거다. 더없이 어울리지 않는가. 유럽과 우아한 배우인 김혜자는. 하지만 월드비젼의 요청을 받고 아프리카에 간 김혜자는 우리가 그토톡 적극적으로 외면하던 바로 그들과 만난다. 이 책은 김혜자가 10년동안 만나고 인연을 쌓은 그들,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그들에 대한 기록이다.
그들은 인간으로 존재하지 못했다. 우리에게는 통계로 제시되었을 뿐이다. 예컨데 몇 분에 한 명이 죽어가고 있으며, 몇 억이 물부족 상태로 지내고 있고, 하루에 몇 명이 지뢰에 희생당하는가에 대한 것. 세상에서 제일 먼 거리는 머리와 가슴까지의 거리라 그랬던가, 그런 수치가 우리의 가슴까지 내려가는 일은 드물었다. 주위 사람과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일도 드물었다. 비참한 상태에 놓여 있는 방글라데시인들이 세계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게 나왔다는 얘기는 즐겨하면서.
아프리카, 특히 오랜 내전이 계속된 시에라리온의 이야기는 눈을 감아도 악몽으로 떠오를 정도였다. 그들에 대한 공감과 동정보다는 두려움이 더 나를 사로잡았다. 단지 이야기를 전해들었을 뿐인데도. 자비도 용기가 있어야 하는 것이었던가. 이런 일을 보거나 듣고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증오지만, 사실은 그것도 회피일 뿐이다. 어떻게 해도 비참한 사람은 없어지지 않으니 모든 노력이 헛수고라는 생각도 회피일 뿐이다. 그 중의 한 사람에게 손을 내민다면 한 사람의 생명이 구해지고 손을 내민 사람의 영혼도 구해지는 것이 아닌가. 인간은 그렇게 시작해야 하는 존재인 것 같다.
그렇다 해도, 아직 텔레비젼에 나오는 그들의 나뭇가지같은 팔다리와 파리가 끓는 눈을 똑바로 쳐다볼 자신은 없다. 굶주려 벌판에 쓰러져 있는 아기와 그 옆에 아기가 죽기를 노리고 앉아 있는 새를 찍어 퓰리처상을 받은 젊은 사진기자는 고국으로 돌아간 뒤 자살했다고 한다. 우리는 괴로워하지 않고 살기 위해 그들을 외면하지만, 그곳에 비참이 있는 이상 부유한 우리에게 영원한 안식은 없다. 그들을 '그들'이 아니라 '우리'라고 부르게 될 때, 그들의 비참한 모습에 등을 돌리지 않고 껴안을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인간'이 될 것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요, 생각하는 존재요, 신의 영혼을 닮았다고 말하는 존재라면 우리는 아직 인간이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