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
목수정 글, 희완 트호뫼흐 사진 / 레디앙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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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독립하는 것이란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며, 고로 사회의 규칙을 어느 정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원래 사회생활을 싫어라 하는 내가 독립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던 이유는 내가 독립하지 않으면 날 먹여 살릴 다른 가족이 두 배로 사회생활의 고달픔을 겪어야 한다는 걸 실감했기 때문이다. 독립이 무엇보다 소중했던 나는 사회생활의 여러 규칙들도 존중하리라 다짐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고, 멀쩡하게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나름의 미덕과 존경할 만한 점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삶과 사회를 반추하지 않고 세월을 보내는 사람은 참으로 매력 없고, 때때로 너무 무신경하게 다른 사람의 자존심에 상처 낸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 직장선배들의 열이면 열 똑같은 질문과 강요로 지쳐갈 무렵 만난 이 책은 빵틀처럼 반듯하게 모양이 잡혀 가던 내 정신을 번쩍 나게 해주었고, 새롭게 힘을 낼 수 있는 근육을 만들어 주었다. 
 

그렇다. 세상에는 이렇게 살고 싶은 사람이 너무 많고, 실제로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이렇게 사는 사람이란 삶의 중대한 기로인 30살에 외국으로 기약 없는 유학을 떠나버리는 것을 말하며, 길거리에서 만난 예술가와 오랜 사랑에 빠지는 것을 말하며, 비혼으로써 아이를 낳고 행복해하는 것을 말하며, 확고한 자기사상을 가지고 사람들과 격렬히 논쟁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그것도 이 모든 미덕들이 악덕으로 취급받는 사회에서.

하지만 모든 예술가가 그렇듯, 자기 삶을 예술로 만든 그녀도 ‘그렇게 하는 것이 옳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아마도 그녀의 피는 녹색이거나 짙푸른 바다색이 아닐까. 피는 못 속이는 법이니까. 그냥 빨간색의 피를 갖고 있는 나는 도저히 목수정처럼 살 수는 없다. 나는 사람들의 편견과 강요를 그냥 농담으로 넘긴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 연애만 하진 않을 것 같다. 일을 소중히 여기지만 일과 놀이가 합치될 만한 직장을 구태여 찾지는 않았다.

목수정처럼 살지 않더라도 그녀의 책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던 것은 그녀가 애인인 희완의 예술을 보면서 느꼈던 것을 나도 느꼈기 때문이다. 실용성을 넘어선 아름다움, 삶의 자유로운 자락을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에. 먼 창공에서 우리가 사는 사회를 바라보게 해주었고, 삶이 답답한 것을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켜줬기 때문에. 어느 책에나 있는 말처럼 생각이 바뀌면 모든 것이 바뀐다. 하지만 그것을 체감하게 해주는 책은 별로 없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머릿속에 진짜로 바람이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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