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방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외딴 방이란 거의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인 경험 혹은 공간이 아닐까. 원하지는 않았으나 필연인듯 다가왔고, 지나고 나서 돌이켜보면 인생에서 절대 떼어놓을 수 없는, 통증인 동시에 찬란한 기억. 소녀 신경숙의 서른 일고여덟 방 중의 하나, 곰과 호랑이의 마늘쑥 냄새 진동했을 동굴, 그리고 창문을 열면 거센 바람이 불었던 5층의 나의 작은 방까지. 

소년소녀와 어른은 뭐가 그리 다른 존재이기에 어른이 되기 위해 그 아득한 공간을 거쳐 나와야만 했나. 그 공통된 외딴방의 시련 하에서는 고대 신화와 1970년대, 2000년대라는 시간차도 부질없어 보인다. 

쇠스랑으로 자기 발을 찍고도 태연할 수 있는 오기가 푸르등등한, 동시에 꿈과 좌절에의 공포로 온몸이 팽창하는 때. 막연하게 그려보는 꿈만으로도 벅찬 그때 괴물같은 도시 서울에 올라와 공장 노동자와 야간학교 학생으로, 두 오빠와 한 명의 언니와 단칸방 생활을 해야 했던 16세 소녀의 혼란스럽고 망설임 가득한 내면이 나의 것인 듯 생생하다. 소녀와 환경과 시대가 다른 내가 그토록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혼란과 주저로 가득한 쌍동밤같은 내면의 일치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늘쑥을 먹어야만 하는 모든 인간의 운명과 함께. 

하지만 그뿐이라면 외딴방의 회상이 그리 인상적이지 못했을 것이다. 외딴 방에 있는 그 소녀의 의외로 단단한 뿌리가 난 몹시도 부러웠고, 감동적이었다. 혼란스럽고도 혼란스러운 시대와 노동자인 동시에 작가지망생이라는 애매한 정체성의 와중에도 소녀에게는 든든한 두 명의 오빠와 한 몸처럼 붙어다니던 사촌언니가 있었고, 고향에는 두 명의 동생과 부모님이 언제나 소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풍요로운 고향, 그리고 따듯함과 서로에 대한 책임감이 넘치던 가족은 그녀가 쇠스랑으로 발을 찍고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그리고  너무 막연해서 두렵던 꿈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해주었다. 

회사와 공권력에 쫓기던 동료 노동자, 가난과 실연으로 자살한 이웃 언니,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어른이 되어버린 무수한 사람들이 그녀의 운명이 아니었다고 누가 말할 수 있으랴. 충분히 그럴 수 있었음에도 그녀는 단단한 뿌리와, 아마도 순수함으로 외딴 방을 빠져나와 꿈을 이룬 사람이 되었다. 

그냥 인간보다, 곰과 호랑이의 꿈이었던 인간이 더욱 눈부시지 않은가. '외딴 방'에는 소녀의 어려움과 가족과 친구들의 고단함, 시대의 아픔이 생생함에도 희망을 봤을 때처럼 마음이 환하다. 아마도 동굴의 시험을 통과한 한 인간과, 그녀와 같이 살아남아 그녀의 책을 읽으며 이야기하는 가족과 옛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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