겐지 이야기 1 - 아사키유메미시
야마토 와키 지음, 이길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겐지이야기는 아름다운 미남자와 우아한 여인들이 나오는 일본 귀족의 연애담이다. 만화책 1권을 읽었을 뿐이지만 시간이 꽤 오래 걸렸던 것은 '아름다우신 분', '냉정하신 분', '고귀하지만 의지가지가 없으신 가엾으신 분' 같은 나긋나긋한 일본어투와 사랑에 한숨짓는 그들을 보노라니 나마저 나른해져서였던 것 같다. 마치 내가 몇 겹인지도 모를 비단옷에 감싸여 키보다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리고 비스듬히 앉아 있는 듯한 나른함. 사실 겐지이야기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읽어야 할 것 같다. 고대와 중세를 거치며 일본의 귀족들은 반쯤 비치는 발을 옆에 세워두고 비스듬히 앉아 이 책을 읽지 않았을까. 천황의 아들이지만 동궁(후계자)이 되지 못한 아름다운 청년 겐지의 연애편력을 부러워하면서.  

사실 이런 나긋나긋함과 친하지 않은 나는 겐지이야기가 왜 일본 최고의 고전으로 인정받고 있는가 하는 호기심을 푸는 게 가장 큰 목적이었다. 오래 전에 원작 겐지모노가타리를 읽다가 실패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만화로 나온 것은 고맙기만 했고. 일본에서 이 만화가 청소년에게 권장되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등장인물 겐지는 일찍 어머니를 잃고 어머니와 닮은 첫사랑마저 아버지의 새 부인이었기에 포기해야만 하는 사랑에 좌절한 인물이다. 하지만 고귀한 신분의 미남자에 학식과 예술적 소양도 뛰어난 그는 장안 제일의 도련님으로 명성을 날리게 되고 첫사랑을 잊기 위해 여러 여인을 만난다는 것이 1편의 내용이다. 그가 만난 여인들에는 나이 많은 귀부인, 어린 소녀, 신분은 낮지만 진실한 여인, 천하의 추녀 등 매우 다양한데 심지어는 실패한 첫사랑이었던 계모(그래봤자 나이차는 얼마 나지 않지만)와의 사랑도 이루어진다. 

좌절한 첫사랑까지 이루었지만 그의 연애편력이 그칠 것 같지 않은 예감이 드는 것은 왜일까나. 아마도 겐지이야기의 세계가 여리고 아름답고 방탕하고 힘없는 한숨으로 이루어진 세계이기 때문일 것이다. 겐지는 아마도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계속 다른 여인들을 찾을 것 같다. 안타까운 사랑에 한숨짓지 않는 겐지는 더 이상 겐지가 아닐테니까. 일본에서 이 이야기가 계속 읽혀왔던 것은 우아한 애상미로 가득찬 세계를 사랑했기 때문이 아닐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아무리 만화책이라도 시리즈의 끝까지 읽지는 못할 것 같다. 비슷한 시대를 다루고 있는 만화라면 '음양사'의 그림이 훨씬 뛰어나며, '세이메이'의 등장인물이 훨씬 입체적이다. 겐지이야기의 애상적 세계는 나와는 안 맞는 듯. 다시 한번 유명한 고전 겐지모노가타리를 살짝 엿봤다는 것에 만족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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