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화점 - A Frozen Flowe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스포일러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주진모가 연기한 고려왕 때문이었다. 주진모란 배우를 좋아하기도 하지만(왜 안뜨는걸까?) 그가 연기한 고려왕의 캐릭터가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원의 간섭에 분노하는 자존심 강한 군주인 동시에 예술적 재능과 감성이 뛰어난 예술가이자 남자를 사랑했던 동성애자의 내면을 지닌 왕. 영화에서도 그런 왕의 캐릭터는 잘 살아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의 견인차는 역시 삼각관계의 주인공인 홍림(조인성)이다. '신하의 도리는 왕을 위해 죽는 것'이라는 충성심으로 왕의 사랑을 받은 아름다운 호위대장. 어렸을 때 궁에 들어와 20대 초반까지 왕의 호위무사이자 애인으로 살았지만 왕후와의 잠자리 이후로 급속도로 여자와의 사랑에 빠져드는 캐릭터. 남자와 여자의 사랑을 동시에 받으며(더구나 그 둘은 한 나라의 왕과 왕후!) 권력싸움과 애증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홍림의 캐릭터는 지나치게 만화스럽지만 그만큼 신중하게 표현됐어야 할텐데, '쌍화점'의 실패요인이라면 이 홍림의 캐릭터를 잘 표현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조인성의 연기가 비록 '대단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것은 조인성의 연기력부족보다는 감독의 미숙함 때문이다. 

시종일관 홍림을 사랑하는 왕의 캐릭터는 일관성이 있다. 비록 최고권력자인 왕이 한 사람만을 주야장천 사랑하는 것이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해도(양귀비도 수많은 후궁 중 하나일 뿐이 아니었던가) 왕이 극중에서 동성애자임과 동시에 성불구자임을 암시하는 만큼 한 사람과의 정서적이고 육체적 교류만을 원했다고 한들 이상할 것은 없다. 일관성이 없는 것은 홍림인데, 홍림은 분명 충성심이 강한 캐릭터였고 왕과 밤낮을 함께 하는 것을 좋아하는 듯 보였다(홍림이 관객 모두를 속였다는 반전은 아니겠지요 설마). 왕후와의 관계에 빠져든 후조차 왕에게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끝내는 왕에게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왕에게 정사장면을 들킨 후의 홍림은 완전히 변해서 왕후와의 '연모'를 운운해 왕을 화나게 하더니 왕후가 죽었다고 착각을 한 후에는 일당백으로 호위무사들을 전부 죽인 다음 왕의 방으로 쳐들어 가 살벌한 칼싸움을 벌이다 왕을 죽인다. 이 얼마나 이해 안되는 비약인가. 

왕후 또한 왕의 사랑을 독차지한 홍림이 눈엣가시였지만 홍림과 하룻밤을 보낸 후로는 급속히 그와의 관계에 빠져들어 왕에 대한 충성과 고려에 대한 사랑이라는 평소의 소신을 가볍게 버리고 홍림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역모를 부추기는 것도 마다치 않는다. 

육체적 사랑이 이렇게 강력한 것이었던가? 사람으로써 절대 용서할 수 없는 것이 정적과 연적이라는데 연적이었던 홍림과 육체적 관계를 맺었다고 해서 목숨을 바치는 연모를 할 수 있을까? 누구말대로 정사신을 반으로 줄이고 홍림과 왕후가 서로에게 빠져드는 과정과 관객도 납득할 수 있는 왕후의 매력을 부각하는데 필름을 썼다면 이렇게 황당하지는 않을텐데.  

'색계' 이후 정사씬을 통해서 두 인물의 내밀한 감정을 표현하려는 시도가 많아지는 것 같은데 유사품만 범람하는 것 같다. 앵글 하나 인물의 동작 하나도 모두 전체의 이야기로 맞춰지는 색계에 비해 쌍화점은 너무 허술했다. 감독은 출중한 미모의 배우 둘이 섹스를 하면 관객 모두가 그 둘이 사랑에 빠졌다고 납득하리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밤낮없이 섹스만 하더니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 서로에 대한 '연모'를 부르짖으며 왕도 나라도 친구도 버리는 홍림과 왕후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캐릭터였다. 정욕이 아무리 강력한 감정이라고 한들 연모와는 분명 다를텐데, 차라리 둘 중 하나만 택해서 이야기를 끌어나갔으면 어땠을까 싶다. 감독은 한국 상업영화에서는 대담하게도 섹스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결국은 '둘은 서로를 사랑했답니다'라는 안이한 결론으로 빠져버림으로써 영화를 아쉽게 만들었다. 홍림과 왕후는 사랑의 늪에 빠졌지만 제일 심하게 빠진 것은 사실 감독이 아닐까. 감독 따라 영화도 수렁으로 빠졌고.

사실 '쌍화점'은 주진모의 연기나 조인성의 매력, 시대극의 배경 등 볼만한 게 많은 영화인데 개연성이 떨어진 스토리가 안타까울 뿐. 배우로서나 사람으로서 쉽지 않은 전라노출을 감행한 배우들이 너무 소비된 것 같아 아깝다. 더불어 '동성애'라는 소재 또한. 새롭고 흥미로운 소재를 찾는 것은 쇼비즈니스의 당연한 속성이고 그런 면에서 '동성애'는 영리한 선택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차별 받는 소수자인 동성애자를 소재로 사용하려면 이성애적 사랑 사이에서 소외되고 마는 캐릭터로는 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성애적 '연모'의 굳건함을 위해 희생되는 소재로 '동성애'를 보는 것은 씁쓸하다. 이해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용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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