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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식 옥중서한 1971-1988
서준식 지음 / 야간비행 / 2002년 8월
평점 :
절판
나는 맑은 물에는 고기가 살 수 없다는 말을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정말 맑은 물이란 그 깨끗함으로 우리를 울리면서도 두려움을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맑은 물과 더러운 물을 분별하는 이에겐 이미, 맑은 물을 편하게 느낄만한 순수함이 없기 때문에.
서준식 선생이 어떻게 감옥에 들어가게 됐는지, 70년대의 시대상황이 어땠는지 나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다만 그가 맑스주의자였다는 것, 친북주의자였는지, 진실된 사회주의를 꿈꾸었는지 간에 맑스주의자란 한 마디면 감옥에서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 뿐이다. 80년대생인 나에게도 요컨데 그건 상식이다. 그리고 서준식 선생이 '전향'이란 것을 거부하고 17년간 감옥에 있었던 이유도 그것이었다. 개인의 사상에 법이, 국가가 심판을 내릴 수는 없다는 것. 그는 일개 힘없는 개인이기에 감옥에 가고 고문받는 것은 거부할 수 없었지만 감옥에서 나오는 것은 거부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쓰여진 편지는 그의 살과 피를 실은 채 그의 형제자매에게로, 부모님에게로, 친척들에게로 전해졌다. 그의 편지를 읽고 가슴이 찔린 듯 아프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나는 끊임없이 서준식 선생이 꾸짖는 순자나 영실이가 되어야 했다. 확실히 나는 세속적인 욕망을 버리지 못했고, 냉담하며, 아프고 힘없는 사람들을 너무나 자주 외면한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그의 조카들처럼 외치고 싶기도 했다. '살아가는게 얼마나 힘든데! 그 모든 걸 갖추기에는 힘이 없어요' 라고.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세상의 문제를 속편히 망각해버리지 않는 이상, 그가 말한 대로 한발짝씩 나아가야 한다는 걸. 그래서 그는 진보주의자란 금욕적이어야 한다고 말했고, 진실은 외롭다고 말한 것이다.
갑자기 '월든'의 작가 소로우가 불합리한 세금에 반대해 납부거부를 하다가 감옥에 갇혔을 때의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쇠창살 안에 갇힌 그를 면회온 저명한 작가였던 친구는 그에게 묻는다. '왜 거기 있는가?' 소로우는 태연히 대답한다. '그러는 자네는 왜 거기 있는가?'
아마도 서준식 선생은 자기를 불쌍하다, 무시무시하다, 대단하다라고 말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정작 갇힌 사람은 누구인지 묻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편지를 읽는 나 역시 갇힌 사람임을 절실히 느낀다. 하지만 나는 내가 이기심의 감방에 갇힌 것도 거의 망각하고 살아간다. 착하게 산다는 것은 착하지 않은 모든 것에 반대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서준식 선생의 말대로 착하게 산다는 것은 까무러칠 정도로 힘든 일이다. 타인들의 벽에도 부딪히지만 우선 나의 이기심을 버려야 하기 때문에.
내가 얼마나 착하게 살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벌써부터 속이 쓰리다. 만약 내가 그의 조카였다면 누구보다 가혹한 편지를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의 매에 끊임없이 울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끔이라도 칭찬이 섞인 편지를 받는다면 다시 용기를 내 나의 감옥에 달린 창살을 하나하나 부러뜨리려는 시도를 해 갈 것이다. 그의 편지는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 자신을 부족하다 말하며, 보는 사람도 그가 사회적으로 대단하게 될 거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따르고 그의 말에 공명하게 되는 것. 여지껏 나에게 무의미한 낱말이었던 '진실의 힘'이 무엇인지 가르쳐준 그에게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