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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그리고 3천일 만의 귀향 - 전 전대협 남측 대표 박성희의 망명수기
박성희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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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는 서태지와 함께 10대 초반을, HOT와 함께 10대 후반을 보냈다(나는 그들에게 무척 열광했었다). 90년대의 쇼 대중문화란 그 전 세대처럼 소극적이지도, 지금처럼 지리멸렬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열정적으로 나의 사춘기를 지배했다. 그런 화려한 세계에 빠져 있었기 때문인지 나에게 민주화운동이나 운동권이란 퇴색된 과거, 정리된 시간들에 불과했다.
나는 운동권이란 존재를 몰랐던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할 일을 모두 끝내고 사라진 줄 알았다. 김영삼이니 김대중이니 하는 사람들이 내 생활에 위협을 미친 적이 없으니 난 민주화가 모두 이루어진 줄 알았던 것이다. HOT에 열광했던 몇 년 후 아직도 감옥에 양심수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아연한 심정을 내 또래는 알랑가!
하지만 내가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90년대에, 전대협이란 단체에서는 실현되지 않은 통일을 위해 현재진행형인 운동을 하고 있었다. 임수경을 시발점으로 매년 북한에 대학생들을 보내 분단현실의 견고함에 항의를 하는 것은 그 중 하나였다. 그리고 이 책의 필자 역시, 90년대 초반에 방북을 했고 그 후 8년 동안 베를린에서 망명생활을 하며 범청학련 남북해외 공동사무국장으로 남과 북, 일본의 운동권을 잇는 역할을 했다.
때로는 그들로부터 존중도 받았지만 마침내는 셋 모두로부터 매도당하기도 한 남북해외 공동사무국의 일원이었던 박성희. 세 나라의 운동권 모두를 떠나 베를린이란 제3국에서 객관적으로 통일운동을 판단했던 그들의 숙명이었을까.
단체의 이름으로는 거창함을 넘어 비장함까지 느껴지지만 그녀의 기록은 위선을 부리지 않는 사람 특유의 솔직함으로 세대도 다르고, 동시대에 살아있었지만 동시대에 살지 않았던 나에게 자신이 겪었던 시간을 조곤조곤 얘기해주었다. 방북해서 북한사람들과 함께 보냈던 시간들, 베를린 망명신청국에서의 슬픔, 방 한칸이 전부였던 사무실에서 자신들이 아끼고 아꼈던 낡은 컴퓨터와 부채질을 해줘야 작동하는 팩스에 대해. 그리고 3000일의 시간에 대해.
한쪽으로의 치우침, 자기 입장을 고수하기 위한 배타는 세 나라의 운동권이 협력해야 할 시점에서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고 그녀는 회상한다. 무엇 하나를 이상화시키고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는다면 살기는 무척 편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개혁, 혹은 현실의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기도 했다. 자기를 양보하지 않으려는 순간 상대를 나쁜 쪽으로 몰아갔던 현실. 결국 8년 후 그들이 귀국했을 때 그들을 이해하고 반겨주는 '동지'들은 없었다.
하지만 전대협의 후신인 한총련이 그들을 저버렸다고 해서 그들의 운동이 끝난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모를때도 실현되지 않은 민주화를 위해 행동한 사람들이 있었듯이. 박성희는 귀국한 뒤 양심수들을 석방하기 위한 활동을 하겠다고 했었다. 지금 그녀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모르나 베를린에서의 시간을 견뎌내고 단련된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이라면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 같다. 20년 후에, 50대가 되었을 그녀의 두 번째 회고록을 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