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시선 - 당대편 107 중국시인총서(문이재) 107
김민나 엮음 / 문이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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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세상에 좌절한 시인들은 때로 귀신의 세계와 친해지기도 한다. <요재지이>의 포송령도 그랬지만 포송령을 위로했던 다정한 귀신들은 이하의 세계에서는 그나마 자취가 없다. 만지기만 해도 물들어버릴 것 같은 선명한 색채와 귀를 스쳐지나가는 찬 기운 머금은 소리들로 그 아련한 존재를 알릴 뿐이다.

이하 자신이 그러했기 때문일까? 요절한 천재의 생애에서 보이는 애절함과 아련함이 그의 생애에도 그대로 흐르고 있었기 때문일까? 지금 22살인 나로서는 27살에 죽는 삶이 상상되지 않는다. 자살같은 자발적 선택이라면 모를까, 27살에 목숨이 다해 스러져가는 죽음이라면......

그랬기에 오랜 시간동안 병을 앓아와 짧은 생을 예감하고 있었던 이하가 이미 인정받고 있었던 시재로 과거에 급재해 청운의 꿈을 펼쳐보리라는 젊은이다운 열망이 사람들의 질투로 방해받아 무너졌을 때 그의 생도 같이 곤두박질쳤을 거라는 걸 너무도 잘 상상할 수 있다. 그는 '탄환맞은 까마귀'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낙향할 때 수레에 실려갔을 정도로 악화되는 건강과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맡아야 했던 지방 하급 관리의 자리 중 무엇이 그를 더 좌절하게 했을까. 다만 입신양명의 꿈마저 시 창작의 몫으로 돌릴 수밖에 없었던 그에게 '선비님이 있어 시가를 노래하지 않는다면 누가 있어 깊어가는 가을을 원망하겠습니까.'라고 위로할 동자가 상상이 아니라 실제로도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지만 '술 마시며 하늘을 큰소리로 불러보지만 구름은 열리지 않는다.'
천지마저 그를 버렸다고 생각했을까.

이하는 결국 과거에 실패한 뒤 6년, 하급 관리의 자리를 버리고 낙향한 지 3년 후 목숨을 놓아버린다. 남아있는 시는 240여 수. 같은 나이에 세상에 대해 비슷한 절망을 안고 죽었을 허난설헌이 자신의 시를 태운 것에 비하면 이하는 그래도 갸날픈 희망을 남겨놨던 것일까. 천년 전에도 울려왔던 북소리처럼 그의 시가 먼 후대에도 읽혀져 자신의 억울함과 좌절된 꿈을 이해해주기를.

'몇 번이던가 하늘에서 신선을 장사지낸 것이
북소리만 물시계 소리와 더불어 영원히 끊기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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