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민 이야기 - 유라시아 초원에서 디지털 제국까지
김종래 지음 / 꿈엔들(꿈&들)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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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을 들춰보면 십계명과 같이 역사에도 몇 가지 불문율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인간은 농경을 시작하면서 문명화단계에 들어섰다는 것이 제1계명이며, 황하와 유프라테스, 나일, 인더스 유역에서 4대 거대문명의 성장을 이룩했다는 것이 제2계명쯤 될 것이고, 동양과 서양의 이분법적 개념으로 역사를 파악하는 것이 나머지이다.

그렇다면 문명이란 무엇인가? 문자와 지식으로 인간세상을 밝히는 것. 즉, 계몽과 같은 개념이다. 그렇기에 원시종족에게는 문화는 있을지언정 문명은 없다고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명시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계몽이 유럽중심의 편견일 수 있듯이 문명이라는 개념도 정착민의 편견일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농사를 지으며 정착한 신석기 혁명, 강가에 건설된 4대문명은 모두 유목민이 아닌 정착민의 성공개념이며 동양과 서양을 연결했다고 하는 실크로드는 더욱 그렇다. 중앙아시아에 넓게 자리잡고 필요에 따라 이동했던 유목민들에게는 중국으로 대표는 동양과 유럽으로 대표되는 서양이 오히려 구석에 있는 변방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결국 유형물을 건설하고 기록을 남긴 이에게 손을 들어준다. 역사라는 개념도 그들이 만든 것이 아닌가. 시를 읊고 말을 타며 세계를 '유목'했던 여러 유목민족들의 역사는 외면되고, 그들의 형상은 혐오스럽게 '정착'되었다. 북방 오랑캐와의 전쟁에 나가 공을 세우고 돌아온 처녀, 뮬란을 다룬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처럼 그들은 반은 악마일 뿐인 미개인이다. 뮬란의 적, 그래서 만리장성을 쌓아서라도 막을 수밖에 없었던 정착민의 적.

하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좀 더 공정해야할 의무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20세기의 정착사회에서 21세기의 유목사회로 옮겨가고 있는 반유목민들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체성은 이미 변화하고 있다. 기동성, 흐르는 사고력과 감수성이 중시되며 재물보다는 정보가 실력의 원천인 사회. 그렇지 못한 자는 이미 보조의 자리로 밀려나고 있다. 유목민들의 신화인 칭기스칸이 세계를 흔들었던 그때와 유사한 역사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바람의 소리를 듣고 있다. 붓으로 기록된 정착민들의 가치가 아닌, 수천년동안 떠돌다 이제야 다시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그들의 가치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좋은 것인가? 늘 그랬듯이 명확하게 가를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불안정과 혼란이 올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옛날 그들이 초원의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았듯이 살아남을 것이다. 다만 비단옷과 벽돌집에 집착하지만 않는다면. 성을 쌓고 안주하는 데에 집착하지 않고 말을 타고 세계를 누빌 포부가 있다면 불안정과 혼란에도 정착민보다 더 잘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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