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 평전
프랜시스 윈 지음, 정영목 옮김 / 푸른숲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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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는 예수보다 더 신비화된 인물이다.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인물이었고 학설은 도처로 뻗어나가고 인용되었지만 그의 정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있는 것은 신화뿐이었다. 마르크스란 거물의 몇몇 특징은 그 신화에 권위를 더해주었다. 그의 저작은 한 개인의 수준을 뛰어넘은 양과 질을 자랑함으로써 천재란 한 사람의 일생으로는 이룰 수 없는 업적을 이룩한 사람이라는 촌평에 확신을 부여했다. 영향력은 더 거대해서 그를 숭배했던 쪽이나 비판했던 쪽이나 마르크스의 그림자 아래서 20세기를 지나왔다. 적어도 자본주의와 그 대안으로 내세운 사회주의를 다루는 데 있어서 마르크스보다 뛰어난 사상가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속표지의 프랜시스 윈의 사진을 보면 '그래서 어쨌다고? 마르크스란 친구가 어떤 인물인지 당신이 알기는 하나?'라고 묻는 것 같다.

마르크스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천재도 알고 보니 평범한 인간이었다는 공식은 마르크스에게는 맞지 않는다. 젊을 때부터 거인같은 지성으로 좌중을 사로잡은 선동가이자 이론가. 밤늦게까지 맥주집에서 난동을 피우고 밤거리를 배회했던 방탕아. 독설과 논쟁의 선수. 질투와 과시욕의 소유자. 그는 특별했지만 인간성은 좋지 않았던 것 같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인물이나 자신보다 튀는 사람을 모욕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가정적으로는 어땠을까? 마르크스는 연상의 귀족 숙녀인 예니 베스트팔렌과 오랜 약혼 끝에 결혼한다. 많은 아이를 낳았지만 성년이 된 자식은 셋,마르크스보다 오래 산 자식은 둘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모두 병으로 죽었다. 독일에서 망명한 후 유럽을 떠돌다 영국에 정착했지만 궁핍에서 벗어난 적은 거의 없었다. 한번도 생업에 종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부인을 끔직이 사랑했지만 하녀에게 사생아를 낳게 해 아내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기도 했다. 말년에 부인과 결혼한 딸 예니헨이 먼저 죽자 더이상 살 의욕을 잃고 얼마 뒤 그들을 따라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사회적으로는? 일단 활동을 시작하면 누구도 그에게 무관심할 수 없었다. 어느 조직에서나 마르크는 두뇌이자 실세였다. 그의 박학다식, 통찰력, 언변, 카리스마, 심지어는 외모까지 지도자가 되기 위해 타고난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저술들은 너무 늦게 인정받아서 그로 인한 혜택은 받을 수 없었다. 더구나 평생을 살았던 영국에서는 매우 인색한 평가밖에 받지 못했다. 그는 이미 살았을 때 인용되기는 했지만 장례식에는 11명밖에 참석하지 않았다. 센세이션은 일으켰으나 진가를 인정받지는 못한 결과였다.

유명하지만 이해되지 못했다는 것은 당대 뿐 아니라 20세기, 그리고 현재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전히 착취당하고 있는 노동자가 스스로 훈련된 이론과 행동으로 시민의 권리를 온전히 손에 넣을 때까지 그는 이해될 수 없을 것이다. 마르크스의 말대로 되면 손해보는 유식한 기득권층이 뭣하러 그를 이해하려 하겠는가?

마르크스를 비판했던 쪽이 의기양양했던 것은 소련이 망하고 난 뒤였다. 말하자면 러시아를 포함한 거대한 연방체가 무너지기 전에는 마르크스 한 사람의 가치를 무력화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회주의가 무너진 뒤 자본주의가 저 혼자 비틀거리는 거인의 몰골을 연출하고 있는 지금, 마르크스 이상의 철학이 부재한 지금, 그의 빈자리는 더 크게 느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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