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치콕과의 대화 한나래 시네마 3
프랑수아 트뤼포 지음, 곽한주 외 옮김 / 한나래 / 1994년 10월
평점 :
절판


히치콕이 영화가 탄생하기 전인 19세기 이전에 살았던 인물이었으면 어땠을까 상상해본다. 화가로서 만족하기에는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싶어 못견뎠을 것 같고, 문학으로 만족하기에는 이미지와 영상에의 갈급을 참지 못했을 것이다. 히치콕은 역시 카메라 뒤에 서서 필름을 다루며 관객의 반응을 기대하는 모습이 가장 어울린다. 그가 영화사에 기여한 만큼이나 영화도 그의 삶에 기여한 것이다.

예술이란 때때로 요즘 것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고전으로 분류되고 접근하기 어려운 장막이 쳐진다. 히치콕의 영화도 이 책이 아니었다면 나에게 그렇게밖에 생각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히치콕의 매니아인 프랑스의 영화감독 프랑수아 트뤼포가 50여 시간에 걸쳐 인터뷰했고, 히치콕의 말년과 죽음의 후일담까지 전하고 있는 이 책은 히치콕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영화 일반에 대한 풍부한 이야기를 전해줌으로써 히치콕과 영화 양쪽에 친하지 못한 이들에게 최상의 가이드 역할을 해주고 있다.

히치콕은 영화는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라는 원칙을 정점까지 밀고 나갔던 감독이다. 그는 무성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은 유성영화도 잘 만들지만 무성영화를 잘 만들지 못하는 감독은 신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영상만으로 감독을 감동시킬 수 없다면, 설명과 말을 통해서 영화를 만들 수밖에 없다면 더 이상 영화감독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구보다도 관객을 즐겁게 하는데 노력했고, 흥행에 성공함으로써 상업영화감독으로도 원하는 것을 이뤘지만 히치콕은 새로운 형식을 끊임없이 도입하고, 서스펜스를 능숙하게 다루며, 인물의 다양하고 병리적인 내면을 묘사하는 시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동시에 그는 평생을 불안과 콤플렉스에 시달렸던 인간이기도 했다.

히치콕은 주연으로 하여금 관객에게 환상과 즐거움을 주는데 발군을 재능을 보여줬지만 정작 자신은 조연들과 동일시했다고 한다. '아내가 바람피웠거나 좌절을 겪은 남자, 살인자나 극악무도한 사람, 다른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 사랑할 권리도 갖지 못한 사람, 참여하지 못하고 겉도는 사람'들은 그의 내면의 분신이었다. 남다르게 뚱뚱한 몸과 내향적인 성격으로 어렸을 때부터 남과 어울리기보다는 그들을 관찰하기를 선택했던 히치콕. 그는 평범하고 잔잔한 삶의 단면을 묘사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대신 긴박한 순간, 쫓고 쫓기는 사람들, 끔찍한 살인, 누명을 쓴 주인공을 통해 인간 내면의 단면을 묘사했다. 히치콕은 '삶을 반영하는 수단이 아니라 삶을 강화하는 매체'로 영화를 이용했던 것이다.

히치콕 뿐 아니라 히치콕이 예를 들었던 풍부한 영화유산에도 불구하고 요즘 영화들은 히치콕이 우려했던 현상 쪽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영상으로 관객을 압도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단순한 화면에(스펙터클하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될수록 쉬운 설명으로 일관하고, 혹은 기존에 있는 원작에 영상을 덧입히는 그림책 같은 영화가 많아지고 있다. 몇 장면의 도입부만으로 앞으로 벌어질 사건을 예시하고 긴장감을 만들어냈던 히치콕의 영화는 그런 의미에서 '고전'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히치콕을 샅샅이 인터뷰했던 이 책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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