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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작품선 ㅣ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43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진웅기.김진욱 옮김 / 범우사 / 2000년 3월
평점 :
품절
영화감독은 영상으로 관객을 굴복시키고 작가는 문장으로 독자를 굴복시킨다. 상상하지 못했던 수준의 글을 읽었을 때 독자는 작가의 세계관이나 이야기의 성격에 상관없이 백기를 들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럴 때가 독자에게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기도 하다. 독자란 자기를 진심으로 굴복시킬 수 있는 작가를 평생 찾아다니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아쿠타가와의 소설은 염세적이고 아름답다. 하지만 군더더기 없는 문장은 그런 소설이 흔히 가지고 있는 퇴폐적이고 나약한 단점을 노출하지 않는다. 그는 희망이란 불분명한 소망을 가지고 있지 않는 듯하다. 그의 소설은 염세적이지 않게 끝나는 경우가 드문데 군더더기가 없는 것은 문장 뿐 아니라 세계관도 마찬가지여서 대부분은 인간 본성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을 동반하고 있다.
'인간은 타인의 불행을 동정하지만 그가 그 불행을 극복하면 왠지 손해를 본 것 같아서 다시 그를 불행속으로 빠뜨리고 싶어한다<코>'같은 명확한 메세지가 있는 작품도 있지만 <군도(이 단편은 삼성출판사판에 있다)>처럼 헤이안 시대의 비정한 도적들의 세계를 묘사하면서 인간의 두뇌로 인한 잔인성과 감정으로 인한 추악한 동물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하는 경우도 있다. <덤불 속>에서는 자신의 입장에 따라 사건 자체를 다르게 말하는 사람들, 여인을 겁탈한 도적과 겁탈당한 여인, 그 여인의 남편이 자신의 감정 속에 함몰되어 누구도 사건의 진실을 알 수 없게 만든다.
어떻게 보면 아쿠타가와의 인물들은 모두 <덤불 속>의 남녀들과 같이 자기중심적 몰입에 빠져있다. 그들은 3인칭 시점으로 묘사되지만 누군가에게 관찰된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상황과 생각에만 빠져있다. 다양한 의견은 없으며 유일한 진실은 자신의 감정과 행동뿐이다. 극단적인 상황은 그런 인물들에게서 발생하는 자연스런 귀결인 것이다. 노파는 죽은 여인의 머리카락을 뽑아 가지지만 청년은 그런 노파의 옷을 벗겨 도망가고(라쇼몽), <지옥변>의 원숭이를 닮은 화가 요시히데는 자신의 그림을 위해서라면 소중한 사람들의 목숨까지도 희생시킬 수 있다. 사랑에 빠진 색골은 사모하는 여인의 대변까지도 아름답다고 여긴다(호색).
그래서인지 아쿠타가와의 소설을 읽는 것은 아주 선명한, 0.1g의 다른 어떤 것도 섞이지 않는 선명한 그 무엇을 봤을 때의 자극과 기쁨이 있다. 그 무엇을 예술이라고 하기에는 현실의 적나라함이 걸리고, 현실이라 하기에는 그 아름다움 때문에 망설여진다. 아쿠타가와의 소설은 현실과 예술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아쿠타가와가 자살한 것은 그가 그렇게 민감하고 비정하게 느꼈던 현실을 더 이상 소설의 아름다움과 형식 속에 녹여넣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유일한 단점을 꼽자면 단편들의 끝이 미완성인 듯 약간 모자란 것 같은 소설이 몇 개 있다는 점이다. 옥의 티랄까, 섭섭하기도 하지만 그것조차 없었으면 너무 압도당했을 것 같아 오히려 안심이 되기도 한다. 역시 독자란 작가에게 굴복해도 영원히 항복하고 싶지는 않은 오기있는 존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