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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이영의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평점 :
<이반 데니소비치...>를 읽으면 바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이 떠오른다. 어쩌면 그렇게 변한 게 없는지! 100년 이상의 시간차가 있지만 여전히 살이 떨어질 것 같은 추위 속에서 강제노동을 하고, 아사를 면할 만큼의 식사와 허름한 막사 생활을 한다. 얼음장같은 영창에 보내질 것을 조심해야 하며 간수들에게 복종하지만 교묘하게 줄다리기를 하면서 그들을 속이기도 한다. 사람들은 또 어떤가. 비열한과 밀고자가 있지만 경멸받지 않은채 수용소를 활보하고, 순수하고 어린아이같은 청년이 있으며, 외국출신의 특이한 죄수와 매일 성경을 읽어대는 독실한 신자도 있다. 19세기 제정러시아와 20세기 사회주의 소련은 적어도 수용소만큼은 부자지간보다 더 흡사하다.
그럼에도 두 작품의 차이는 분명해 보인다. <죽음의 집의 기록>이 지적이고 내성적인 귀족 출신 주인공의 시각으로 형이상학적이고 감정적인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면, <이반 데니소비치...>는 시골 출신의 평범한 촌부, 사상범따위가 아니라 전쟁에 끌려나갔다가 독일군 포로가 됐었다는 이유만으로 10년 형을 선고받은 슈호프(이반 데니소비치)가 주인공이다.
솔제니친의 정치관과 세계관 또한 도스토예프스키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명확하다. 소설은 시종일관 차분하게 진행된다. 누구에게나 명백해보이는 구 소련의 압제적이고 잔인한 수용소의 풍경을 마치 현대 한국의 소시민들이 회사에 출근하고 학교에 나가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적당히 불만을 가지고 있고 적당히 비참하며, 위사람과 주변의 눈치를 끊임없이 살피면서도 일면 담담하고 반쯤 포기한 속편함. 그들은 자신의 명의로 집사기를 바라는 대신 자신의 발로 고향에 돌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그날까지는 힘들어도 참아야지!
인간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적응하는 존재라지만, 나라면 글쎄, 그런 곳이라면 진작 죽지 않았을까. 슈호프도 자신있게 말하다시피 그런 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침착한 평상심이 필요한 것이다. 더불어 죽 한 그릇도 더 먹을 수 있는 기민한 눈치와 적당한 계획력과 대담함도.
이 책을 읽을 때 가장 놀라는 것은, 제목을 알고 읽었음에도 마지막 장을 닫는 순간 이 책이 하루의 시간을 다루고 있다는 점을 깨달을 때이다. 약간의 다른 에피소드가 곁들여진다고 한들 이 책은 슈호프가 새벽에 일어나서 밤에 잠들때까지의 기록이다. 사람의 하루가 이렇게 다사다난하고, 많은 생각으로 꽉 차 있으며, 추위와 굶주림, 많은 위험-영창행을 포함해서-을 피하기 위한 모험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 놀랍다.
슈호프는 이 수용소 안에서 십 년, 삼천육백십삼일을 보냈다고 한다(사흘이 더 늘어난 것은 중간에 윤년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나라면, 확실히 죽었을 것 같다. 적어도 정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니면 슈호프처럼 훌륭하게 적응했을까. 어쨌든 슈호프가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가 부인과 재회하고 계획한 대로 염색장이가 되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