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 1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14
빅토르 위고 지음, 방곤 옮김 / 범우사 / 199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장 발장은 빈곤과 도둑질로 인생을 시작해서 사랑과 자비의 성자로 세상을 떠났다. 놀라운 일이다. 그런 것이 가능한가? 이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음이 틀림없다. 한 사람의 성격이나 처지는 평생 바뀌기 힘든 것이 아니던가? 더구나 19세기 프랑스처럼 혼돈과 차별이 가득했던 시대에는.

그는 아이가 줄줄이 딸린 가난한 과부 누나에게 얹혀사는 나무치는 소년이었다. 그는 사회의 절대적 악을 온 생애로 체험했다. 빵 한개의 도둑질(집에는 굶고있는 조카들과 누나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19년간의 유형생활. 무지하고 말 없던 청년이 자신과 사회에 대한 증오에 가득찬 중년사내가 돼서 나오기에는 충분한 세월이었다. 일상적이지는 않지만, 이런 일은 요즘도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다. 불우함, 억울함같은 것들로 인한 삶의 종말은.

하지만 비참이라는 절대적 악에 포위된 이 남자는 곧 절대적 선을 맛보게 된다. 악이 빵 한 조각에서 시작되었듯이 선도 작은 호의에서 시작됐다. 전과자인 장 발장이, 출옥하고서도 손가락질당하고 감시와 모욕을 받던 그가 신부에게 저녁식사를 대접받고 흰 이불보가 깔린 침실로 안내되었던 것이다. 따듯한 저녁과 흰 이불보! 장 발장은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모두 자는 틈을 타 신부의 은그릇 세트를 훔쳐서 달아난다. 그는 혼란스러웠던 것이다. 밝은 빛에 눈을 뜬 장님이 앞에 있는 물건들을 휘저어 깨뜨려버릴 때처럼. 마음에 없는 도둑질을 하며 주교의 집 담장을 넘어서 도망칠때에도 장 발장은 적의와 불신에 가득 찬 사내였지만 그럼에도 여기서 갱생까지는 하룻밤의 시간과 은 촛대의 에피소드만 있으면 충분했다. 빛이 그리웠던만큼, 일단 따듯한 빛을 눈에 받아들일 수 있게 되자마자 장 발장은 누구보다도 밝음을 사랑하게 됐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내면이 지옥에서 천국으로 비상했다고 해서 사회가 그를 내버려둔 것은 아니었다. 성공한 사업가와 시장이 되었던 그는 다시 전과가 드러나 형무소에 가기도 했고, 흡혈귀같이 끈질긴 형사와 그를 등쳐먹으려는 사기꾼에게 평생 추적당하기도 했다. 시장으로 한창 시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을 때 자기로 오인받아 감옥에 가게 된 노인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전과자인 것을 밝혀야 하는 고통을 강요받았고(그때까지 쌓아올린 모든 것을 잃었음은 물론이다), 한밤중에 형사 자베르를 피해 도시를 헤매며 수도원에 숨고 이사를 다녀야 하는 고통을 강요받았다. 말년까지 사기꾼 테나르디에게서 생명과 재산을 위협받아야 했고 마지막으로 한 청년에게 딸을 빼앗기는 아픔까지 맛봐야 했다.

그럼에도 장 발장은 성자로 생애를 마쳤다. 어떻게? 은 촛대 때문이었다. 은그릇을 훔쳐간 장 발장에게 은 촛대까지 쥐어준 신부의 사랑때문에. 은 촛대를 받은 그날 밤 이후로 신부는 장 발장의 이상이었다. 그의 신이었고, 그의 심장이었다. 신부처럼 살 수만 있다면, 장 발장은 온 생애와 빈번한 고통까지도 감내할 수 있었던 것이다. 휴머니즘은, 냉소적인 인간이라면 안 그런 척 해도 모든 인간의 근원적인 바램이기때문에 리얼리즘이다. 장 발장이 바란 것은 그런 인간적인 사랑이었을 것이다. 마지막에 그가 미소지으며 성자의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한 줌의 사랑이 장 발장의 구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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