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즈맨의 죽음 범우희곡선 1
아더 밀러 지음, 오화섭 옮김 / 범우사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현실은 비하되고 과장되는 것보다 에누리없는 사실로 표현될 때 가장 잔인하다. 인간은 거대한 음모보다 간단한 구조조정으로 쓰러질 때 가장 비참하다. 사랑은 증오보다 무관심으로 멀어질 때 가장 쓰라리다. 인간의 비극을 낳는 것은 항상 사소한 것들이다. 패기만만한 때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작은 불공평, 말다툼, 부정한 처신이 모든 것을 망쳐버린다. 그 모든 것을 겪는 이가 노년의 문턱에 다다른 세일즈맨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고 이 비극의 주인공인 윌리 로먼을 전적으로 동정하고 그를 위해 울게 되냐하면 그건 아니다. 그리스 비극에 심취했던 아서 밀러였기에 윌리의 비극은 반은 운명이요, 반은 과거에 뿌린 씨앗의 인과관계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는 평생 성실했음에도 최근 나빠진 실적으로 젊은 사장에게 해고당한다. 늙음. 그가 버림받은 것은 늙음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돈을 잔뜩 벌고, 사람들을 많이 고용하고, 멋지게 외모를 가꾸며 늙음에 대비하지 못하고 할부금을 갚느라 시간을 흘려버렸기 때문에 세상에서 외면당한 것이다. 그런 그를 보는 것은 마음이 찢어진다. 나도 아버지가 있으니까. 하지만 두 아들이 어렸을 때부터 외모와 인기의 중요성을 불어넣으며 겉멋이 들게 하고 결국 변변찮은 성인이 된 아들에게 끊임없이 허황된 기대를 걸며 모두를 불행하게 만드는 윌리 로먼을 나는 비난하는 마음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나도 아버지가 있으니까. 그런 아버지를 원망하며 밖으로만 도는, 그리고 영원히 가족에게서 떠나려 하는 큰 아들 비프. 나도 형제가 있다. 그 모든 모습이 자신의 가족과 일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 있을까. 물론 나는 그들과 다르다. 유미 리가 말한대로 세상에 똑같은 가족이란 없으니까. 하지만 내가 윌리였다면, 비프였다면 바로 그들이 행동했던 그대로 했을 것 같다.

이 희곡은 굉장하다. 하지만 아서 밀러를 칭송하는 건 그만두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는 재능에 합당한 찬탄을 받아왔다. 하지만 그는 너무 리얼한 글을 써버렸다. 그를 존경하지만, 좋아하지는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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