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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사람들 - 도스또예프스끼 전집 ㅣ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윤우섭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2월
평점 :
절판
평론가와 독자의 눈은 다르다. 평론가는 객관적으로 그 작품의 가치와 수준을 정리하기 때문에 설득력이 높아지지만 흥분과 열정이 없이 무미건조하다. 그들은 책을 재미없게 읽은 것일까? 아니면 자제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타일렀을까? 아니면 몇번이고 다시 읽으며 연구하는 동안 처음의 감동은 사그라버렸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이다.도스토예프스키 전집에는 각 책의 말미에 국내 연구자와 국외 연구자의 작품론을 짤막하게 읽고 있는데 이 <상처받은 사람들>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나 또한 그 작품론을 읽고 마지막으로 정리를 하며 새로운 지식도 얻을 수 있었지만 노련한 평론가가 아니라 약간 모자란 독자의 입장에서 이 책을 읽은 사실에 감사했다. 이 신경질적이고 정열적이며 순수하고 다혈질적인 등장인물들이 몇 가지 사건으로 얽히며 개성을 드러내는 순간들을 이성과 머리로만 읽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고 객관적인 가치와 구성상의 약점을 평가할 수 있는 이성보다 그들의 아슬아슬하고 뜨거운 심리상태에 같이 몰입하는 것이 더 큰 독서의 세례였다고 확신한다.
<상처받은 사람들>은 도스토예프스키의 귀환을 알리는 본격적인 신호탄이다. 그리고 영원히 그의 개성으로 남을 도스토예프스키적인 세계를 보여준 예고편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감성과 휴머니즘, <스뻬빤치꼬보 마을 사람들>의 풍자와 골계미를 깎아내리려는 것은 아니지만, 도스토예프스키 자신도 완전히 몰랐을 그의 세계를 펼쳐놓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전작들과는 다른 두근거림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병에 걸린 채 방을 얻으러 뻬쩨르부르그 거리를 헤매는 젊은 지식인이자 이 소설의 화자 바냐, 너무 일찍 어둡고 불결한 세상을 알아버려 병적인 오만밖에는 가진 재산이 없었던 간질병에 걸린 거지소녀 넬리, 어리석은 아이같은 애인에게 버림받을 걸 알면서도 그를 사랑하는 아름답고 자부심 강한 처녀 나따샤, 순박하나 흥분을 잘하며 극도로 고집이 센 나따샤의 아버지 니꼴라이는 도스토예프스키를 읽는 사람에겐 일종의 편안함, 오래 아껴온 옷, 태어날 때부터 살았던 집, 어린 시절의 친구와 같은 느낌마저 준다. 전혀 부드럽지 않은 그들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게 신기하긴 하지만!
이 외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에 안 들었던 인물들인 어리석고 불가사의할 정도로 순진한 청년이자 나따샤의 애인인 알료샤, 호색한이고 탐욕스럽기가 괴물 수준이지만 늘씬한 외모와 귀족적인 태도로 능란하게 본성을 감추며 처신하는 알료샤의 아버지 공작도 꽤 두꺼운 분량의 소설이 진행되는 동안 어찌나 생생하게 묘사되는지 그 생생한 개성만으로도 그들을 용서하고 싶어질 정도였다.
행복한 결말인지 불행한 결말인지 모를 이 소설은 너무나 강렬한 이야기다. 정상적인 정신으로는 쓸 수 없을 것 같은, 끊어질 듯한 신경과 뜨거운 열 속에서 쓰여진 것 같은 이 소설은 그러나 조금의 불쾌함도 없이 읽는 이를 그 세계 안으로 끌고 들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