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의 꿈 외 - 도스또예프스끼 전집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박재만.박종소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3월
평점 :
절판


한 작가의 색깔이 결정되는 때는 언제일까. 도스토예프스키는 '늦되는 아이' 혹은 '대기만성'형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혹은 사형위기와 시베리아 유형 생활이 도스토예프스키에게 그토록 엄청난 영향을 끼쳤던 것일까? 어쨌든 앞세대 작가들을 끊임없이 패러디하던 도스토예프스키는, <아저씨의 꿈> 이전같은 열에 들뜬 몽상가의 옷을 벗어버리고 능청스런 희비극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여전히 서두르는 듯한 문체, 지금의 글이 자기 세계를 온전히 표현하지 못한다는 불만을 드러내는 듯한 문체만이 전작들과의 공통점이라 해도 좋을 정도다.

<아저씨의 꿈>은 연극적인 가정극을 보는 느낌이다. 한 부인에 대한 묘사로 이 소설은 시작되는데, 그 부인은 그 소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로 사교계의 권력으로 통하는 대단한 부인으로 묘사된다. 기품있고 세속적인 능력 또한 겸비한. 하지만 그런 고전적인 분위기가 계속될 거라고 생각한 것이 착각이었음은 곧 드러난다. 그 부인은 딸과 다 죽어가는 늙은 공작과의 결혼을 성사시켜 딸을 출세시키고 자신도 뻬쩨르부르크에서 한 자리 할 꿈에 부풀어 있는 부산한 여인이고, 공작은 거의 백치나 다름없는데다 꿈과 현실도 구분하지 못한다.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기품있고 자존심 강하며 아름다운 인물은 부인의 딸 지나지만 그녀조차 다른 우스꽝스러운 인물들 때문에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못할 정도다. 지나와 공작의 결혼을 성사시키려는 부인의 작전을 끝까지 비열한 방법으로 방해하는 지나의 약혼자 모즈글랴꼬프와 부인을 '어머님'이라고 부르는 부인의 남편까지 등장하면 소설을 희극과 비극을 넘나들 만반의 준비를 갖추게 된다.

하지만 부산스런 준비를 갖추고 발사된 이 소설은 결국 목적지에 다다르지 못하고 추락하고 말았다. 희극적인 부분은 분명히 리얼하고 재미있어 웃음이 피식피식 나오고 인물들 또한 생생하지만, 주인공인 오만한 아가씨 지나와 다른 인물들의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아마추어 연극처럼 되어버렸다.

자신의 내면을 들어다볼 수 있는 사람은 깊이있는 사람이지만 자신의 내면을 들어다볼 수 있는 작가는 재능있는 작가다. 그래야만 확고한 세계를 구축하고 다른 예술가들과 차별되는 작품을 창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누구나 그만의 세계를 인정하는 '혼의 리얼리즘의' 창시자 도스토예프스키. 누구와도 비교될 수 없는 그를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몇 십년의 모색기와 시베리아 유형을 제물로 바쳤어야만 하는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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