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 11 - 조선과 일본의 7년전쟁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 11
이이화 지음 / 한길사 / 200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나라의 비극은 난세마다 무능력한 지도자를 만난다는 것이고 행운은 그럼에도 끝내 나라가 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약소민족중에 한민족만큼 생명력이 질긴 민족도 없을 거란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에는 무수한 외침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참담한 것 중의 하나가 임진왜란이다. 그리고 임진왜란(이 책이 바로잡은 바에 의하면 '조일전쟁')은 조선사회의 모든 모순을 폭로한 대란이기도 했다.

조선사회가 드러낸 가장 큰 모순은 조선조의 특징인 배타성이다. 중국에 대한 숭배와 일본에 대한 무시로 대표되는 조선조의 배타성은 외교 미숙을 낳았고 무능력한 중국에 전적으로 기대고 모든 지휘권을 넘겨주게 했으며, 선조의 왕의로서의 의지마저 증발시켜 버렸다. 그뿐인가. 양반이고 군사들이고 할 것 없이 모두 도망가 조선조의 문무 대립이라는 것이 우스울 정도로 약체성의 일치를 보여줬다.

결국은 청야전술도 아니면서 한 나라의 수도를 몇시간만에 무혈점령하게 허용한 세계 전쟁사에서도 희귀할 풍경을 연출했다. 외교적 미숙과 일본에 대한 무시는 일단 터진 전쟁을 일찍 끝내는 최소한의 의무도 이행하지 못했다. 전 아시아를 지배하겠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망상에는 능란한 사람도 대처하기 어려웠겠지만 조선 정부는 상식을 초월한 뻣뻣한 대응으로 결국 자기 나라에서 일어나는 전쟁을 질질 끌고 재침까지 허용하고 말았다. 한마디로 말하면 조선왕조는 조일전쟁때 교체가 되도 하나 아쉬울 것 없는 왕조였다.

그렇다면 조일전쟁은 한반도에 고춧가루 전래로 인한 음식문화의 발전과 일본의 대규모 조선 장인 납치로 인한 도자기 문화의 발전 빼고는 보여준 게 없었을까? 그건 아니다. 대표적으로 의병 활동을 들 수 있는데, 사실 명군이 들어오기 전에는 정예군이 아니라 의병들이 일본군에 전적으로 타격을 입혔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활약이 대단했다. 가히 베트남 전쟁 때 미군에 대항한 베트콩을 연상하게 하는 활동이었던 것 같다.

믿을 만한 중앙권력도 없는 상황에서 모든 재산을 쏟아붓고 생명을 걸었던 그들의 활동은 외침에 대항하는 민족의 자생력이 어디에 있는가를 분명하게 보여줬다. 그리고 전쟁이 터지자 관군들도 버리고 간 조선왕조실록을 어깨에 지고 피난을 간 무명의 선비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야말로 민족 최대 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을 구해낸 힘없는 민중의 파워를 보여주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조일전쟁은 결국 7년만에 끝났다. 그리고 남은 것은 시체까지도 파먹는 민중의 굶주림과 자존심의 타격이었다. 전쟁에서 역사의 교훈을 찾고 의미를 따지는 것은 예의없는 것이다. 위의 참혹함만으로 현대인에게 모든 걸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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