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철학의 이단자들
중국철학회 지음 / 예문서원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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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중국 철학은 출생부터 그 맥이 끊긴 적이 없다. 종교나 과학에도 함몰되지 않고 그 줄기를 수천년간 이어온 셈인데, 그 중심은 유교철학, 도교철학, 불교철학이었다. 그러나 면면히 이어온 인문학의 전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사상사에도 빛과 그림자는 존재했는데, 대개 그 그림자는 경직화된 유교사상으로 인한 폐혜였다. 도교나 불교가 존재했다고는 하나 유교가 왕좌를 빼앗긴 적은 없었고, 과거제의 오랜 시행은 유교를 움직일 수 없는 위치에 자리잡게 했다. 중국의 엘리트인 관료들과 지식층, 그리고 입신양명을 해야 하는 일반인들의 바램마저 한 몸에 받았으니.

이 책에는 10명의 아웃사이더들이 나오지만 내가 가장 주목했던 사상가는 유교의 폐습에 반대했던 '분서'의 저자 이지였다. 그는 과거에 합격해 관직을 역임하기도 했지만 결국 이단으로 몰려 자살하듯 죽어야 했던 풍운아였다. 태워버려야 할 책이란 뜻의 '분서', 묻어버려야 할 책이란 뜻의 '잠서'라는 제목의 책을 지은 그는 남들이 이단으로 몰기 전에 이미 이단을 자처했다.

어릴 때부터 공맹을 되뇌이는 동료 지식인들을 비웃으며 '따라 짖기는 거부한 한 마리 개'가 되었고 관학과 거짓 도학을 거부하며 '윤리나 물리는 옷 입고 밥 먹는 것처럼 일상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거침없는 사상은 끝내 음양과 천지 이론을 들먹이며 고착화시켰던 남녀 차별마저도 비판하고 경전과 대중 소설의 구분은 없다고 했으며 공자보다 어린아이의 동심이 더 중요하다고 설파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불과 16세기에, 중국에서 태어난 인물의 주장치곤 파격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깨어있는 자는 시대의 구속을 받지 않는 것일까? 동시대인을 격분시킨 그의 말로는 예상할 수 있는 바였지만 그의 거침없는 주장들은 자체로 중국철학에 활기를 불어넣었을 것이다. 정통은 항상 이단을 처벌하고 단죄하지만 이단을 단죄함으로써 그 권력을 더욱 공고히하고 더불어 신선한 피까지도 수혈받는 것이니. 중국철학사가 끝내 그와 같은 사상가에 존경을 표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앞에도 말했듯이 이 책에는 10명의 사상가가 나온다. 이지는 <중국철학의 이단자들>에 소개된 사람치고는 체계있는 저술활동을 한 사람이지만 나머지 사상가들은 활기와 파격은 앞섰지만 체계는 이지만도 못했고 다른 '정통' 사상가들만도 못했다는건 안타까운 점이다. 왜 반 권력적인 생각을 주장할 수 있는 이단사상가들은 체계적인 저술을 남기지 못하는 것일까? 안타깝지만 그것이 그들의 한계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들의 사상을 소개받기보다는 그들의 순수함과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의 진지한 태도를 소개받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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