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루이치 풍경 1
야나하라 노조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0년 4월
평점 :
품절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인간과 로봇과의 동거. 이 정도면 만화나 영화에서 이미 많이 접할 수 있었다. 하나같이 인간을 닮은 이 로봇들은 로봇이라는 콤플렉스와 아픔 때문에 인간을 그리워하며 애정을 구하기도 하고 인간 세상에 분노하고 파괴시키기도 했다. 전자가 순진하고 착한 로봇이라면 후자는 강하고 악마적인 로봇일 것이다. 외계인의 경우도 그렇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선악 이분법을 편리하게 적용하는 버릇을 버리지 못한 것 같다. 이성, 소수자, 타민족같은 고전적인 주제에서도 그러더니 로봇이나 외계인이라는 사이버틱한 주제에 와서도 유구한 편견의 전통은 여전하다.
<마루이치 풍경>은 이 구분을 '상식'이라는 무기로 가볍게 물리친다. 어디에나 있을 것 같지만 정작 가지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는 '상식'. 이 '상식'은 로봇에 대해 자연스럽게 정의를 내린다. 로봇은 기계며, 인간의 복잡다단함을 닮을 수 없다. 로봇이 인간 흉내를 낼 수 있다 하더라도 정작 문제가 되는 단 하나의 존재는 진짜 '인간' 뿐이다라고.
사실 이 정의는 다소 뻔뻔스럽다. 무수한 만화 캐릭터에 한 번도 눈길을 안 줬던 내게 만약 '마루이치'라는 캐릭터 상품이 있다면 모조리 사고 싶다고 느꼈을 정도로 귀여운 로봇을 보여준 후에 로봇은 로봇일 뿐이다라고 능청스럽게 말하고 있으니.
커다란 선글라스같은 눈과 작은 키. 동물 인형같은 무표정. 창의성은 없지만 너무나 성실한 마루이치. 이 로봇과 얽히면서 사람들은 정을 주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지만 마루이치는 사람이 입력해준 동작밖에 하지 못하는 귀여운 로봇일 뿐이다. 인간과 로봇을 감정의 타래로 얽히게 만들고 인간과 인간을 얽히게 만드는 것은 예나 지금에나 인간의 마음일 뿐이었다.
이 귀여운 로봇을 탄생시킨 작가는 계속 말한다. 로봇과 기계는 인간을 편리하게 만들어주며, 인간의 소외는 로봇과 기계 때문이 아니다. 노동해야 하는 의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협동할 수 밖에 없었던 인간은 이제 없으며, 인간은 자유로워졌다. 오히려 로봇과 기계로 지리한 반복 노동에서 벗어나게 된 인간은 서로를 순수하게 사랑할 수 있게 된 때가 온 것이라고. 나아가 로봇 마루이치를 사랑스럽게 만드는 것은 로봇의 인간다움 때문이 아닌 로봇을 사랑스럽게 보는 인간의 감정 때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