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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신구라
다케다 이즈모 외 지음, 최관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평점 :
품절
같은 인간이 사는 모습이라도 시대마다 사회구조나 가치관은 판이하게 다르게 마련이어서 오늘날의 잣대로 옛 일을 섯불리 평가할 수는 없다. 시대를 초월하는 초인이 아닌 이상 사람은 그 시대 안에서 최선의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이고, 후세인은 그것을 존중한다. 하지만 시대의 단점에 매몰돼버려 그 시대를 비판받게 만들고, 후세인들에게도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 또한 분명히 있다. 예컨데 미국의 노예제도는, 아무리 인종간의 평등이나 인권의 개념이 없었던 시대의 일이라고 해도 동시대인들을 헛된 고통 속에 밀어넣었고, 후세인들의 비난도 피해가지 못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주신구라'는 그만큼 심각하지도 않고 단순하지도 않다. '주신구라'는 미국 영화에까지 모티브가 도입되었을 정도로 유명한 47사무라이의 복수이야기다. 주군의 억울한 할복과 주군 집안의 몰락에 복수를 다짐한 사무라이들은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고 바보, 주정뱅이 흉내를 내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복수를 계획해간다. 심지어는 장인이나 부모의 목숨도 충절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희생될 수 있다고 여기며 자금 마련을 위해 아내를 유곽에 팔기도 하고 아내는 그것을 명예스러운 의무로 여긴다. 나라가 팔렸다고 한들 이보다 더한 희생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하! 허무한 것은 그들의 맹목적이고 나아가 47명 사무라이의 죽음까지도 초래한 복수의 원인은 그들 주군의 하찮은 오해 때문이었다는 데에 있다. 정숙한 아내를 사이에 두고 남편과 남의 아내에 욕심을 품었던 한 남자사이의 다툼, 높은 신분의 자존심때문이라면 둘의 결투 정도로 끝났으면 될 일에 불과했다. 더구나 그 아내가 바람을 피거나 겁탈을 당한 것도 아니었다. 몇 마디 모욕적인 말로 생긴 오해 때문에 남편인 주군이 죽음까지 간 상황은 그렇다쳐도 그 밑에 있던 사무라이들은 왜 그런 희생을 해야 했을까. 아무런 보편적인 정의도 명분도 없는 복수극에 47사무라이와 그 주변 사람들은 불나비처럼 뛰어들었다.
이것이 사무라이들의 절의라면 참으로 가소롭다. 이 사건은 이미 바쿠후가 성립된 후인 1700년대 초반에 일어난 일이었다. 피비린내 나는 전국시대는 이미 끝나고 사무라이들이 더이상 칼을 잡을 필요가 없던 시대에, 그 사무라이들은 '사무라이답게' 목숨을 버릴 수 있는 명분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오히려 생활 자체가 죽음의 친구였던 전국시대에는 사무라이들에게 그런 절의의 개념은 별로 없었다고 한다. 주군과의 맹세는 계약에 가까웠고 목숨이 위태로우면 배신도 번번히 일어났다. 그것이 오히려 인간적이고 자연스럽지 않은가. 47사무라이의 복수와 죽음, 그리고 그로 인해 성립한 작품의 광범위한 인기는, 사무라이의 존재가 이미 픽션에 불과했던 시대의 소설같은 현상이었다.
미국 영화감독과, (번역자의 말에 의하면) 루즈벨트 대통령과 중국 혁명가들에게까지 감명을 주었던 작품인 '주신구라'. '주신구라'가 감명을 줬다면 정의라고 생각되는 것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는 용기와 추진력, 그리고 명예를 지킬 줄 아는 인간군상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기때문에 오늘날까지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주신구라'는 비판적인 재해석이 필요한 게 아닐까. 그 비판적인 재해석 자체가 진짜 명예와 용기는 무엇인지를 드러나게 해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