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신, 가난한 사람들 - 도스또예프스끼 전집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1월
평점 :
절판


분신은 여러모로 번뜩이는 작품이다. 밀도높은 문장은 수많은 독자를 매료시켰던 도스토예프스키적 문체를 예고하고 있고 현대인의 내면을 완벽하게 형상화시킨 주인공 골랴드낀은 동시에 19세기 베쩨르부르크에 잘 녹아 있다. 20세기, 그리고 21세기 시대상까지 체현한 작가의 인물들이 한편으론 안개낀 베쩨르부르크의 골목을 헤매고 다니는 고전적인 이미지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다른 등장인물들은 거의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지 않지만 산업화시대의 공무원이자 비열하지도 않지만 선하지도 않은, 적당적당하기도 하고 내면의 콤플렉스를 티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범용한 골랴드낀의 묘사는 매우 생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발표 당시에는 비평가와 독자의 냉대를 받았다는 것 또한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데, 혼란스럽고 정리되지 않는 분위기는 끝까지 갈수록 수습이 안되고 고골리의 <코>를 뛰어넘고자 했던 야망 또한 성공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작 <가난한 사람들>에 비해 도스토예프스키답다고 할 수 있을 이 소재를 작가는 의욕이 앞섰을 뿐 충분히 소화시키지 못했던 것 같다.

데뷔작 이후의 줄줄이 이어진 실패로 영원히 빛을 볼 것 같지 않던 도스토예프스키가 다시 세계사에 남을 걸작을 탄생시키기까지는 20년의 세월을 담보로 내놔야 했으니 그 또한 걸작을 아무렇지도 않게 탄생시키는 고전적이고 낭만적인 천재가 아니라 동정심이 일 정도의 노력을 기울인 현대의 천재였던 것이다.

하지만 도스토예프스키는 투르게네프나 톨스토이같은 길을 가지 않았기에 골랴드낀같은 인물을 탄생시키는 전혀 새로운 유형의 작가가 됐다. 자신과 똑같은 인물이 나타나 모든 생활을 곤란하게 하고 직장에서도 신용을 잃으며 결국 끝간데까지 가게 만드는 위기 속에서도 도움을 청할 가족이나 친구의 가능성조차 나오지 나오지 않는 <분신>의 골랴드낀. 이 골랴드낀이란 '현대인'을 비참하게 만든 분신의 정체를 뭘까?

그 분신의 정체가 뭐였는지는 끝까지 나오지 않는다. 나로서는 그 분신이 어느 순간에 굴러들어온 평범한 비열한이라고 믿고 싶지는 않다. 지금 시대에 대입해봐도, 권력이나 매스미디어같은 거대한 것에 침투당한 나의 분신(내면)에 의해 파멸한는 것보다 아무 중요성도 없는 어둡고 하찮은 나의 존재를 반영하고 있을 뿐인 분신(내면)에 파멸하는 것이 한층 현대의 무시무시함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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