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원 - 일본 시나리오 걸작선 3
후루하타 야스오 외 지음 / 시나리오친구들 / 2000년 3월
평점 :
품절


역시 현대 일본인들의 삶을 다룬 글들을 읽으면 고대나 중세의 일본인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다. 관통하는 정서야 있겠지만 어쩌다가 주어진 자신의 일에 평생을 묵묵히 헌신하는 자세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꾸준히 걸어온 메이지 유신 후의 일본인들의 정형일 것이다. 시나리오친구들에서 나온 다른 책 '나라야마부시꼬'가 상이한 분위기의 이야기 네 개를 실었다면, 이 책에는 '현대를 살아가는 일본인의 삶'이란 하나의 주제로 통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철도원'의 오토마츠는 그런 일본인의 삶을 시골 역을 배경으로 다소 낭만적이고 장인같은 분위기로 구현하고 있다. 그 시골 역은 눈이 많이 내리는 한적하고 아름다운 곳이고, 선량한 사람들과 평생을 함께 해 온 오토마츠는 그가 가장 기다려왔을지도 모르는 방법으로 숨을 거둔다. 하지만 '광주'의 남자는(그는 이름조차 나오지 않는다) 철로 대신 회사에 일평생을 매진하다 구조조정을 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해있다. 아내는 그와 이혼한 후의 삶을 계획하고 있으며 딸에게는 음침해서 싫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광주'는 아내와의 이혼에 합의해주기 위해 집에 돌아가는 남자의 상황을 그리는 비극적인 정형이다. 또 다른 이야기 '가을 국화'는 30년 동안 두 번 밖에 불이 나지 않은 마을에서 어렸을 때 본 탐스러운 국화를 만들기 위해 평생을 국화재배만을 해 온 소방서 직원 마노씨를 소개하고 있다. 어렸을 때 절에서 본 아름다운 국화를 재현하기 위한 그의 모습은 언뜻 '예술'로 보이지만 그 외에는 여유나 삶의 방법이 전혀 없고, 아내와 자식은 그런 그를 숨막히고 지루하게 여긴다는 점에서 앞의 두 명과 통한다. 그들을 그렇게 살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 목표가 기차를 인도하는 것이든 회사일을 하는 것이든 국화를 재배하는 것이든 그들은 그것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전혀 없어 정상적인 인간처럼 느껴지지가 않는다. 아니면 그것이 바로 '현대인'이라는 것일까?

이중에서 가장 희망적인 이야기는 '철탑 무사시노선'의 소년이다. 철도원의 오토마츠가 아무리 아내의 헌신과 딸의 늦은 사랑을 받았고, 그런 아름다운 장면이 영화 '철도원'이 관객들의 심금을 울린 이유일지라도 평생 하나의 대상에만 사로잡혀 살았다는 점에서 다른 두 이야기의 남자들과 다를 것이 없다.

그에 반해 '철탑 무사시노선'의 소년은 철탑이란 대상에 매진한다는 점에서 어른 주인공들과 같지만 온전히 자신의 욕망에 따라 행동한다는 점에서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소년은 어쩌다가 주어진 상황에 자신을 바치는 것이 아니라 철탑 1호의 정체를 보기 위해 수십개의 철탑을 순례한다. 소년이 철탑 1호에서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느꼈느냐에 따라 그의 삶이 앞의 이야기의 일본인들처럼 될 것인지 다른 무엇을 얻을 것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말그대로 '시나리오걸작선'이란 타이틀이 아깝지 않은 책이었지만 한가지 아쉬운 것은 일본 남자들의 삶을 다루고 있을뿐 아내와 딸로만 나오는 일본 여성들의 삶은 관찰되거나 묘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본 여성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으며, 무엇이 부족하며, 무엇을 원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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