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철학 - 노자의 연대고증과 텍스트분석
유소감 지음, 김용섭 옮김 / 청계(휴먼필드)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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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자 철학에 매료되면서도 그것의 현실적인 체현은 불가능하다고 여겼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었을 때도 같은 느낌이었다. 과연 이 세상에 이런 소년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데미안과 에바 부인같은 모자 관계가 가능할 수 있을까? (멋지긴 하지만.) 하지만 그 몇년 뒤에 데미안과 에바 부인같이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이번에는 노자 철학에 대해 같은 증명을 받게 되었다.

그는 실존 인물로 한제국의 멸망기에 살았던 삼국지의 유비 현덕이다. 관우와 장비라는 걸출한 인물들의 진심어린 충정과 사랑을 받았으며 희대의 천재 제갈공명을 오른팔로 두었고 민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유비. 하지만 그는 자주 미련하고 어리석어보이며 보는 사람이 화가 날 정도로 자기 이익을 챙길 줄 몰랐다. (이미 챙긴 이익이라도 쉽게 내놓았다.) 그래서 조조의 매력이 득세하는 요즘에는 약간 모자르지만 주위 사람의 도움으로 큰 일을 할 수 있었던 인물로 평가절하되기도 한다. 유비같이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강하면서도 기골 없는 인물로 무시당하기도 쉽지 않다.
삼국지와 노자를 따로 읽을때는 몰랐지만 이제는 그가 노자가 말한 이상적인 인간상을 체현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 것 같다. 약한 듯 하면서도 약하지 않았고 없는 듯 하면서도 가장 큰 것을 가지고 있었다. 노자 철학은 이미 수천년전에 한 사람에 의해 증명되었던 것이다. 더구나 유비처럼 이름을 드날린 사람이 아니라 역사의 붓질앞에 침묵한 사람들까지 합하면 그 수는 적지 않을 것이다. 현대인이 궁금해하는 것과는 달린 노자의 현실성은 계속 증명이 되어왔다.

그렇다면 노자 철학의 현대성은 어떨까? 동아시아 철학은 과학에 대해 완벽할 수준의 면역력을 가지고 있다. 서양 철학이 중세에는 신학의 하수인이 되었다가 근대 이후에는 과학의 하수인이 되었다는 것에 비하면 놀라운 일이다. 그게 동양이 최근세에 서양 앞에 무릎 꿇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는 하지만 이제와서는 새로운 대안 철학으로 각광받고 있다. 과연 슬픈 일 앞에서도 슬퍼하지 말고 기쁜 일 앞에서도 기뻐하지 말라는 노자의 말 그대로가 아닌가? 아무리 쉽게 이해가 안되는 형이상학적인 노자 철학이라도 지식을 위한 지식을 추구했던 서양 철학과 성격부터가 판이하게 다르다.

노자를 비롯한 동양 철학은 항상 '삶'을 염두에 두었다는 지적을 끝으로 노자 철학의 현대성에 관해서는 이 책의 저자인 유소감의 마지막 구절을 인용하면서 끝내야겠다. '신은 죽었다란 말에 우리는 그렇지 않다, 여전히 도가 있다고 대답할 수 있다. ...도는 과학과 종교 사이에 있는 개념이다. 창조설을 부정한다는 점에서는 종교와 다르고 과학에 가까우며, 종국적인 관심과 직관적인 체험을 중시한다는 점에서는 과학과 다르고 종교에 가깝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과학적 탐구정신을 드러낸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주와 인생에 대한 종교의 궁극적 관심을 드러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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