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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메시스 - 근대편 - 서구문학에 나타난 현실묘사, 이데아총서 12 ㅣ 현대사상의 모험 28
에리히 아우얼 바하 / 민음사 / 199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종종 우리는 문학을 포함한 예술이 이 세상의 비속함과는 떨어진 천재들의 결정체라고 생각하는 실수를 범한다. 그들은 신이 주신 재능에 따라 창조를 한 것이라고. 무엇보다 작가들 자체가 그런 상상속에 빠져있기도 하다. 하지만 인간은 신화 속의 뮤즈가 아니다. 천재고 범재고를 떠나 역사를 살아가는 현실적 존재일 뿐이다.
서구문학의 눈부신 꽃봉오리를 터트린 문학들은, 우리의 책장에 그들의 작품이 고립되어 존재하듯이 '세상보다 높은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한쪽의 문장 속에서도 그 시대성을 투시할 수 있는 거울이다. 아우어바흐는 그런 전제속에서 서구 문학의 고전에 깔려있는 현실과, 그 현실속에서 살아가던 작가들이 그것을 어떻게 재구성해냈는지 풀어낸다. 오히려 작가들은 그 시대를 자신의 재능안에서 다시 탄생시키면서 시대를 뛰어넘고자 했다. 문학을 숭배하지 않는 시대와 시대를 존경하지 않는 작가는, 서로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극복해나갔던 것이다. 과거 속에 사는 기사 돈키호테를 창조한 다사다난한 작가 세르반테스나, 자신의 작품은 반세기 뒤의 독자들을 위한 것이라며 왕정복고기의 야심만만한 청년 줄리앙 소렐을 창조한 스탕달이 그 예일 것이다.
요즈음은 문학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유행이 되어 있는 듯하다. 일본의 독서광 다치바나는 그 이유가 문학이 픽션을 능가하는 긴박한 현대세계를 묘사하는데 역부족이 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 한편에서는 판타치와 환상문학이 범람하고 있다. 현실을 묘사하는 데 역부족을 느낀 작가들의 고육지책일까? 판타치와 환상문학의 범람은 현실도피일까 아니면 논리에 갇혀 있었던 인류가 드디어 상상의 세계에 눈을 뜨는 것일까?
어떤 대답을 할 수 있느냐에 따라서 앞으로의 문학의 물줄기가 결정될 것 같다. 우리는 과연 현실을 포기하는가? 아우어바흐의 연구속에는, 그런 기로에 선 우리가 참고할 만한 것이 가득하다. 서양 문명의 작가들은 과연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그리고 현대 문명의 현실과 환상을 어떻게 바라볼지는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