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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포레스트 1 ㅣ 세미콜론 코믹스
이가라시 다이스케 지음, 김희정 옮김 / 세미콜론 / 2008년 10월
평점 :
새삼 표지를 다시 살피니 어엿히 치마도 입고 있는데 왜 주인공을 소년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소년인줄 알았는데 소녀였던 주인공 외에도 예상외였던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투박한 그림체였다. 펜의 질감이 그대로 살아있는 듯한 그림체. 고로 이것은 짧은 머리의 소녀와 투박한 펜그림이 그려내는 전원 식생활의 모든 것을 다룬 만화다.
요즘은 아무리 시골이라 해도 이렇게까지 야생과 전원의 결정체인 곳은 없을 것 같은데, 이런 나의 의심을 불식시키듯 이 만화의 배경은 커다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마을인 '토호쿠'라는 곳이라고 한다. 그래, 커다란 산으로 둘러싸인 산간마을이라면 주위에 나무와 숲밖에 없을 수도 있지, 라고 재빨리 수긍해버렸다. 가까운 곳에 슈퍼도 없고, 이웃도 그리 많지 않은 곳.
시골집에서 혼자 살고 있는 소녀는 그러나 앳된 얼굴과는 달리 몇 년 전에는 큰 마을로 나가 남자와 함께 산 경험도 있는 나름대로 산전수전을 겪은 처자다. 지금은 다시 낙향해서 혼자 농사짓고 부업하며 살고 있는 상태. 이 처자의 생활은 엥겔 계수가 거의 100%인 듯, 생활의 모든 것은 먹는 것에 맞춰져 있다. 그렇다고 음식에 어마어마한 의미를 부여하는 다른 만화처럼 어떤 음식을 먹고 잃었던 기억이 돌아온다거나 챔피언 벨트를 딴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달인의 솜씨로 무 하나로 천상의 음식을 요리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먹는다. 주위에 있는 것들을 살뜰히 이용해서 이 음식도 해보고 저 음식도 해보고, 전통요리도 해보고 서양요리도 해보고 나름의 퓨전요리도 해본다. 하나하나 깨끗하고 맛깔스럽고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음식생활.
좀 고적해 보이기는 하지만 하루하루가 꿀벌처럼 바빠서 외로워할 틈도 없을 듯. 젊디 젊은 처자가 혼자 사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데 그것까지 밝히면 이 만화의 묘미가 떨어질 듯 하다. 먹는 것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사람의 전원생활을 다루고는 있지만 본인도 모르는 인생의 미스테리가 왠지 모를 긴장감을 주기도 한다. 조만간 새식구가 생길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일본인이라면 여기 나오는 음식이 무슨 맛인지 더 잘 알테니 그대로 만들어보고 싶은 욕구가 솟구칠 테지만, 그렇지 않아도 만화를 보면 떠오르는 나만의 요리들이 있다. 비록 전원생활의 호사와 고생은 못누리지만 겨울 밤에 해먹는 따듯한 음식의 맛은 누구에게나 같은 터. 우선은 몇 달 전에 담가둔 고들빼기 김치와 어울리는 요리로 시작해볼까. 침만 흘리고 같이 즐길 엄두가 나지 않은 다른 요리만화와는 달리 나도 한 번 해볼까 하는 의욕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 이 만화의 미덕이다. 소박하나 풍요롭고 부지런한 식생활. 이렇게 사는 것도 정말 괜찮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