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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기 -상 ㅣ 한림신서 일본현대문학대표작선 21
하야시 후미코 지음, 최연 옮김 / 소화 / 2001년 6월
평점 :
품절
일본에는 사소설이란 문학전통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일기체의 자전소설이라는 것은 매사에 정신차리고 사는 사람의 것이 아니면 곤란하다. 누군가의 사사롭고 내밀한 이야기 따위, 자기연민과 잘난척의 기록이기 쉽고, 누군가의 푸념을 문학이라는 이유로 참고 읽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부와르는 시대상과 시대의 분위기를 반영하지 않는 자서전은 쓸 가치도 없고 읽을 가치도 없다고 했는지도 모른다.
하야시 후미코는 늘 정신차리지 않으면 살 수 없던 부류의 사람이라는 점에서 '방랑기'는 내 정신까지 차리게 만드는 '사소설'이었다. 20세기 초의 일본의 룸펜. 고향도 없고, 부모 또한 집이 없는 떠돌이 장사꾼이라 20대까지의 반은 등짐을 지고 걸었던 삶. 늘 동화와 시를 쓰고, 소설을 구상했지만 20대 중반까지는 온갖 아르바이트와 장사를 병행하며 글을 썼다. 그래서 '방랑기'에는 항상 무엇을 먹고 싶다거나 돈을 가지고 싶다는 말이 나온다. 마지막 남은 돈으로 돈가스를 사서 먹어도 배가 고팠던 것은, 다음날부터는 쌀 한 톨 없이 굶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약간의 기름기가 뱃속을 달래주었다고 한들 내일부터 시작되는 굶주림의 공포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야식으로 먹은 돈가스에 기분이 좋아져 분발하며 쓴 글들이 '방랑기'이고, 방랑기 속의 시들이다.
"고향은 멀리 있어서 생각하는 것이다. 설사 타향의 거지가 된다 하더라도 고향은 두 번 다시 돌아올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오랜만에 찾은 고향에서 배다른 자매에게 은근한 냉대를 받고, 여학교 시절의 친구와 지지부진한 만남을 가진 후의 감상이다. 고향을 저 정도로 생각할 수 있어서 그랬는지, 하야시 후미코의 사생활 또한 그 시대로서는 파격이었다. 아니, 사생활 자체보다는 그것을 숨김없이 드러낸 것이 더 파격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애인들과의 생활, 애인들이 아니더라도 때때로 강렬히 남자를 원하는 감정. 하야시 후미코에게 성욕은 식욕만큼이나 정직한 욕구였다. "남자에게 얻어먹는 것은 진흙을 씹는 것보다도 괴로운 일이다"라고 말하면서도 자신을 때리는 남자와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했던 그저 그런 면을 가진 여자. 하지만 강한 생명력만큼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었던 여자.
굶주리고, 미인도 아니고, 잡지사에서 거절당하며 자기혐오에 시달리면서도 타인을 보는 시선에 따듯함과 유머감각이 있다는 것은 그녀의 또 다른 미덕이다. 자기를 원망하는 것 이상으로 세상을 원망하게 되는 것이 가난의 질병 아닌가. 같이 일용직에 종사했던 사람들에 대해 보이는 동료애, 어머니와 의붓아버지에 대한 책임감과 연민(지겹다고 한 적도 많았지만)을 보면 "당신은 기본적으로 좋은 사람이군"하는 닭살스런 말을 해보고 싶어진다.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오래 살지 못했다고 하던데, 보통 사람들이 자아를 부정하거나 외면하고 사는 80년의 세월에 비하면 하야시 후미코의 대단하다 할 정도의 정직한 삶은 오히려 후회 없을 인생이 아니었나 싶다. 그녀의 가난이 부럽다고는 빈말로도 못하겠지만, 내가 가난하거나 고생스러울 때는 하야시 후미코의 삶의 자세를 떠올릴 것 같다. 끊임없이 일하고, 오기와 자존심을 갈고 닦고, 욕구에 정직하며, 한줄기 꿈을 놓지 않는 자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