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골든 슬럼버 - 영화 <골든슬럼버> 원작 소설 ㅣ Isaka Kotaro Collection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갑자기 세상 모두로부터 추격을 당해 도망쳐야 할 때는 전문적인 기술 몇 개 쯤은 가지고 있는 편이 좋을 것이다. 좀 살벌하지만 칼 쓰는 법이라던가, 핸드폰과 소형기계들을 이용해서 나를 추격하는 사람들을 역추격하는 능력이라던가, 컴퓨터 해킹 능력이라던가, 헬리콥터나 배 운전 같은 것들. 하지만 대개는 빠른 발조차 가지고 있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 아닌가. 적은 국가, 혹은 국가를 움직이는 힘이라면, 불공평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하루아침에 총리 암살범이 되어 쫒기는 아오야기가 가지고 있는 기술은 대학시절의 친구에게 배운 밭다리후리기 뿐이다. 그리고 택배기사 시절에 익힌 시내지리와 약간의 저금 정도. 8년 만에 연락온 친구와의 만남에서 시작되는 추격전에서 갖고 있는 무기치고는 서글플 정도로 알량하다. 살인자, 그것도 총리 암살범이 되어 있는데다 경찰들은 실탄이 장전된 총을 쏘아대며 쫒아온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나로 인해 어려움에 처한다. 이런 경우라면 너무 억울하고 억울해서 콱 죽고싶을 게 뻔하다.
하지만 아오야기는 열심히 도망친다. 그리고 도망치는 와중에 그가 알고 있던 사람들, 그를 아끼는 사람들로 인해 위험에 빠지기도 하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기도 한다. 인생의 위기란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나의 인생 자체가 자원이 되기도 하고 덫이 되기도 하는 것. 나를 아끼는 사람은 자신들이 가진 걸 이용해서 도와주려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그만큼 더 위험한 존재가 된다.
골든 슬럼버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정교한 아귀를 자랑하는 복선이 깔려있는데, 이 복선은 아오야기가 살아온 인생 자체라는 데 다른 복선들과는 다른 의미가 있다. 사소한 습관, 대학시절의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 생각 없이 했던 행동들이 모두 그의 명운을 결정짓는 복선이 된다. 그리고 그걸 보는 나느 아오야기를 응원함과 동시에 그의 사소한 특징들까지도 아끼고 사랑하게 된다. 그런 사소한 것들이, 그를 아끼고 있는 사람들과 끝까지 연결시키는 고리가 되고, 그를 더 멀리 도망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되기 때문이다.
한 명의 사람은 얼마나 복합적인 존재인가. 그래서 아오야기가 있는 힘을 다해 자신을 해하려는 무리들에게서 도망치는 것을 보는 것은 감동 이상의 메타 감동이 있다. 지금도 잘생기고 순박한 청년이 어리둥절하고 겁먹은 얼굴이지만, 가끔씩 밭다리 후리기를 성공해가면서 열심히 달리는 모습이 눈에 떠오르는 듯...오락물임에는 분명하지만, 다시 한 번 읽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