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집 - 상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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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천한 출생과 굼뜬 성격-사실은 신중한 것 뿐이지만- 때문에 바보라고 불리는 소녀의 이야기란 걸 알게 되자 조금 슬퍼졌다. 이름까지 '호'(바보의 한 글자를 따서)인 이 소녀에게 그리 좋은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애고아인데다가 바보라고 불리는 '호'가 해안가 마을인 '마루미 번'에 흘러들어온다...가 이 이야기의 시작이지만, 소설에 나타나지 않은 호의 삶을 추측해본다면 전에도 힘들고 앞으로도 힘들 것 같다. 의지할 핏줄 하나 없는데다가 요령부릴 줄 모르는 성격을 보면 그럴 수밖에 없을 듯하다. 하지만 호의 장점을 보아주고 그녀의 스승이나 가족, 친구가 되어주는 사람도 항상 있을 것 같다. 누구보다 불리한 입장이지만 나름대로 유니크한 이 소녀가 사는 법. '외딴집'을 읽는 내 나름대로의 키워드였다.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답게 '외딴집'에는 미스테리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하지만 살인사건은 사건에 얽힌 '사람들간의 관계'를 드러내는 장치일 뿐이다. 작은 마을인 마루비 번과 막부와의 긴장관계, 무시무시한 죄인의 귀양지가 된 마루비 번의 생존의 몸부림, 고향의 불리한 입장을 자신의 복수를 위해 사용하는 사람들 등등.

어둠이 무서운 이유는 어둠을 틈타 음습하고 잔인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어둠 속에서는 항상 끔찍한 일이 일어날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막부의 죄인이자 그 죄질로 인해 이미 악령 취급을 받고 있는 '가가 님'이 귀양을 오게 되자 사람들은 가가 님이 재앙을 몰고 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그 확신을 이용해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나타나면서 평화롭던 시골인 마루미번은 살인과 화재가 뒤섞인 한바탕 난리잔치를 벌이게 된다. 

그리고 그 난리 한 구석에 호가 있었다. 작은 마을 마루비번에서도 여기저기 떠돌던 호는 가가 님이 유폐되어 있는 저택에 하녀로 들어가게 된다. 그렇잖아도 크고 작은 사건들이 모두 악령 가가 님이 일으키는 재앙으로 여겨지던 분위기에서 산제물로 바쳐졌다고 하면 너무 심한 말이 될까. 하지만 버린 패였던 호는 뜻밖에 가가 님과 만나게 되고, 마치 폭풍의 핵처럼 고요한 유폐지에서 가가님과 하루하루를 보내며 마루미번의 난리잔치에 휘말려 들어간다.

작은 새는 힘이 없어 새찬 바람 한 번에도 꺾일 수 있지만, 작은 덩치와 민첩함으로 장대비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 호의 운명은 매사에 위태위태하지만 민첩하고 신중한 호는 나의 우려 속에서도 대견하게 버텨나갔다. 아마도 호의 행운의 얼마쯤은 그녀의 진면목을 알아주던 사람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호가 살아남기를 바라고, 호의 순수함을 사랑하던 사람들 때문에.

나는 남을 잘 부러워하지 않는 성격인데, 책을 보다가 유독 부러워한 '바보'가 둘 있었다. 그 중 한 명이 '호'다. 순수함과 성실함으로 살아남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가. 호가 마루미번에서 얼마나 더 살지는 모르겠지만 파도가 치는 바닷가 언덕을 뛰어가며 '성님'과 '가가님'을 부르던 모습은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마치 내가 알고 지냈던 한 소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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