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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나크 사냥 ㅣ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 인간들은 어쩔땐 몹시도 단순해서, 예를 들어 운전대를 잡으면 평소에 얌전하던 사람도 입이 지저분해지고 난폭해진다. 나와 차를 분리하지 못하고 동일시하는 것이다. 차의 무쇠몸통과 시속 100Km이상의 속력은 차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이 된다. 그래서 내 차를 위협하는 사람은 범퍼로 받아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감히 나를 추월하다니!
그렇다면 차가 아니라 총이 주어졌을 때는 어떨까? 그것도 평범하게 열받는 상황이 아니라, 자신을 오랫동안 이용한 애인이 사법고시에 합격하자 갑자기 가문 좋은 딸과 결혼한다거나, 20년 동안 그리워해온 딸과 아내를 철없는 강도들이 살해했다거나 하는 상황들. 이미 떠난 사람이라거나, 법이 심판해줄 것이라는 자제심은 손가락으로 슬쩍 밀치는것 만으로도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런 자신에게 총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스나크 사냥'은 몇 사람의 인생을 파탄낸 악한이 사회제도 자체에 의해서 보호받고 있을 때 개인적인 복수는 정당한가, 라는 화두에 이어 보통의 사람들이 무기를 손에 넣고 복수에 나섰을 때 어떻게 상황이 흘러가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차를 몬다거나 근육을 키웠거나 명품을 걸쳤을때 힘이 세진다고 느끼는 보통의 사람들. 그들이 총을 손에 넣고 복수를 결심할 때에는 누구보다 단호하고 아드레날린이 분출하지만 전문적인 범죄자가 아닌 이상 돌발상황들마다 흔들리고, 그런 자신을 말리러 달려오는 친지나 친구들때문에 휘청거린다. 하지만 멈출수는 없다. 총을 가진 사람은 모두 잠재적인 살인자가 되며, 그걸 포기하는 것은 명품옷을 쓰레기통에 쳐박아 버리거나 근육질의 몸을 뚱뚱한 몸과 교환하는 것만큼 힘든 일이므로. '총을 가진 사람은 총으로 설득할 수밖에 없다'. '차는 탄환처럼 나아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건 내가 총을 가졌기 때문에 드는 생각일 수도 있다'라는 구절들이 말해주는 바와 같이.
이렇게만 보면 무척 하드보일드한 소설같지만, 미야베 여사의 책답게 비정함은 비정함으로 끝나지 않고 총알처럼 달려나가는 사람을 말리기 위해 동생, 후배, 분별있는 경찰들이 그들의 뒤를 쫒는다. 미야베 여사는 비정한 사회에 희생당하고 쓰러져가는 개인을 돕거나 함께하고자 나서는 선하고 의지 강한 이웃들을 묘사하는데 발군이며 '스나크 사냥' 또한 그 법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책은 그녀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하면 긴장감이 떨어진달까, 좀 성글다는 느낌이 든다. 아무래도 외국의 독자인 나는 대표작들을 먼저 접하니까 기대치가 너무 높아져 그녀의 모든 작품이 '이유'나 '모방범'같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다. 그러니까 결론은, 큰 기대만 안한다면 괜찮다는 말이다. 작품에 넉다운당하는 희열은 없지만 '긴 밤을 위로'하거나 '휴가철의 동행'이 되기에는 적당하다. 미미여사, 존경하고 있습니다. 분발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