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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
미야베 미유키 지음, 박영난 옮김 / 시아출판사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미 우리는 CF에서 보여주는 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파멸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TV와 쇼윈도가 보여주는 빛에 감전된 욕구불만은 만성이 됐고, 세계 곳곳에서 모델들은 거식증으로 사망하고 있으며, 일확천금을 주겠다는 리얼리티 쇼가 대중적인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화차'는 그런 시대를 그리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을 한자로 보지 못했을 때는 '꽃수레'란 뜻인 줄 알았다. 현대사회는 사람들에게 '요화'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불수레건 꽃수레건 사람을 망치는 건 같으며, 여기에 저항하지 못하는 어떤 사람들을 결코 이기지 못할 인력으로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여기에 나오는 두 여자는 '지옥으로 가는 수레'에 몸을 실었다. 이들이 지옥으로 가는 수레에 몸을 싣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은 죄들을 저질렀지만, 가지를 다 쳐내고 남은 가장 근본적인 죄는 돈을 잘못 썼다는 것이다. 자기 혹은 가족이. 현대 사회에서 돈을 잘못 썼다는 것 혹은 잘못 빌린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버림받고 파멸로 치달을 수 있는 죄가 된다. 감옥에 가는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영원히 무등록자로 방랑하거나 사채업자에 의해 험한 꼴을 보기도 한다. '화차'에서는 그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예가 나온다.
세키네 쇼코와 신조 교코. 두 여자에게 일본은 평화로운 경제대국이 아니라 맹수가 덮쳐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정글, 온정이 존재하지 않는 전시상태였다. 둘은 금융부채라는 같은 덫에 걸려 있었지만 한 사람은 자신이 초래했고, 한 사람은 가족으로 인해 발이 묶였다. 하지만 그 둘에게 닥친 무자비함은 누가 초래했는지에는 관심없었다. 굳이 관심이 있었다면 누가 희생자로 적합한가, 정도였을 것이다. 은행, 카드회사, 사채로 이어지는 빚의 고리에서 빠져 나가려면 죽을 정도의 노력에다 주위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것마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택하는 것은 애초의 실수를 뛰어넘을 만한 극단적인 방법이 아닐 수 없다.
'일회용 사람들'에서도 볼 수 있다시피 빚에 팔려서 운명이 좌지우지되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도 흔한 현상이지만 대부분은 상황에 굴복하여, 혹은 빚을 진 것은 자신의 책임이라 여기고 노예상태까지 수용하게 된다. 원금을 상회하는 이자를 받아내는 부조리한 구조에 대해서 항의할 수 있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런 의미에서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그런 상황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꿈을 꾼 신조 교코는 대단한 여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에 빠진 사람이 다른 사람을 부여잡고라도 탈출하고자 하는 것을 누가 비난할 수 있을 것인가.
전에는 미야베 미유키가 여성 캐릭터는 잘 다루지 못한다고 느꼈었다. 대부분의 책에서 캐릭터가 살아 숨쉬는 경우는 대부분 남자였고(특히 매력적인 소년을 창조하는 솜씨는 발군이다), 여자는 전형적인 캐릭터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도 두 여자는 직접적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추적하는 사람들에 의해 복원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화차'에서만은 현대사회의 금융부채에 ?기는 두 여자의 불안하게 두근거리는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누르고 괜찮은 척하는 것을 볼 때는 거의 눈물이 날 뻔했다. 그것도 희생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가해자를 위해서. '연민을 일으키는 범죄자'는 이제 지겨울 정도지만 나도 그녀의 이야기를 찬찬히 들어보고 싶은 걸 보니 혼마 형사와 같은 심정이 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