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질학, 지구사 그리고 인류 - 어느 지질학 입문 ㅣ 현대과학신서 40
장기홍 지음 / 전파과학사 / 199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현대 지질학의 기원은 1788년이다. 이 해는 스코틀랜드의 지질학자 제임스 허턴이 동일과정설을 발표한 해다. 현재는 과거의 열쇠란 개념을 주지(主旨)로 하는 이론이다. 지금 너무도 당연한 이 이론은 나왔을 당시에는 충격적이고도 위험한 이론이었다. 성경에 나오는 노아 홍수 같은 격변설을 부정한 이론이기 때문이다. 지층누중(地層累重) 이론도 그렇다. 저자는 씨를 심는 자가 있고 추수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는 말이 있거니와 학문의 세계에 있어서도 자료를 모으는 사람들이 있고 이론 또는 생각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있는 일이 허다하다고 말한다. 아이디어가 먼저 있고 자료가 후에 수집되어 그 아이디어를 뒷받침하는 예도 많다고 말한다.

 

격변설을 믿은 학자들은 부정합(不整合) 지층을 보면서도 이를 오랜 시간의 흔적이 아니라 대홍수나 지각 변동 같은 거대한 재앙이 순식간에 휘몰아쳐 지층을 뒤틀고 깎아낸 흔적으로 해석했다. 부정합이란 과거 지각변동의 흔적이다. 핵과 맨틀의 화학성분이 아주 다르다는 사실은 지구의 진화를 논의하는데 중요한 출발점이다. 지구가 변화 없이 처음 성분 그대로 뭉친 덩어리라면 내부 성분이 균일해야 하지만 겉을 감싸는 맨틀은 규산염(산소와 규소 중심) 광물로 이루어졌고 핵은 철과 니켈 같은 무거운 금속으로 채워져 있다. 이 극적인 차이는 지구가 태어난 직후 거쳤던 가장 거대하고 역동적인 사건인 지구 분화 과정(Differentiation)을 증명하는 결정적 증거다.

 

지구는 약 45억 년 전 수많은 소행성과 우주 먼지들이 충돌하며 뭉쳤다. 이때 발생한 엄청난 충돌 열과 방사성 원소의 붕괴 열로 인해 지구 전체가 완전히 녹아내린 마그마 바다 상태가 되었다. 지구가 액체 상태로 녹아내리자 무거운 원소인 철(Fe)과 니켈(Ni)은 중력에 의해 중심부로 가라앉아 핵을 형성했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산소(O), 규소(Si), 알루미늄(Al), 마그네슘(Mg) 등의 성분은 위로 떠 올라 맨틀과 지각이 되었다. 두 층의 화학 성분이 다르다는 것은 지구가 과거에 완전히 녹았다가 성분별로 분리되는 대대적인 화학적 체질 개선을 거쳤음을 뜻한다. 핵과 맨틀의 성분 차이는 단순한 구조적 특징이 아니다. 지구가 뜨거운 원시 행성에서 1) 스스로 내부를 정렬하고(분화), 2) 자기장을 만들어 생명을 보호하며, 3)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행성(판구조론)으로 진화해 온 역사의 첫 페이지를 열어주는 열쇠다.

 

지구는 내부가 고온임에도 고압으로 인하여 맨틀이 완전한 용융 상태에 이른 적이 없다. 지구 내부는 고온임에도 고압이어서 녹지 않는다. 반면 빙하 겉면은 압력을 받지 않고 속은 압력을 받아 녹는다고 한다. 이는 모순되게 보이지만 둘 다 가능한 일이다. 지구 내부를 구성하는 암석(맨틀)이나 금속(내핵)은 아주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규칙을 따르는 물질들이다. 물질은 고체에서 액체가 될 때 부피가 늘어난다. 분자들이 자유롭게 움직이며 자리를 더 많이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구 내부 깊은 곳에서처럼 엄청난 압력으로 사방에서 누르면 물질이 부피를 늘리며 액체로 변하고 싶어도 변하지 못한다. 따라서 녹는점(융점)이 강제로 높아지게 된다.(물질의 녹는점이 강제로 높아진다는 것은 원래라면 액체로 녹아내려야 할 온도에서도 물질이 녹지 못하고 고체 상태를 계속 유지한다는 의미다.) 지구 중심부로 갈수록 온도가 엄청나게 높아지지만 내핵이 고체이고 외핵이 액체인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내핵에 가해지는 압력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기 때문이다. 겉보다 온도가 훨씬 높아도 누르는 힘이 더 강하기 때문에 맨틀의 대부분과 내핵은 녹지 못하고 단단한 고체 상태를 유지한다.

 

반면 빙하를 이루는 물(얼음)은 전 우주에서 몇 안 되는 아주 독특한 성질을 갖는다. 얼음은 일반적인 물질과 반대로 고체(얼음)에서 액체(물)로 녹을 때 오히려 부피가 줄어든다. 얼음일 때 빈 공간이 많은 육각형 구조를 가졌다가 녹으면서 그 구조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얼음이 물에 뜨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빙하 깊은 곳에서 거대한 얼음 무게로 꾹 누르면 얼음 입장에서는 압력이 가해지니까 부피가 작은 액체(물)로 변하게 된다. 압력을 가하면 녹는 점이 0도씨보다 낮아진다.(영하에서도 녹는다) 이 현상을 복빙 현상(Regelation) 또는 압력 융해라고 한다.

 

빙하 밑바닥은 엄청난 얼음 무게를 받기 때문에 즉 고압 상태이기에 영하의 온도임에도 불구하고 얼음이 살짝 녹아 물(윤활유 역할)이 된다. 덕분에 빙하가 미끄러지듯 이동할 수 있다. 압력을 받지 않는 빙하 겉면은 기온이 영하라면 녹지 않고 얼어 있다. 빙하 자체의 거대한 무게(압력)를 가장 크게 받는 곳은 수백~수천 미터 아래에 있는 빙하의 맨 밑바닥(지표면과 맞닿은 곳)이며 압력 때문에 그곳부터 녹기 시작한다. 암석은 고온의 경우 액체로 변하게 되지만(녹지만) 압력이 높으면 고체 상태가 되고(부피가 작은 상태를 유지하고), 물은 압력이 가해지면 액체 상태가 된다.(부피가 작은 상태를 유지한다.)

 

물은 액체일 때 부피가 작고, 물 외의 물질은 고체일 때 부피가 작다. 물 외의 물질이 액체일 때 부피가 큰 것(고체일 때 부피가 작은 것)은 분자들이 자유롭게 움직이며 자리를 더 많이 차지하기 때문이다. 물은 액체 상태일 때 부피가 작아 밀도가 높아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얼음은 육각형 구조여서 내부에 빈 공간이 많아져 액체인 물보다 부피가 더 크고 밀도가 낮아서 물 위에 뜨게 된다.

 

저자는 달 속의 에너지가 달에 지질운동을 일으키기에 부족하지만 지구는 충분한 에너지를 보유하여 왔다고 말한다. 가장 중요한 열원은 지각에 농축된 방사성 원소다. 지구의 충분한 에너지는 끊임없는 지질운동을 일으킨다. 맨틀이 대류하고 대륙이 움직이며 화산이 터지는 이 역동적인 과정이 바로 지구를 살리는 축복이다. 지구 내부의 열에너지 덕분에 외핵의 액체 철이 움직이며 지구 자기장을 만든다. 이 자기장이 없다면 태양에서 오는 치명적인 우주 방사선 때문에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전멸했을 것이다.

 

화산 운동은 지구 내부의 가스를 뿜어내 대기층을 만들었다. 또한 지각이 맨틀 속으로 말려 들어가고 다시 튀어나오는 과정을 통해 생명에 필수적인 탄소와 영양분이 지구 전체에 끊임없이 순환한다. 지질운동이 멈춘다면 지구의 기후 조절 시스템도 고장나고 말 것이다. 지구는 물, 물 외의 물질, 온도와 압력의 밀고 당기기로 인해 만들어지고 유지된 것이다.

 

굳은 부분을 가진 생물이거나 그렇지 않은 생물이거나 그들에게 공통된 화석화의 요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빨리 묻혀 파괴를 피하는 것이다. 육지 생물은 멀리 운반되어서야 퇴적물 속에 묻히고 바다 생물은 죽은 그 자리에서 또는 짧은 운반을 거쳐 묻히는 것이 보통이다. 즉 바다 생물은 빨리 묻힐 기회가 훨씬 많다. 이 때문에 바다생물 화석이 훨씬 많다. 육지는 기본적으로 퇴적물이 쌓이는 곳이 아니라 깎여 나가는 곳(침식 지역)이기 때문이다. 교대 작용은 생물의 굳은 부분이 지하수에 용하여 용해되는 순간 그 지하수에 용해되어 있던 광물들이 그 자리에 침전함으로써 일어나는 작용을 말한다.

 

이 교대 작용은 생물 본래의 미세한 구조를 그대로 보존하면서 극히 점차적으로 일어나는 경우로부터 생물체 전부가 녹고 다른 광물이 그 자리를 메우는 경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규산에 의한 교대 작용 즉 규화작용의 경우는 화석 연구에 있어서 흔히 주목할 만한 결과를 가져온다. 첫째로 이런 방법으로 보존된 화석이 흔히 매우 정교한 내부 구조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며. 둘째는 석회암 속에 규화된 화석들이 함유되어 있을 때 석회암을 염산에 용해시키면 훌륭한 화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주요 단어들이 한자로 표기되었다. 이 가운데 黑色頁巖 같은 단어가 눈길을 끈다.(91 페이지) 엽암이라고 읽을까 아니면 혈암이라고 읽을까 궁금하다. 한글로 표기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셰일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저자는 실제로 포항 지역의 延日 셰일이라고 말한다.(93 페이지) 저자는 왜 동물들이 캄브리아기 초에 껍질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해 말한다. 대기 중 산소가 충분해야 그 상층에 오존층이 생성되는데 이때는 아직 외계로부터 지구에 쏟아지는 자외선을 막아줄 오존층이 생기지 않은 때여서 보호막으로 껍질이 생긴 것이라는 가설이 있다. 과학자들이 바라보는 캄브리아기의 껍질은 오존층이 없어 쏟아지는 자외선을 막는 방패인 동시에 포식자의 이빨을 막는 갑옷이었다. 지구 내부와 외계의 거대한 환경 변화가 생명체들에게 단단한 외투를 입도록 강제한 셈이다.

 

저자는 공룡 멸종이 몸집이 너무 컸기 때문이라고 한다.(115 페이지; 1991년에 처음 책이 나왔다.) 1991년은 소행성 충돌설이 최초로 제안되기는 했으나 과학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100% 정설'로 완전히 굳어지기 직전의 과도기였다. 당시 출판된 책들이 최신 과학 이론을 실시간으로 반영하지 못했거나 저자가 여전히 과거의 고전적인 학설을 지지했을 가능성이 크다. 저자는 우리에게는 고쳐야 할 점도 많고 선진(先進)에게서 배워야 할 것도 많음이 사실이지만 어떤 활동에도 대전제가 되어야 할 것은 우리의 영원한 자원인 마음씨를 잃지 않아야 하는 것이라 말한다.(175, 176 페이지)

 

저자는 사람은 지각변동의 고적(古蹟) 위에서 기거하고 있다고 말한다. 고고학자가 사전사학도(史前史學徒)라면 지질학자는 사전사전사학도(史前史前史學徒)라고 말한다.(181 페이지) 저자는 지질학은 생성과정을 문제삼는 학문이라 말한다. 지질학(Geology)은 지구를 이루는 물질들의 생성과정(Origin and Formation Process)을 규명하는 것을 가장 본질적인 목표로 삼는다. 단순히 현재의 상태를 기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 암석과 지층이 과거에 어떤 환경에서, 어떤 물리·화학적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가?라는 역사적 원인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저자는 석탄은 햇빛의 통조림이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모든 돌이 일종의 통조림이라 말한다. 석탄이 고대의 햇빛과 생명 에너지를 담은 통조림이라면 모든 돌(암석)은 그 돌이 만들어지던 당시 지구의 '환경, 기후, 지각 변동의 순간'을 밀봉해 놓은 타임캡슐이자 정보의 통조림이다. 저자는 시간이란 요소는 시험관에 넣거나 기계에 걸 수 없으므로 지질학적 연구대상 가운데는 실험실에서 재현시킬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말한다. 이 때문에 지질학도는 먼저 현재 지구상에서 진행되고 있는 현상과 과정에 관한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그것을 과거에 적용시켜 과거 지질 시대의 일들을 해석하게 된다. 그래서 지질학의 가장 중요한 원리는 현재는 과거의 열쇠라는 표어 속에 잘 나타나 있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 아니라 온신이지고(溫新以知故)다.

 

그러므로 지질학도에게 요청되는 제3의 소질은 풍부하고도 건전한 상상력이다. 또한 거꾸로 지질학적 훈련은 매우 효과적으로 사람의 상상력을 풍부하게 해준다. 지질학도들 가운데 막대한 수가 판구조의 원리를 응용한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실로 지질학에 새로운 활력이 불어넣어졌다. 지질학의 혁명이 일어났다고들 한다. 지질학의 이름마저 지구학으로 바꿀 단계가 왔다는 주장이 유력하다.(189 페이지) 과거의 지질학이 죽어있는 돌을 분석하는 학문이었다면 현대의 지구학은 기후변화, 환경오염, 화산과 지진, 자원 고갈 등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 지구 전체의 변화를 다루는 역동적인 학문이 되었다. 돌(地質)이라는 글자에 갇혀있기엔 지구(地球)는 너무나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움직이고 있다.

 

태평양에는 심해동물군이 있으나 동해에는 심해동물군이 없다. 이는 동해가 태평양의 잔류물이 아니라 태평양과는 별개로 생겨났고 역사가 짧아 아직 심해동물군의 생태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저자에 의하면 온습(溫濕)한 저평지대(低平地帶)에 있어서 강우량의 1/3은 지표수가 되고, 1/3은 증발되고, 1/3은 지하수가 된다.(215 페이지)

 

단층이 처음 생길 때도 지진이 일어나지만 멈추었던 단층이 다시 운동할 때도 지진이 일어난다. 우리가 겪는 파괴적인 대형 지진의 대부분은 처음 생기는 단층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단층이 다시 움직일 때 발생한다. 지진은 탄성체만이 일으킨다. 탄성체(Elastic body)란 외부에서 힘을 가하면 모양이 변했다가 힘을 제거하면 원래의 모양과 크기로 완벽하게 되돌아가는 성질(탄성)을 가진 물체를 말한다.

 

20세기 구조지질학의 발전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한 독일의 천재적인 지질학자 한스 클로스(Hans Cloos; 1885~1951)는 지질학은 지구의 음악이란 말을 했다. "황홀했던 여행의 나날 동안 문득 내 머릿속에 떠올라 수년 동안 몇 번이고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던 생각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지질학이 지구의 음악(Geology is the music of the earth)이라는 생각이다."

 

한스 클로스는 첼로 연주에 능하고 그림을 사랑했던 예술가적 기질이 충만한 과학자였다. 한스 클로스는 우리가 자연을 사색함에서 기쁨을 맛보는 까닭도 우리 자신의 혼(魂)의 음악과 지구의 음악의 조화 때문이 아니겠는가?란 말을 했다. 한스 클로스에게 지질학이란 단순히 돌의 성분을 외우고 지도를 그리는 딱딱한 학문이 아니었다. 지질학을 통해 지구의 생성과정과 메커니즘을 배우는 것은 지구라는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악보를 읽는 법을 배우는 과정과 같다. 한스 클로스는 지구 지각이 찢어지거나 부러지는 거대한 지질학적 과정을 실험실 책상 위에서 완벽하게 재현해 낸 혁신적인 실험인 점토 축소 모형 실험(Scaled Clay Model Experiment)을 실행한 과학자였다.

 

"With mind and hammer"라는 말이 있다. 지질학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숭고하게 여겨지는 전통적인 모토이자 라틴어 격언인 'Mente et Malleo'를 영어로 번역한 이 말은 '사색과 망치로' 또는 '지성과 망치로'라는 의미를 지닌 말이다. 저자의 책은 한자가 많고 글씨체가 작아 읽기 불편하지만 읽을 만하다. 한스 클로스란 과학자를 알게 된 것이 수확이고 다행이다. 지질학자는 아니지만 지질공원 해설사로서 감사하고 만족스럽다. 좋은 지질학 아니 지구과학 책을 많이 찾아 읽어야겠다. 야외조사기회도 가끔이나마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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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벌 warming이 아니라 글로벌 heating의 시대로 접어든 것 같다. 현재 지구의 온도 상승 속도는 인류 역사뿐만 아니라 지구 역사 전체를 통틀어 유례가 없을 정도로 급하게 빠르다. 가속 가열의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여전히 지금의 기온 상승이 인간 때문이 아니라 태양 활동, 화산, 지구 자전축 변화 등 자연적 요인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자연적 요인만으로는 지금의 폭발적인 온도 상승 속도를 절대 설명할 수 없다. 만일 산업화 이후 인류가 지금과 다르게 마구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 순환형 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했다면 세계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 수준을 유지함에 따라 폭염, 한파, 초대형 태풍 같은 극단적인 이상 기후가 일상화되지 않고 예측 가능한 계절의 변화가 유지되었을 것이다. 석탄, 석유 대신 수력, 풍력, 조력, 초기 형태의 태양광 기술이 19세기부터 집중 연구되었을 것이다. 가뭄과 홍수로 인한 식량 위기가 적어 전 세계적인 기아 문제가 지금보다 훨씬 덜했을 것이다. 거주지가 사막화되거나 침수되어 삶의 터전을 잃고 떠도는 수천만 명의 기후 난민이 발생하지 않아 국제 사회의 사회적 비용과 갈등이 크게 줄었을 것이다.

 

화석연료는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축복이자 문명의 존립을 흔드는 저주였다고 할 수 있다.

1) 전 세계에서 화석연료 연소 및 산업 공정으로 인해 가장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나라는 중국, 미국, 인도 순이다. 2) 누적 순위는 미국, 유럽연합, 중국 순이다. 3) 국민 1인당 배출량을 기준으로 하면 미국, 호주, 대한민국, 사우디아라비아 순이다.

 

우리나라는 기후 빌런 국가로 손꼽히고 있다. 그 이유는 1) 재생에너지 비중이 9~10% 수준으로 OECD 국가 중 압도적인 꼴찌 기록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고, 2) 전력 생산의 60~70% 이상을 여전히 석탄화력발전과 액화천연가스(LNG)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고, 3) 철강(포스코), 반도체·전자(삼성) 등 탄소를 다량으로 배출하는 중화학 공업과 제조업이 국가 경제의 뼈대를 이루고 있어 단기간에 탄소를 줄이는 것이 매우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고, 4) 개발도상국의 기후 변화 대응을 돕는 기금(기후 재원) 분담이나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설정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억울한 점도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설령 넷 제로(탄소중립)에 성공하더라도 다른 나라들이 탄소를 계속 배출한다면 우리는 기후 변화로 인한 타격을 거의 그대로 입게 된다. 대기는 국경 없이 전 지구를 하나로 순환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탄소 배출량은 전 세계의 약 1.3~1.6% 수준에 불과하다.

 

이번에 사고가 난 네팔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극히 미미하지만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실정이다. 네팔은 기후 불평등으로 인한 대표적 희생국이다. 얼마 전 한 탐방객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내가 미국, 중국 등이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데는 관심이 없고 패권주의적 경향으로 일관하고 있으니 세계가 암울하다고 하자 탐방객은 (선호하는) 미국을 (“빨갱이 나라”) 중국과 함께 논하는 것이 불편했던지 화난 얼굴을 했다.

 

하지만 그 70대 여성 탐방객이 지지하는 트氏는 기후 위기를 사기라고 부르며 전면 부정하는 확고한 기후 변화 회의론자다. 마이클 마니아티스의 [분리수거에 진심인데 왜 지구는 뜨거워질까?]란 책이 나왔다.

 

글로벌 기후 연구 기관인 카본 메이저스(Carbon Majors)의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파리협정 이후 전 세계에서 배출된 온실가스의 80%가 단 57개의 화석연료 및 시멘트 기업에 의해 발생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라.

 

전 세계에서 분리수거된 플라스틱 중 플라스틱 제품으로 재활용되는 비율은 9~10%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기술적·경제적 이유로 매립되거나 소각로에서 불타며 엄청난 탄소를 뿜어낸다. 1970년대 미국의 대형 석유화학 기업들은 플라스틱 규제를 피하기 위해 재활용 마크를 만들고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였다.

 

"플라스틱은 죄가 없다, 분리수거를 제대로 안 한 소비자의 잘못이다"라는 프레임을 씌워 쓰레기 처리 비용과 도덕적 죄책감을 고스란히 개인과 지방자치단체에 떠넘긴 것이다.

 

요즘 많이 떠도는 말이 화성 또는 달 테라포밍이다. 아메데오 발비 같은 천체물리학자가 지적하듯 테라포밍은 너무 복잡하고 어렵고 위험하고 비용이 너무 들어가는 일이다. 전 세계의 넷 제로(Net-Zero)를 달성하는 것이 화성 테라포밍보다 압도적으로 쉽고, 비용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적게 든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환경 보호 캠페인이 아니라 문명 전체의 뼈대를 바꾸는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이다. 이번 빙하 붕괴에 의한 히말라야 대홍수는 충격 그 자체였다. 지금의 추세는 비관적인 생각을 갖게 한다. Exodus가 난망한 거대한 늪에 빠진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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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화성으로 떠날 수 없다 - 생명체, 우주여행, 행성 식민지를 둘러싼 과학의 유감
아메데오 발비 지음, 장윤주 옮김, 황호성 감수 / 북인어박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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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서 독보적으로 아름다운 우리 지구는 아름다울뿐 아니라 지금껏 알려진 유일한 생명의 행성이자 수십억 년 동안 큰 온도 변화를 겪으면서도 생존 가능한 상태를 유지한 기적적인 행성이다. 하지만 지구는 무수한 죽음 위에 핀 행성이다. 지구상에 출현한 모든 종(種)의 99% 이상이 멸종했다. 지금껏 다섯 번의 대멸종이 일어났다. 이탈리아의 저명한 천체 물리학자인 아메데오 발비는 지구가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구를 위해 존재한다고 말한다. 지구가 인류의 편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지구에 완벽히 적응하도록 진화했다는 의미다.

 

지금은 우주 탐사가 적극적으로 추진되는 시대다. 이 책은 우리 종의 장기적인 생존이 지구를 대체할 수 있는 행성을 찾는 것에 달려 있는지 아니면 다른 전략을 찾는 편이 나을지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책이다. 지구와 생명체에 심각한 기후 이상을 초래할 수 있는 것 가운데 화산 폭발을 빼놓을 수 없다. 약 75000년 전에 발생한 인도네시아 토바 화산이 폭발할 때 나온 먼지와 화산재가 태양 빛을 차단해 몇 년 사이에 지구 평균 온도가 5~15도 떨어졌다. 슬픈 현실은 우리의 생존에 가장 심각하고 즉각적인 위협은 우리 자신에게서 올 것이라는 예측이 힘을 얻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시대는 인류가 지구를 자신들의 삶에 맞춰 변형시키는 행위가 매우 빠르고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으며 우리가 이를 통제하기 어려운 시대다. 저자는 기술 진보가 우리 종의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넘게 할 것이라고 낙관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런 방식의 진보라면 인류를 조기에 종말로 이끌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지구를 떠나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스티븐 호킹은 지구를 떠나 우주에 식민지를 개척해야 한다고 말했고, 마틴 리스는 대규모 우주 이주를 위험한 환상이라 말한다. 지구는 주거 지역으로 남기고 우주는 외곽 산업단지로 조성하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탈출 속도를 감안하면 지구를 떠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지만 아주 어렵다. 물체를 수직이 아닌 지구 표면에 평행하게 자전 방향으로 발사하면 훨씬 오랫동안 낙하를 지연시켜 지구 저궤도로 보낼 수 있다. 약 400km 고도에서 초속 약 7km(시속 약 28000km) 속도로 90분마다 지구 한 바퀴를 도는 국제우주정거장이 대표 예다. 지구 제궤도는 대략 고도 200~2000km 사이의 영역이다. 우주비행사들이 지구 저궤도에서 무중력과 같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중력이 약해져서가 아니라 그들과 함께 있는 우주선이나 우주 정거장이 지구를 향해 자유 낙하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직접 지면을 향하지는 않고 대략 원형의 궤도를 돈다.

 

지구 저궤도에 있는 우주선들은 여전히 지구 대기의 가장 바깥층인 열권과 외기권에 머물고 있다. 지구 표면으로부터 100km 이상의 고도를 카르만 라인(Karman Line)이라 한다. 우주는 우리가 정의하는 아름다운 곳과 정확히 대척점에 있는 공간이다. 의사이자 공군 비행사인 해리 암스트롱의 이름에서 유래한 암스트롱 한계(Armstrong Limit; 19km 고도)를 넘으면 대기압이 몸 내부 체액의 압력보다 낮아져서 목과 폐의 수분이 증발한다. 35km 지점을 넘어서면 오존층의 보호가 사라진다.

 

우주 공간에 도달하면 대기가 사라져 낮과 밤 사이의 일교차가 극단적으로 커진다. 국제우주정거장은 영상 120도와 영하 160도 사이를 오간다. 수성과 금성은 너무 혹독하고 위험한 곳이다. 달에 가는 것은 지구 저궤도에 가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고 위험하다. 달 환경은 인간에게 매우 적대적이다. 달에는 대기가 거의 없다. 표면 온도 변화는 영상 130와 영하 170도 사이를 오간다. 화성에 가는 것은 달에 가는 것보다 여러 모로 훨씬 어렵고 위험하고 복잡하다. 여러 까다로운 조건을 감안해야 한다.

 

흥미로운 점은 화성의 희박한 대기로 인한 극히 낮은 우주선 착륙 저항을 해결하기 위해 우주선의 속도를 줄여줄 충분한 연료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높은 이산화탄소 농도에 비해 대기가 너무 희박해 사실상 온실효과가 일어나지 않아 매우 춥고 척박한 곳이 화성이다. 화성 중력은 지구 중력의 1/3 수준이다. 화성에 물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당장 사용하기에 적합하지는 않다. 화성과 달의 흙을 레골리스(regolith)라 한다. 바위를 덮고 있는 이불 같은 존재다. 이 흙을 경작에 사용하려면 다양한 유기물과 비료를 인공적으로 첨가해야 하며 과염소산염 같은 독성 물질이 고농도로 포함되어 있어 인간과 대부분의 생물체에 해롭다.

 

지구에서 가장 살기 어려운 곳조차 화성에 비하면 천국이다. 화성에 인간을 보내는 일은 심지어 몇 년간의 왕복 임무만 하더라도 엄청난 성과가 될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준비 없이 화성으로 떠나는 일은 대규모 자살 만큼이나 미친 짓일 수 있다. 지구를 벗어난 환경에서 지구와 유사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복합하고 어려운 일이다. 지구에서 화성은 단지 거리가 먼 정도가 아니라 지구 행성의 궤도 공전 속도 물리법칙이 다르기에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다.

 

테라포밍이란 개념이 있다. 이는 의도적으로 전체 행성의 환경을 변화시켜 지구와 유사하게 만들고 인간 생존에 적합하게 하는 작업을 의미한다. 칼 세이건은 이 분야의 선구자다. 화성이 오늘날의 화성이 된 것은 지구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다. 네터 배철은 우주의 팽창을 막지 못하는 지구를 체중미달의 지구라 표현했다. 대기와 물이 있었던 화성이 오늘의 지옥 같은 곳이 된 것은 크기가 작기 때문이니 화성도 체중미달의 행성인 셈이다.

 

저자는 화성 토양에 매장된 이산화탄소 양은 온도를 충분히 올려 눈덩이 효과를 일으키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말을 한다. 여기서 말하는 눈덩이란 차가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눈덩이가 계속 다른 눈을 흡수해 커지는 효과를 의미한다. 저자는 우리가 화성의 기후와 환경을 마음대로 바꿀 능력이 있다면 지구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 훨씬 더 간단할 것이라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지구 온난화를 제어하는 일은 화성의 기후를 변화시키는 것보다 훨씬 더 간단하다.(172 페이지)

 

저자는 현재의 화성은 지구의 대체제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겉보기에는 그렇지 않을 수 있지만 화성의 환경은 달만큼이나 적대적이다. 게다가 달과 비교해도 화성에 정착했을 때 얻는 이점이 거의 없다. 유인 탐사선이 언젠가 화성에 도달해 머지 않은 미래에 남극이나 해저 기지와 유사한 소규모 전초기지를 세우겠다는 꿈을 갖는 것은 충분히 가치 있지만 화성에 도시를 세우는 일은 과학 소설에 맡기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156 페이지)

 

오닐 실린더(O'Neill Cylinder)란 개념이 있다. 1976년 미국의 물리학자 제라드 오닐(Gerard K. O'Neill)이 제안한 거대 인공 우주 거주구(Space Colony) 구상이다. 행성 표면에 기지를 짓는 화성 이주가 아니라 우주 공간에 지구와 유사한 환경을 가진 거대한 인공 구조물을 만들어 인간이 살게 하겠다는 아이디어다. 제라드 오닐은 이 거대한 실린더를 설치할 최적의 장소로 지구-달 시스템의 L5(다섯 개의 라그랑주점) 지점을 콕 집어 제안했다. 중력적으로 완벽한 균형을 이루어 궤도 유지 연료가 들지 않고, 달에서 자원(철, 규소 등)을 채굴해 기지를 건설하기 가장 쉬운 명당이기 때문이다.

 

오닐 실린더도, 화성도, 지구도 모두 광활하고 텅 빈 우주라는 대자연의 허공 속에 떠 있는 존재라는 점에서 완벽히 같다.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지구는 거대하고 단단해 보이지만 그저 태양 중력에 묶여 시속 10만 km가 넘는 속도로 허공을 질주하는 우주선일뿐이다. 다만 모두 허공에 떠 있지만 지구란 우주선은 자기장, 대기, 물, 중력 등 인류에게 필요한 모든 생명 유지 장치를 자연적으로 완벽하게 갖춘 단 하나의 기적의 공간이다.

 

우주 엘리베이터(Space Elevator)는 로켓을 쏘아 올리는 대신 지상에서부터 우주 정지궤도 너머까지 거대한 케이블을 연결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우주를 오가겠다는 혁신적인 우주 운송 시스템 구상이다. 우주 엘리베이터가 반드시 정지궤도(고도 36,000km)까지 도달해야 하는 이유는 그 지점을 넘어야만 중력과 원심력의 균형에 의해 엘리베이터가 쓰러지거나 추락하지 않고 하늘에 팽팽하게 서 있을 수 있는 우주적 균형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오닐 실린더와 우주 엘리베이터는 모두 혹독한 환경의 외계 행성을 지구처럼 바꾸는 테라포밍(Terraforming)이라는 거대한 장벽을 우회하기 위해 제안된 핵심 대안들이다.

 

적어도 태양계 내에서 지구 외에 인류에게 현실적인 대안은 없다.(171 페이지) 저자는 생명체에게는 지구 2.0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193 페이지) 우리가 외계 행성을 잠재적으로 가주 가능하다고 말할 때 그것은 인간이 그곳에서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아니라 박테리아와 같은 생물이 생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우리가 새로운 외계 행성을 발견하려는 이유는 그곳에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곳을 연구하고 우리가 아직 모르는 사실들(생명이 어떻게 시작 됐는지, 우주에 퍼져 있는 생명의 분포가 어떠한지, 어떻게 지구를 더 생명이 살기 좋은 행성으로 만들어야 하는지, 한 행성을 불모지로 만드는 원인이 무엇인지)을 알기 위해서다.(194 페이지)

 

우리와 다른 별 사이를 가로막는 거리는 엄청나게 멀고, 여행 시간을 줄일 획기적인 해결책도 당장에 없다. 가장 가까운 행성계의 잠재적으로 거주 가능한 행성에 가는 데만 긍정적으로 봐도 수백 년이 걸릴 것이고, 더 현실적으로는 수천 년이 걸릴 것이다.(215 페이지) 1톤의 화물을 광속 대비 1/10까지 가속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는 현재 전 세계 에너지 생산량과 맞먹는다는 점을 알 필요가 있다.(223 페이지) 물리법칙과 우주의 작동 방식이 지닌 한계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빛보다 빠른 속도로 여행할 수단과 가능성을 집요하게 모색했다.(225 페이지)

 

저자는 지구 바깥에 또 다른 지구는 없다고 말한다. 인간은 이 행성의 생물이며 이들을 다른 곳에 옮기려면 그들이 태어난 세계의 일부를 떼어내는 밀봉된 거품 안에 가둬야만 한다. 인간이라는 단어가 흙을 뜻하는 부식토와 같은 라틴어 뿌리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는 문자 그대로 우리가 사는 세계와 같은 재료로 만들어졌다. 우리는 몸의 일부를 잃고 살아남을 수 있지만 우리를 지탱하는 풍경과의 연결 없이 살아남을 수 없다. 우리는 이 작은 젖은 바위에 불과한 지구가 우리 은하 변두리의 별 주위를 돌고 있는 한 절대로 그 인연을 끊을 수 없다.(244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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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지구 - 판구조론, 지질학자들이 밝혀낸 지구의 움직임
최덕근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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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 구조론, 지질학자들이 밝혀낸 지구의 움직임’이란 부제가 달린 [내가 사랑한 지구]는 최덕근 교수의 책이다. 저자는 삼엽충 전문가이다. 저자가 판구조론이란 말을 처음 들은 것은 1971년으로 일본의 이와나미(巖波) 신서(新書) 중 한 권인 우에다 세이야(1929-2023)의 [새로운 지구관; 新しい 地球觀]이란 책을 통해서였다. 4년의 지질학 수업 시간에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 개념이었다고 한다. 판구조론이 과학계에 공식적으로 등장한 시기가 1970년 무렵이니 대단히 빨랐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지구과학은 400km 정도까지의 얕은 부분을 다루는 판구조론과 2900km까지의 깊은 부분을 다루는 플룸 구조론이 함께 통용되는 무대다.

 

우에다 세이야는 지진 예측이 가능하다고 본 학자이기도 하다. 본문에 지각평형설이 나온다. 저자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대륙지각이 가라앉을 수 없음을 말하는 이론이라 설명한다. 추가로 설명하면 이는 무게 변화에 따라 지각이 끊임없이 위아래로 움직이며 균형을 맞추는 것을 의미하는 이론이다. 본문에 찰스 라이엘의 동일과정설이 시간이 흐르면서 신랄한 비판을 받게 되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현대 과학이 라이엘의 동일과정설을 비판하는 것은 그가 이룩한 지질학의 기초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기적을 반박하기 위해 설정한 극단적 점진설에 갇혀 지구 역사의 역동적인 격변과 진화적 증거들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라이엘이 자연법칙의 균일성으로부터 그와 무관한 속도의 균일성과 상태의 균일성을 도출해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찰스 라이엘은 추운 극지방에서 석탄층이 발견된 것을 보고 육지와 바다의 분포가 달라지면 기후가 달라졌을 것이고 그러면 그린란드에도 석탄이 쌓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라이엘은 그린란드가 언제나 극지방에 고정되어 있었다고 생각했다.

 

대륙은 절대 옆으로 이동하지 않으며 단지 주변의 육지와 바다 모양이 바뀌면서 극지방인 그린란드의 기후가 열대로 변해 석탄이 쌓였다고 본 것이다. 사실은 따뜻한 곳에서 석탄이 생긴 뒤 대륙 자체가 극지방으로 이동해간 것이다. 찰스 라이엘은 대륙이동설이 나오기 100년 전 학자였다. 이 이야기를 통해 내가 사는 연천이 예전에 얕은 바닷가였던 곳이 아니라 적도 지방의 얕은 바닷가였다가 대륙이동으로 지금의 자리로 온 것을 연상하게 된다.

 

단층에 의해 중첩된 암석을 식탁보를 접어놓은 것 같다 하여 프랑스어로 냅(nappe)이라 한다. 대륙이 이동한다는 아이디어를 현대적인 과학 가설 형태로 처음 공식 발표한 사람은 프랭크 버슬리 테일러(Frank Bursley Taylor)다. 그러나 테일러는 대륙이 이동해 부딪히면서 산맥이 생겼다는 놀라운 직관을 가졌지만 이를 뒷받침할 증거를 수집하지 않았고 자기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크게 노력하지 않았다.

 

이에 비해 베게너는 단순히 대륙이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화석 일치, 멀리 떨어진 대륙 간의 지질 구조 연속성, 고생대 빙하 흔적 등 전방위적인 증거를 모아 [대륙과 해양의 기원](1915)이라는 거대한 과학적 체계를 완성했다. 저자는 테일러는 대륙이동을 단순히 빙하의 움직임처럼 다루었고 지구 내부와 연결시키지 않았다고 말한다.(85 페이지)

 

베게너는 대륙을 이동하게 하는 힘과 산을 형성시킨 힘은 같기에 대륙이동은 단층, 지진, 화산 등 자연현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알렉산더 뒤 토아(Alexander du Toit; 1878-1948)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천재적 지질학자로 베게너가 사망한 이후 전 세계적인 비판 속에서도 대륙이동설을 끝까지 지키고 한 단계 발전시킨 가장 강력한 옹호자였다. 알프레트 베게너가 과거에 모든 대륙이 하나로 뭉쳐 있던 하나의 초대륙 판게아(Pangea)만을 주장한 반면 뒤 토아는 남반구 지층을 정밀 연구한 끝에 이를 수정·발전시켰다. 북반구의 로라시아, 남반구의 곤드와나, 그리고 그 사이에 테티스해(Tethys Ocean)라는 거대한 바다가 있었다고 명확히 구분지은 것이다.

 

뒤 토아가 베게너의 하나의 초대륙(판게아) 개념을 깨고 북반구의 로라시아와 남반구의 곤드와나라는 두 개의 거대 대륙으로 양분한 이유는 북반구와 남반구 지층에서 나타나는 암석과 화석의 성격이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뒤 토아는 남반구 대륙들은 남극 근처에 옹기종기 모여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고 있었고 북반구 대륙들은 적도나 중위도 부근에 별도의 덩어리(로라시아)로 존재했음을 밝혀냈다. 베게너는 대서양 양쪽을 보며 원래 하나였다고 외친 대담한 이론가였고, 뒤 토아는 남북반구의 지층 차이를 보며 남쪽과 북쪽은 원래 따로 놀던 두 개의 세계라고 정교하게 수정했다.

 

현대 판 구조론은 두 사람의 시각을 수용하여 대륙들이 수억 년 주기로 뭉쳤다(판게아) 흩어지기를 반복한다는 초대륙 주기(Supercontinent Cycle)를 정립했다. 리처드 필드는 “현재 지질학의 최대 약점은 땅만 연구하는 것이며 지구 표면의 1/3만을 차지하는 대륙만 연구하여 지구에 관한 내용을 알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역설했다.

 

영국의 해양지질학자이자 지구물리학자인 프레드 바인(Fred Vine; 1939~2024)은 해저 암석의 자기(磁氣)가 현재의 지구자기장과 같은 방향으로 배열된 경우에는 그 세기가 강하게, 반대 방향으로 배열된 경우에는 그 세기가 약하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바인과 매슈스의 논문은 발표 당시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 이유는 당시 과학자들은 지구 자기장이 뒤바뀐다거나 해저가 확장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주저했기 때문이다.

 

변환 단층이란 판이 만들어지지도 소멸하지도 않으면서 판이 서로 스쳐가며 운동 형태가 유지변환된다는 의미에서 붙은 이름이다. 바인은 바다 밑 얼룩말 줄무늬를 발견한 사람이다. 고지자기 대칭을 의미하는 얼룩말 같은 줄무늬는 판 구조론의 결정적 단서다. 판이 해령 축에서 멀어질수록 암석의 나이가 많아지며 줄무늬가 대칭을 이룬다는 것은 해령에서 새로운 지각이 끊임없이 태어나 양쪽으로 밀려 나가고 있음을 설명하는 결정적 증거였다.

 

와다치대, 베니오프대, 자바리츠키대 등의 명칭이 있다. 이는 연구자인 와다치(일본), 베니오프(미국), 자바리츠키(러시아)의 이름을 딴 명칭이었다. 판구조론에서 판이 소멸하는 구체적인 현장을 지칭하는 용어들이었는데 지금은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섭입대라 부른다. 자바리츠키는 지진 데이터를 통해 경사 지진대를 물리적으로 처음 발견한 인물이라기보다 와다치, 베니오프가 발견한 지진대 데이터를 바탕으로 화산과 섭입 메커니즘의 유기적 관계를 세계 최초로 완벽하게 정립해 낸 인물이다.

 

과학사의 관점에서 와다치, 베니오프의 섭입대 발견은 미적분학(뉴턴과 라이프니츠), 산소(프리스틀리와 라부아지에), 해왕성(아담스와 르베리에)의 사례와 궤를 같이하는 완벽한 '공동 발견(Multiple discovery)'으로 보아야 한다. 공동 발견이란 이전의 연구나 서로의 연구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완벽하게 독자적인 상태에서 동일한 진리를 찾아내는 것을 말한다.

 

판(Plate)이라는 용어 자체를 전 세계에서 아예 처음 쓴 사람은 1965년 변환단층을 제안한 존 투조 윌슨이었다. 윌슨은 지구 표면의 거대한 껍데기를 Plate라고 묘사했다. 하지만 윌슨의 '판'이 단순한 지질학적 기술(묘사)에 가까웠다면 댄 맥켄지의 '판'은 수학적 법칙과 강체(Rigid body)의 물리학을 덧입힌, 진정한 의미의 '이동하는 단위'로 격상된 개념이었다. 이 때문에 과학계는 맥켄지의 1967년 논문을 기점으로 현대 판구조론(Plate Tectonics)이 비로소 완성되었다고 평가한다.

 

판은 지각과 다르다. 판은 지각보다 규모면에서 더 크다. 맨틀 바닥에 도착한 차가운 덩어리가 핵 주변의 뜨거운 물질을 옆으로 밀어내면 밀려난 뜨거운 하부 맨틀의 물질은 상승한다. 이처럼 물질이 상승하는 통로를 플룸이라 하며 플룸은 지표면에서 열점으로 표현된다. 하부 맨틀에서 올라오는 물질의 상승류는 규모가 엄청나게 크기 때문에 이를 특히 거대한 상승류라 한다.(229 페이지) 판구조론(Plate Tectonics)은 한 명의 천재가 하루아침에 완성한 것이 아니라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학자들의 독립적인 발견과 연구가 쌓여 완성된 현대 지질학 최고의 ‘공동 합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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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게 되는 한국사 - 머리에 새기고 마음에 남기는
김재원 지음 / 빅피시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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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저잣거리 지식 중개상으로 소개하는 김재원은 대중서 한 권이 나오려면 수십, 수백 명 연구자의 연구 성과에 기대어야 한다고 말한다. 책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근대사와 현대사이다. 저자에 의하면 근대라는 개념은 대단히 논쟁적인 말이다. 근현대사를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근대를 개항 전후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본다. 저자는 글의 초반부가 조금 복잡하고 어려워 보여도 인내심을 가지고 읽기를 바라는 마음을 내보인다. 책의 제목은 [울게 되는 한국사]이다. 부제는 '머리에 새기고 마음에 남기는'이다.

 

저자는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결말보다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우리는 결말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나온 말이고 교훈을 위해 과정을 되살펴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가슴 아픈 사건은 동학도(東學徒)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조선 조정이 청나라에 군대를 요청한 것이다. 갑신정변으로 청나라와 일본 사이에 맺어진 톈진 조약에 의하면 일본은 조선에 대해 청과 동일한 파병권을 갖는다는 조항이 있다. 청나라 군대가 인천에 상륙한다는 소식이 일본에 전해졌다. 조선에서 청과 일 양국 군대는 동시에 철수하고 동시에 파병한다는 톈진 조약을 핑계로 일본군 1만 명이 조선에 파병되었다. 저자는 이를 이렇게 표현한다. 뒤늦게 상황 파악을 한 조선 조정이 농민군과 교섭을 벌이려 했지만 이미 상황은 걷잡을 수 없었다고.(47 페이지)

 

청나라가 조선에 군대를 파병한 것은 농민군 진압이라는 명분에 의한 것이지만 내심은 일본을 견제하는 것이었다. 일본 역시 다르지 않았다. 두 나라가 전쟁을 벌이자 농민군의 전투 대상이 조선 관군에서 일본군으로 바뀌었다. 협상 대상인 조선 조정이 일본과 뜻을 함께하는 모양새가 된 까닭이었다. 일본이 청일전쟁에서 승리하자 러시아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선이 자주권을 가진 중립국이기를 바랐던 것일 뿐 그 이상의 군사적 충돌은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의 입장은 달랐다.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했음에도 삼국(프랑스, 독일, 러시아) 간섭으로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했고 요동 반도를 포기하는 대가로 기존 배상금 2억량의 추가로 3천만 냥을 얻어내고는 치욕적으로 물러나야 했다.

 

일본은 러시아와 연결된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사건을 벌이고 만다. 조선이 가장 치욕스러웠던 부분은 사건을 추적할 만한 단서가 많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대원군이 일본인 낭인들을 시켜 민비를 살해했다는 루머가 떠돌았다. 살기 위해, 다른 누군가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 숨 가쁘게 내달리던 조선은 다시 한반도에서의 열강 간의 균형추를 맞추려고 시도했다. 기울어진 일본으로의 추를 러시아 쪽으로 돌려놓기 위한 노력이었다. 고종은 변화하는 세계정세에 적응하기 위해 홀로서기를 강행했다. 대한제국이라는 얇디얇은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말이다.(60 페이지)

 

저자는 동학도와 농민들이 세상을 바꾸자며 죽창을 들었고, 이들을 진압한다는 핑계로 일본과 청나라가 조선 땅에서 전쟁을 벌였다고 말하며 승전 과정에서 일본이 조선에서의 영향력을 높였고 러시아와 대립각을 세우다 조선의 왕후가 암살당하는 초유의 사건까지 벌어졌다고 말한다.(61 페이지) 여기서 문장을 볼 필요가 있다. 러시아와 대립각을 세운 것은 일본이고, 암살당한 것은 왕후다. 주체가 다른 것이다. 그러니 일본이 러시아와 대립각을 세운 끝에 조선의 왕후를 암살했다고 말해야 자연스럽다.

 

일본이 왕후를 암살한 을미사변에 대한 반작용으로 일어난 아관파천으로 개화파 인사들 내부의 세력 균형이 재배치되었다. 개화파 내부의 친일 인사들이 일선에서 물러나고 독립 협회라는 새로운 거대 정치세력이 탄생했다. 1895년 을미사변, 1896년 아관파천, 1897년 대한제국 수립이라는 큰 분수령이 만들어졌다. 1898년 독립 협회가 서울 종로 광장에서 한국 역사상 최초의 근대적 대중집회인 만민공동회를 개최했다. 만민 공동회는 아관파천 이후 심해진 외세의 이권 침탈을 막아내고 백성들의 권리를 지키며 나라의 정치를 개혁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 집회였다.

 

황국 협회는 독립 협회가 왕을 쫓아내려 한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황국협회는 고종 황제의 황권 강화와 보수파 정부를 지지하기 위해 결성된 친 정부 성향의 어용 단체다. 고종은 군대를 동원해 독립 협회를 강제 해산시켰다. 독립 협회는 사적 이익을 추구하려는 조직이 아니었다. 하지만 투쟁 과정이 너무도 독선적이고 급진적이었다. 1904년 1월 23일 러일전쟁 직전 고종은 느닷없이 중립을 선포했다. 하지만 곧 전쟁터로 변해버린 한반도 땅에서 중립화 선언은 의미가 없었다.

 

일본은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었다. 그나마 일본을 견제하던 미국도 일본이 필리핀에서의 자국의 확고한 이권을 보장해주자 대한제국의 침략을 허용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다. 고종은 나라를 위해 순직할 의지가 털끝만큼도 없었던 황제였다. 1907년 헤이그 특사단이 파견되었다. 평화회의 의장국이던 러시아가 대한제국의 참가를 일본에 알렸다. 일본은 현실적인 방법으로 대한제국의 평화회의 참가를 무력화하려 했다. 통감부의 압력을 이기지 못한 대한제국 법부는 이상설에게 사형을, 이준과 이위종에게 종신형을 선고했다.

 

1910년 8월 22일 창덕궁 흥복헌에서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되었다. 1905년 덕수궁 중명전에서 을사늑약이 체결된 지 5 년만의 일이었다. 3.1 만세운동 직후인 1920년까지 신흥 무관 학교는 1천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고, 3천여 명의 독립군을 양성했다. 이들은 간도 더 넓게는 만주와 연해주 일대에서 행해진 독립전쟁의 지도자로 성장했고 바로 1920년대에 피 터지는 독립전쟁의 주인공이 되었다. 울게 되는 한국사라고만은 할 수 없는 내용이 청산리, 봉오동 전투다. 한 때 대첩(大捷)으로 불리기도 했으나 그 표현이 무색하게 이후 독립군의 무장투쟁에 침체를 가져왔다.

 

농토를 잃고 일자리를 잃은 조선인들은 일본으로 건너가야 했다. 재일 조선인 대부분은 잡부나 일용직 노동자와 같은 하층 노동자로 살아가거나 탄광 노동자와 같은 위험한 일을 일본인 대신 도맡았다. 1911년 2500명에 지나지 않았던 재일 조선인은 1920년 3만 명을 넘어섰다. 일본이 조선을 강제 병합한 후 조선인을 향한 멸시적 시선에 조선인은 위험하다는 생각이 덧붙여졌다. 이 상황에서 1923년 간토(관동) 대지진이 일어났다. 지진 발생 직후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탔다는 유언비어가 빠르게 일본 사회에 퍼졌다.

 

우물에 독을 탔다는 작은 거짓은 자연재해를 틈타 조선인들이 일본인을 집단으로 폭행하고 약탈하거나 심지어 폭탄을 던지거나 부녀자를 겁탈하고 있다는 소문으로까지 번졌다. 일본인 자경 단원들에 의해 조선인을 향한 집단학살이 자행되었다. 1929년 미국발 세계 대공황으로 경제가 무너지면서 조선인들이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기 시작했다. 일본인들이 차마 살 수 없는 곳에 움집이나 판잣집을 짓고 살아야 했던 조선인들은 1930년대 30만 명을 넘어섰다. 1930년 후반 중국 침략이 본격화하면서 중일전쟁이 시작되었고 1938년 국가 총동원법, 1939년 국민 징용령이 공포되면서 조선인에 대한 강제징용이 시작되었다. 강제징용에 의해 일본의 탄광이나 광산, 군수공장 등에서 노동해야 했던 재일 조선인은 100만 명 이상이었다. 식민지 조선인들은 일본에서 학살 대신 학살에 준하는 고강도 강제 노동을 만났다.

 

급격한 세계사적 변화 속에서 새롭게 바라본 중국인을 향한 조선인의 감정은 혐오였다. 근대라는 새로운 세상 속에서 중국인은 조선인에게 야만이었다. 어쩌면 일본과 상대적 우월 의식을 공유했다고도 볼 수 있다. 문제는 노동시장에서 조선인들이 중국인들과 경쟁했다는 점이다. 중국인들이 값싼 임금으로 노동시장을 잠식해 가자 조선인은 박탈감을 느꼈다. 박탈감과 혐오는 비인도적인 테러와 학살로 이어졌다. 그리고 중국인에 대한 혐오감정이 노골화된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배화(背華; 화교를 배척한다는 뜻) 폭동으로 불리는 반 중국인 폭력사태다.

 

식민당국은 1910년대까지 조선인들의 생업 유지를 핑계로 중국인 노동자 입국을 제한해 왔다. 하지만 1920년대가 되자 기존의 중국인 이주 정책을 수정했다. 싼 가격의 노동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제국과 식민지 사이에 왜곡된 경제 체제가 본질적 문제였지만 당시 언론은 오히려 조선인과 중국인 노동자 간의 대립을 부추겼다. 1920년대 말 세계 경제 대공황이 일어났다. 후발 제국주의 국가가 공항을 이겨낼 손쉬운 선택지는 전쟁이었다. 일본은 곧바로 행동을 개시했다. 그들의 1차 목표는 만주였다.

 

대공황으로 인해 영국, 미국, 일본의 제국 협조 체제에 균열이 발생했고 경제 불황으로 돌아선 일본 민심은 군부의 대륙 침략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였다. 1931년 9월 일본군은 조선 국경을 넘어 만주를 침략했고 이로써 만주국이 탄생했다. 일본 군국주의의 확장은 그 자체로 조선의 독립운동의 엄청난 후폭풍으로 다가왔고 1930년대로 접어들면서 독립운동은 거대한 암흑기에 접어드는 듯했다. 임시정부가 있던 상해는 일본의 점령 위기에 놓였고 신간회(1927년 창립된 좌우합작단체)는 해산되었다. 국내 사회주의 계열의 노동운동은 탄압받기 시작했고 조선인들의 독립 의지도 꺾여가고 있었다.

 

이봉창은 김구에게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육신의 쾌락은 대강 맛봤습니다. 이제 영원한 쾌락을 꿈꾸며 독립 사업에 헌신할 겁니다."라는 말을 했다. 일왕 저격에 실패한 이봉창은 32세에 교수형에 처해졌다. 윤봉길은 계몽 운동만으로는 독립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하고 무장 투쟁의 길을 걷기로 했다. 윤봉길은 무장투쟁을 이끄는 독립군이 될 수 없다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의거라고 생각했다. 거사 직후 윤봉길은 일본 헌병에게 연행되었고 상하이 파견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언도받아 우편선에 실려 오사카 육군 형무소에 수감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나자와 육군 구금소를 거쳐 1932년 12월 19일 군작업장에서 향년 24세로 총살형을 당했다.

 

일본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장준하도 1944년 일본군 학병에 강제 징집되어 중국 쑤저우 지구에 배속되어 있었다. 여느 학병처럼 강제로 일본군에 끌려간 장준하는 부대에서 조선인 학병을 규합해 친일파 총살을 요구하던 중에 부대에서 탈출해 중국군 유격대에 합류했다. 일본 게이오대학 문학부 재학중 학병으로 끌려온 김준엽도 마찬가지였다. 부대에서 탈출한 김준엽은 1944년 7월 9일 중국군 유격대 휘하에 있던 장준하와 역사적인 만남을 갖는다. 그런 저항이 쌓이고 쌓여 일본 제국주의는 패전하고 우리는 해방이라는 역사적인 결과를 맞이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일본제국의 식민이 아닙니다라고 힘겹게 외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해방은 힘겹게 우리 손으로 찾은 결과물이었다.

 

1945년 2월 얄타(러시아) 회담과 7월 포츠담(독일) 선언을 거치며 적절한 시기에 한국을 해방시킨다는 내용이 국제무대에서 합의되었다. 1945년 9월 2일 일본이 서명한 항목 문서에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고 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확약한다는 내용이 삽입되면서 한국의 독립이 공식화되었다. 한국인들은 식민지배에서 벗어났음을 깨닫고 환호했지만 이 환호는 다시 더 큰 아픔과 슬픔으로 다가왔다. 한반도의 정중앙을 가로지르는 선 즉 38선이 생겼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에서 논의된 한국의 해방에는 적절한 시기라는 조건이 있었고 이 조건을 핑계로 연합국의 두 축이었던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를 양분한 것이다.

 

분단은 시작됐고 1945년 8월 11일 소련이 북한 땅에 들어왔고 9월 8일 남한 땅에는 미군이 들어왔다. 1945년 12월 소련, 미국, 영국 대표가 모스크바 3상 회의를 통해 한국의 독립에 관한 문제를 논의했고 여기에서 신탁통치안이 결정되었다. 여수와 순천 지역 주민들이 반란군이 아닌 좌익 중심의 인민위원회에 동의했던 것은 폭력적이고 친일적이었던 경찰 세력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다. 더불어 경찰과 같이 친일행위를 일삼던 이들이 행정을 이끄는 상황, 게다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는 무능에 대한 반감이었지 반란군의 주장에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지역민들에게 반란군의 사상이나 이념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문제는 그저 생존이었다.

 

제주 4.3 사건과 여순 사건을 통해 대한민국에는 새로운 존재가 탄생했다. 바로 빨갱이다. 물론 빨갱이는 여순 사건 이전에도 존재하던 표현이었지만 이승만 정권은 여순 사건을 계기로 공산주의자는 빨갱이라는 공식을 넘어 빨갱이는 악마라는 등식을 완성했다. 빨갱이란 언제 죽여도 상관없는 존재라는 의미였다. 그 누구도 사상과 이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제 한국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사상은 반공이었다. 1948년 5월 31일 남한은 선거를 통해 제헌국회를 구성했다. 안타까운 것은 반민특위가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이었다. 정부 수립 이후 대다수 국민의 관심 대상이자 염원이었던 친일 청산은 그야말로 허무한 실패로 끝이 났다.(165 페이지)

 

전쟁은 학살이 일어날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이다. 한국 전쟁 때 벌어진 학살의 문제점은 학살의 주체였다. 학살을 일으킨 장본인이 남북의 국가 권력이었기 때문이다. 남한은 빨갱이 사냥에 혈안이 되었고 북한은 흰 패 사냥(공산주의에 동조하지 않는 자들을 사냥하는 것)에 열을 올리며 이념에 따른 정치적 학살을 자행했다. 남북한은 데칼코마니처럼 각자의 이념과 지향을 폭력으로 관철하며 상대방을 피로 굴복시켰다. 북한은 1948년 2월 조선인민군을 창군하고, 1948년 9월 정부를 수립했다. 창군(創軍)이 정부 수립보다 먼저였다. 군 조직은 남한보다 먼저, 정부 수립은 남한보다 늦게 단행한 것이다. 이는 분단의 책임을 남한에 미루고자 한 북한 정권의 노림수였다. 남한이 먼저 정부를 수립했으니 자신들은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정부를 만들었다는 논리였다.

 

남과 북이 서로 다른 정부를 수립한 시점부터 둘은 적이었다. 서로 한반도 유일 합법 정부임을 주장해야 했기 때문이다. 3.8선은 사실상의 국경선이었지만 남과 북 모두 이를 국경선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양측에게 3.8선 너머의 땅은 그저 언젠가 되찾아야 하는 땅이었고 그래서인지 그 주변에서 끊임없이 싸웠다. 인민군이 급박하게 후퇴하는 과정에서 우익 인사들은 지역에 남은 좌익 인사를 보복할지 모를 위협 세력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인민군은 빨갱이 사냥에 최전선에 있던 경찰이나 우익 청년단원들을 학살했다. 이 보복 학살이 더욱 가슴 아픈 이유는 인민군이 우익 인사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보도 연맹 사건의 피해자 유가족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가족과 친지를 학살로 내몬 이들을 또 다른 학살의 피해자로 만든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우리와 타자를 나누며 살아가고 있다.

 

일본이 패망한 이후 한국에 남은 일본 재산은 어떻게 처리되었는가. 한국은 이를 적산 즉 적의 재산이라 명명했다. 이때 일본과의 전쟁에서 이긴 미국이 등장했는데 일본 행정이 미군에 넘어갔으니 일본의 재산은 곧 미국의 재산이었다. 이후 1945년 12월 6일 한국에 있는 일본 재산은 국유와 사유를 막론하고 미군정청에 귀속되었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인 1948년 9월 대한민국 정부 및 미국 정부간의 재정 및 재산에 관한 최초 협정에 의해 한국 정부가 미국으로부터 일본 재산에 대한 권리를 이양받았다. 처음부터 미국은 한국과 일본이 화해하기를 바랐다. 이유는 간단했다. 냉전이라는 새로운 국제 관계 때문이었다. 미국은 아시아에서 소련과 중국의 확장을 막을 든든한 동맹국을 원했다. 그런데 한국은 너무나도 약했고 일본만으로는 부족했다.

 

어쩌면 우리는 여전히 한일 회담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만족스러웠을지 모를 이 회담 결과 누군가는 또 다른 상처를 입었고 진짜 피해자들은 아직도 아무런 사과와 보장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217 페이지) 1960년 후반부터 시작된 한강변과 강남의 성장은 서민 더 정확하게는 도시 빈민의 희생을 강요했다. 사실상 서울시 개발의 로드맵에서 도시 빈민이 설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눈여겨 볼 대목이 있다. 경제가 무너지면 정권은 흔들린다는 말이다.

 

저자는 유신 정권은 어처구니없게도 내부의 권력다툼으로 종말을 맞이했다고 말한다. 어쩌면 유신 정권의 이 황당한 마무리야말로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비극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시민들의 손이 아닌 유신의 1, 2인자 사이의 술자리 다툼으로 종결되었기 대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내부의 권력 다툼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 술자리에 있었던 사람이 대국적인 정치를 하라는 말을 했음을 감안하면 단순한 권력 다툼이라 하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저자는 유신 정권이 우발적 총탄으로 무너진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로 인해 이미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고 말한다. 황당한 마무리라는 말과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로 인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울게 되는 정도가 아니라 가슴 아프고 비참한 사건들이 우리 역사에 너무 많았다. 마지막 챕터는 ‘한강의 기적이 무너진 1997년의 겨울’이다. 구제 금융을 받아야 했던 사건을 말한다. 현대사는 거의 동시대이기에 생소함이 덜하다. 책이 다룬 근대사에 집중한 이유다. 우리에게 비극이 아닌 때는 없었다. 책이 다룬 부분은 정치, 군사, 경제와 관계된 역사다. 저자는 식민 청산과 통일이라는 화두로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2026년 5월 [세대X 한국사 - 혐오를 멈추고 시대를 읽는 현대사 수업]이란 책을 냈다. 혐오를 멈추는 것도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만하다. 이 책은 오랜만에 읽은 역사 책이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책이다. 다음에는 어떤 역사책을 읽어야 좋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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