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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질학, 지구사 그리고 인류 - 어느 지질학 입문 ㅣ 현대과학신서 40
장기홍 지음 / 전파과학사 / 199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현대 지질학의 기원은 1788년이다. 이 해는 스코틀랜드의 지질학자 제임스 허턴이 동일과정설을 발표한 해다. 현재는 과거의 열쇠란 개념을 주지(主旨)로 하는 이론이다. 지금 너무도 당연한 이 이론은 나왔을 당시에는 충격적이고도 위험한 이론이었다. 성경에 나오는 노아 홍수 같은 격변설을 부정한 이론이기 때문이다. 지층누중(地層累重) 이론도 그렇다. 저자는 씨를 심는 자가 있고 추수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는 말이 있거니와 학문의 세계에 있어서도 자료를 모으는 사람들이 있고 이론 또는 생각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있는 일이 허다하다고 말한다. 아이디어가 먼저 있고 자료가 후에 수집되어 그 아이디어를 뒷받침하는 예도 많다고 말한다.
격변설을 믿은 학자들은 부정합(不整合) 지층을 보면서도 이를 오랜 시간의 흔적이 아니라 대홍수나 지각 변동 같은 거대한 재앙이 순식간에 휘몰아쳐 지층을 뒤틀고 깎아낸 흔적으로 해석했다. 부정합이란 과거 지각변동의 흔적이다. 핵과 맨틀의 화학성분이 아주 다르다는 사실은 지구의 진화를 논의하는데 중요한 출발점이다. 지구가 변화 없이 처음 성분 그대로 뭉친 덩어리라면 내부 성분이 균일해야 하지만 겉을 감싸는 맨틀은 규산염(산소와 규소 중심) 광물로 이루어졌고 핵은 철과 니켈 같은 무거운 금속으로 채워져 있다. 이 극적인 차이는 지구가 태어난 직후 거쳤던 가장 거대하고 역동적인 사건인 지구 분화 과정(Differentiation)을 증명하는 결정적 증거다.
지구는 약 45억 년 전 수많은 소행성과 우주 먼지들이 충돌하며 뭉쳤다. 이때 발생한 엄청난 충돌 열과 방사성 원소의 붕괴 열로 인해 지구 전체가 완전히 녹아내린 마그마 바다 상태가 되었다. 지구가 액체 상태로 녹아내리자 무거운 원소인 철(Fe)과 니켈(Ni)은 중력에 의해 중심부로 가라앉아 핵을 형성했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산소(O), 규소(Si), 알루미늄(Al), 마그네슘(Mg) 등의 성분은 위로 떠 올라 맨틀과 지각이 되었다. 두 층의 화학 성분이 다르다는 것은 지구가 과거에 완전히 녹았다가 성분별로 분리되는 대대적인 화학적 체질 개선을 거쳤음을 뜻한다. 핵과 맨틀의 성분 차이는 단순한 구조적 특징이 아니다. 지구가 뜨거운 원시 행성에서 1) 스스로 내부를 정렬하고(분화), 2) 자기장을 만들어 생명을 보호하며, 3)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행성(판구조론)으로 진화해 온 역사의 첫 페이지를 열어주는 열쇠다.
지구는 내부가 고온임에도 고압으로 인하여 맨틀이 완전한 용융 상태에 이른 적이 없다. 지구 내부는 고온임에도 고압이어서 녹지 않는다. 반면 빙하 겉면은 압력을 받지 않고 속은 압력을 받아 녹는다고 한다. 이는 모순되게 보이지만 둘 다 가능한 일이다. 지구 내부를 구성하는 암석(맨틀)이나 금속(내핵)은 아주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규칙을 따르는 물질들이다. 물질은 고체에서 액체가 될 때 부피가 늘어난다. 분자들이 자유롭게 움직이며 자리를 더 많이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구 내부 깊은 곳에서처럼 엄청난 압력으로 사방에서 누르면 물질이 부피를 늘리며 액체로 변하고 싶어도 변하지 못한다. 따라서 녹는점(융점)이 강제로 높아지게 된다.(물질의 녹는점이 강제로 높아진다는 것은 원래라면 액체로 녹아내려야 할 온도에서도 물질이 녹지 못하고 고체 상태를 계속 유지한다는 의미다.) 지구 중심부로 갈수록 온도가 엄청나게 높아지지만 내핵이 고체이고 외핵이 액체인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내핵에 가해지는 압력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기 때문이다. 겉보다 온도가 훨씬 높아도 누르는 힘이 더 강하기 때문에 맨틀의 대부분과 내핵은 녹지 못하고 단단한 고체 상태를 유지한다.
반면 빙하를 이루는 물(얼음)은 전 우주에서 몇 안 되는 아주 독특한 성질을 갖는다. 얼음은 일반적인 물질과 반대로 고체(얼음)에서 액체(물)로 녹을 때 오히려 부피가 줄어든다. 얼음일 때 빈 공간이 많은 육각형 구조를 가졌다가 녹으면서 그 구조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얼음이 물에 뜨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빙하 깊은 곳에서 거대한 얼음 무게로 꾹 누르면 얼음 입장에서는 압력이 가해지니까 부피가 작은 액체(물)로 변하게 된다. 압력을 가하면 녹는 점이 0도씨보다 낮아진다.(영하에서도 녹는다) 이 현상을 복빙 현상(Regelation) 또는 압력 융해라고 한다.
빙하 밑바닥은 엄청난 얼음 무게를 받기 때문에 즉 고압 상태이기에 영하의 온도임에도 불구하고 얼음이 살짝 녹아 물(윤활유 역할)이 된다. 덕분에 빙하가 미끄러지듯 이동할 수 있다. 압력을 받지 않는 빙하 겉면은 기온이 영하라면 녹지 않고 얼어 있다. 빙하 자체의 거대한 무게(압력)를 가장 크게 받는 곳은 수백~수천 미터 아래에 있는 빙하의 맨 밑바닥(지표면과 맞닿은 곳)이며 압력 때문에 그곳부터 녹기 시작한다. 암석은 고온의 경우 액체로 변하게 되지만(녹지만) 압력이 높으면 고체 상태가 되고(부피가 작은 상태를 유지하고), 물은 압력이 가해지면 액체 상태가 된다.(부피가 작은 상태를 유지한다.)
물은 액체일 때 부피가 작고, 물 외의 물질은 고체일 때 부피가 작다. 물 외의 물질이 액체일 때 부피가 큰 것(고체일 때 부피가 작은 것)은 분자들이 자유롭게 움직이며 자리를 더 많이 차지하기 때문이다. 물은 액체 상태일 때 부피가 작아 밀도가 높아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얼음은 육각형 구조여서 내부에 빈 공간이 많아져 액체인 물보다 부피가 더 크고 밀도가 낮아서 물 위에 뜨게 된다.
저자는 달 속의 에너지가 달에 지질운동을 일으키기에 부족하지만 지구는 충분한 에너지를 보유하여 왔다고 말한다. 가장 중요한 열원은 지각에 농축된 방사성 원소다. 지구의 충분한 에너지는 끊임없는 지질운동을 일으킨다. 맨틀이 대류하고 대륙이 움직이며 화산이 터지는 이 역동적인 과정이 바로 지구를 살리는 축복이다. 지구 내부의 열에너지 덕분에 외핵의 액체 철이 움직이며 지구 자기장을 만든다. 이 자기장이 없다면 태양에서 오는 치명적인 우주 방사선 때문에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전멸했을 것이다.
화산 운동은 지구 내부의 가스를 뿜어내 대기층을 만들었다. 또한 지각이 맨틀 속으로 말려 들어가고 다시 튀어나오는 과정을 통해 생명에 필수적인 탄소와 영양분이 지구 전체에 끊임없이 순환한다. 지질운동이 멈춘다면 지구의 기후 조절 시스템도 고장나고 말 것이다. 지구는 물, 물 외의 물질, 온도와 압력의 밀고 당기기로 인해 만들어지고 유지된 것이다.
굳은 부분을 가진 생물이거나 그렇지 않은 생물이거나 그들에게 공통된 화석화의 요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빨리 묻혀 파괴를 피하는 것이다. 육지 생물은 멀리 운반되어서야 퇴적물 속에 묻히고 바다 생물은 죽은 그 자리에서 또는 짧은 운반을 거쳐 묻히는 것이 보통이다. 즉 바다 생물은 빨리 묻힐 기회가 훨씬 많다. 이 때문에 바다생물 화석이 훨씬 많다. 육지는 기본적으로 퇴적물이 쌓이는 곳이 아니라 깎여 나가는 곳(침식 지역)이기 때문이다. 교대 작용은 생물의 굳은 부분이 지하수에 용하여 용해되는 순간 그 지하수에 용해되어 있던 광물들이 그 자리에 침전함으로써 일어나는 작용을 말한다.
이 교대 작용은 생물 본래의 미세한 구조를 그대로 보존하면서 극히 점차적으로 일어나는 경우로부터 생물체 전부가 녹고 다른 광물이 그 자리를 메우는 경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규산에 의한 교대 작용 즉 규화작용의 경우는 화석 연구에 있어서 흔히 주목할 만한 결과를 가져온다. 첫째로 이런 방법으로 보존된 화석이 흔히 매우 정교한 내부 구조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며. 둘째는 석회암 속에 규화된 화석들이 함유되어 있을 때 석회암을 염산에 용해시키면 훌륭한 화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주요 단어들이 한자로 표기되었다. 이 가운데 黑色頁巖 같은 단어가 눈길을 끈다.(91 페이지) 엽암이라고 읽을까 아니면 혈암이라고 읽을까 궁금하다. 한글로 표기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셰일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저자는 실제로 포항 지역의 延日 셰일이라고 말한다.(93 페이지) 저자는 왜 동물들이 캄브리아기 초에 껍질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해 말한다. 대기 중 산소가 충분해야 그 상층에 오존층이 생성되는데 이때는 아직 외계로부터 지구에 쏟아지는 자외선을 막아줄 오존층이 생기지 않은 때여서 보호막으로 껍질이 생긴 것이라는 가설이 있다. 과학자들이 바라보는 캄브리아기의 껍질은 오존층이 없어 쏟아지는 자외선을 막는 방패인 동시에 포식자의 이빨을 막는 갑옷이었다. 지구 내부와 외계의 거대한 환경 변화가 생명체들에게 단단한 외투를 입도록 강제한 셈이다.
저자는 공룡 멸종이 몸집이 너무 컸기 때문이라고 한다.(115 페이지; 1991년에 처음 책이 나왔다.) 1991년은 소행성 충돌설이 최초로 제안되기는 했으나 과학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100% 정설'로 완전히 굳어지기 직전의 과도기였다. 당시 출판된 책들이 최신 과학 이론을 실시간으로 반영하지 못했거나 저자가 여전히 과거의 고전적인 학설을 지지했을 가능성이 크다. 저자는 우리에게는 고쳐야 할 점도 많고 선진(先進)에게서 배워야 할 것도 많음이 사실이지만 어떤 활동에도 대전제가 되어야 할 것은 우리의 영원한 자원인 마음씨를 잃지 않아야 하는 것이라 말한다.(175, 176 페이지)
저자는 사람은 지각변동의 고적(古蹟) 위에서 기거하고 있다고 말한다. 고고학자가 사전사학도(史前史學徒)라면 지질학자는 사전사전사학도(史前史前史學徒)라고 말한다.(181 페이지) 저자는 지질학은 생성과정을 문제삼는 학문이라 말한다. 지질학(Geology)은 지구를 이루는 물질들의 생성과정(Origin and Formation Process)을 규명하는 것을 가장 본질적인 목표로 삼는다. 단순히 현재의 상태를 기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 암석과 지층이 과거에 어떤 환경에서, 어떤 물리·화학적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가?라는 역사적 원인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저자는 석탄은 햇빛의 통조림이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모든 돌이 일종의 통조림이라 말한다. 석탄이 고대의 햇빛과 생명 에너지를 담은 통조림이라면 모든 돌(암석)은 그 돌이 만들어지던 당시 지구의 '환경, 기후, 지각 변동의 순간'을 밀봉해 놓은 타임캡슐이자 정보의 통조림이다. 저자는 시간이란 요소는 시험관에 넣거나 기계에 걸 수 없으므로 지질학적 연구대상 가운데는 실험실에서 재현시킬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말한다. 이 때문에 지질학도는 먼저 현재 지구상에서 진행되고 있는 현상과 과정에 관한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그것을 과거에 적용시켜 과거 지질 시대의 일들을 해석하게 된다. 그래서 지질학의 가장 중요한 원리는 현재는 과거의 열쇠라는 표어 속에 잘 나타나 있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 아니라 온신이지고(溫新以知故)다.
그러므로 지질학도에게 요청되는 제3의 소질은 풍부하고도 건전한 상상력이다. 또한 거꾸로 지질학적 훈련은 매우 효과적으로 사람의 상상력을 풍부하게 해준다. 지질학도들 가운데 막대한 수가 판구조의 원리를 응용한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실로 지질학에 새로운 활력이 불어넣어졌다. 지질학의 혁명이 일어났다고들 한다. 지질학의 이름마저 지구학으로 바꿀 단계가 왔다는 주장이 유력하다.(189 페이지) 과거의 지질학이 죽어있는 돌을 분석하는 학문이었다면 현대의 지구학은 기후변화, 환경오염, 화산과 지진, 자원 고갈 등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 지구 전체의 변화를 다루는 역동적인 학문이 되었다. 돌(地質)이라는 글자에 갇혀있기엔 지구(地球)는 너무나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움직이고 있다.
태평양에는 심해동물군이 있으나 동해에는 심해동물군이 없다. 이는 동해가 태평양의 잔류물이 아니라 태평양과는 별개로 생겨났고 역사가 짧아 아직 심해동물군의 생태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저자에 의하면 온습(溫濕)한 저평지대(低平地帶)에 있어서 강우량의 1/3은 지표수가 되고, 1/3은 증발되고, 1/3은 지하수가 된다.(215 페이지)
단층이 처음 생길 때도 지진이 일어나지만 멈추었던 단층이 다시 운동할 때도 지진이 일어난다. 우리가 겪는 파괴적인 대형 지진의 대부분은 처음 생기는 단층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단층이 다시 움직일 때 발생한다. 지진은 탄성체만이 일으킨다. 탄성체(Elastic body)란 외부에서 힘을 가하면 모양이 변했다가 힘을 제거하면 원래의 모양과 크기로 완벽하게 되돌아가는 성질(탄성)을 가진 물체를 말한다.
20세기 구조지질학의 발전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한 독일의 천재적인 지질학자 한스 클로스(Hans Cloos; 1885~1951)는 지질학은 지구의 음악이란 말을 했다. "황홀했던 여행의 나날 동안 문득 내 머릿속에 떠올라 수년 동안 몇 번이고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던 생각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지질학이 지구의 음악(Geology is the music of the earth)이라는 생각이다."
한스 클로스는 첼로 연주에 능하고 그림을 사랑했던 예술가적 기질이 충만한 과학자였다. 한스 클로스는 우리가 자연을 사색함에서 기쁨을 맛보는 까닭도 우리 자신의 혼(魂)의 음악과 지구의 음악의 조화 때문이 아니겠는가?란 말을 했다. 한스 클로스에게 지질학이란 단순히 돌의 성분을 외우고 지도를 그리는 딱딱한 학문이 아니었다. 지질학을 통해 지구의 생성과정과 메커니즘을 배우는 것은 지구라는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악보를 읽는 법을 배우는 과정과 같다. 한스 클로스는 지구 지각이 찢어지거나 부러지는 거대한 지질학적 과정을 실험실 책상 위에서 완벽하게 재현해 낸 혁신적인 실험인 점토 축소 모형 실험(Scaled Clay Model Experiment)을 실행한 과학자였다.
"With mind and hammer"라는 말이 있다. 지질학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숭고하게 여겨지는 전통적인 모토이자 라틴어 격언인 'Mente et Malleo'를 영어로 번역한 이 말은 '사색과 망치로' 또는 '지성과 망치로'라는 의미를 지닌 말이다. 저자의 책은 한자가 많고 글씨체가 작아 읽기 불편하지만 읽을 만하다. 한스 클로스란 과학자를 알게 된 것이 수확이고 다행이다. 지질학자는 아니지만 지질공원 해설사로서 감사하고 만족스럽다. 좋은 지질학 아니 지구과학 책을 많이 찾아 읽어야겠다. 야외조사기회도 가끔이나마 만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