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계약 - 루소의 『사회계약』, 그 이후 철학의 정원 79
미셸 세르 지음, 조현수 옮김 / 그린비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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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철학자이자 과학사 연구자인 미셸 세르(1930-2019)의 책이다. 저자 세르는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허문 프랑스의 독보적인 통섭 철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인식론자). 책은 서문, 1부 전쟁, 평화, 2부 자연계약, 3부 과학, , 4부 끈과 그 해체로 이루어졌다. 2부 자연계약은 표제작이면서 가장 읽기 쉬운 챕터에 속한다. 저자는 중심과 주변을 전제로 하는 환경이란 말은 상호작용하는 관계에 반()하는 용어이기에, 생태라는 말은 법적 결정을 내릴 수 없기에 적절치 못하다고 말하며 책의 제목이기도 한 자연계약이란 말을 사용하기로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연을 법적 주체가 되는 지위로 올리자고 제안한다. 정치는 세계를 신경 쓰지 않으며 자연과 문화 사이의 오래된 구분 역시 똑같은 배제를 반복하고 있다고 말하는 저자는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으면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각오로 이 낡은 관습을 뒤엎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쪽에서는 단단한 과학(경성과학)에 의해 세계가 완전히 뒤바뀌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여전히 부드러운 과학(연성과학)에 의해 통치되고 있다. 저자는 우리가 지금 우리의 관습과 경제, 정치를 가능한 한 빨리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는 역사상 전례가 없는 대재앙을 향해 가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논쟁도 암묵적으로 이루어지는 합의를 전제로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과거에는 항상 승리자였던 지구가 이제는 피해자가 되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전쟁은 하나의 계약의 성격을 갖는다고 말한다. 역사는 전쟁과 함께 시작된다. 폭력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에 전쟁이 있고 그 사이에 법적 계약이 존재한다. 저자는 주관적 전쟁과 객관적 폭력을 말한다. 전자는 인간들끼리의 전통적인 갈등과 전쟁을 말한다. 후자는 인간 집단이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자 객체인 자연을 향해 가하는 일방적인 파괴와 폭력을 말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객관적 폭력에 대한 법을 발명해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 인간 세계의 객관적 적()인 세계 자체와 체결해야 할 새로운 계약, 새로운 사전 합의를 말한다. 이것이 곧 자연계약이다. 저자는 인간들의 판()을 말한다. 저자의 의도는 이 인간들의 판들이 지구의 지각판들 만큼 물리적으로 지구에 거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말을 하는 데에 있는 것 같다. 인간은 더 이상 어떠한 부피도 없는 한갓 점으로서 허공 속에 삼켜지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집합체로서 존재하며 특정한 장소에 갇혀 있는 것을 넘어 거대한 대양이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우주 공간에서 내려다 보아도 포착되는 거대한 판으로 스스로의 존재를 확장해가고 있다.(67, 68 페이지)

 

저자는 과학의 모든 역사는 나비 한 마리 격인 생각이라는 것에서 거대한 폭풍우가 몰아치는 결과로 이어지는 극히 낮은 확률의 이 인과관계의 연쇄를 일정하게 만들고 통제하고 지배하려는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인간은 자연의 근원적인 불확실성과 무작위성에 공포를 느끼고 과학을 통해 인과 관계의 사슬을 꽉 쥐고 우리가 세상을 통제하고자 했다는 확신을 얻고자 했다는 뜻이다. 저자는 우리는 이제 수원지, 우물, 호수로 이루어진 집단과도 같으며 아킬레우스의 작은 강보다 더 거센 물줄기를 이루고 있고 고야의 사막보다도 훨씬 광대한 유동하는 황야 같기도 하다고 말한다. 또는 하나의 대양과 같고 단단하면서도 움직임이 있는 하나의 지각판 같기도 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객관적 폭력의 상황에 놓여 있는 오늘날 이 계약에 서명하는 것 외에는 다른 출구가 없다고 말한다. 과학자들 사이의 계약도 저 오래된 사회계약을 닮아 있다고 말하는 저자는 과학의 역사는 자주 다양한 학술기관이나 법정 판결의 역사와 중첩된다고 말한다.(77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과학으로 인정되는 앎이란 에피스테모-디케로부터 나온다. 이는 지식을 뜻하는 에피스테메와 정의, 심판을 뜻하는 디케라는 말의 합성어다. 과학의 기원은 인간 사회의 기원과 마치 자매처럼 닮아 있다. 일종의 사회계약인 지식의 계약이 앎의 표현들을 상호적으로 통제하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의 이성이 더 이상 아름다움에 대한 생존적 욕구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라고 말하며 아름다움은 평화를 요구하며 평화는 새로운 계약을 전제로 한다고 덧붙인다.(84 페이지) 신이 죽은 이후 우리에게 남아 있게 된 것은 오직 전쟁뿐이지만 세계 자체가 각 민족이나 나라의 공동체와 자연계약을 맺는 순간 그것은 평화를 위한 이유를 제공해 주게 되고 동시에 우리가 찾아 헤매던 초월성을 부여해 주게 된다. 저자는 농업이 사라져간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권력을 서로 나누어 가진 이들은 자연을 잊었다. 우리 자신이 사상 처음으로 지구 전체에 물리적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고 또한 지구 전체가 이에 대해 우리 인류 전체에 틀림없이 반응하기 시작하는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는 비극적이게도 지구를 소홀히 하고 있다.

 

지구를 보존하고 비와 바람이라는 의미에서의 시간을 존중하려면 긴 시간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아주 짧은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대양의 물이 서로 섞이려면 대략 5천 년이라는 장기적 시간에 걸쳐 이루어지는 한 주기가 다 완성되어야 한다. 우리는 오직 단기적 대답과 단기적 해법만을 내어 놓는다.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대상은 과학과 실천의 가장 큰 대상 즉 지구 - 행성이라는 새로운 자연이다. 저자는 정밀하게 나뉜 전문 분야들 안에서 살아가는 행정관리들, 기자들, 과학자들이 모두 자신들의 권력의 짧은 시간 속에 흠뻑 빠지고 자신들의 좁은 분야들 속에 갇힌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긴 시간의 호흡을 가진 사유를 하는 이들에게 발언권을 주어 보자고 말한다. 지배와 소유 바로 이것이 우리 서구의 이성이 우주를 정복하러 나선 과학과 기술의 여명기에 데카르트가 던진 핵심 개념이다. 우리가 우주를 지배하고 그것을 우리 것이 되도록 만든다는 것, 이것이 산업 발달의 추구와 이른바 순수 과학 양자 모두에 공통적으로 내재하는 그 이면의 철학이다. 이 점에서 그 둘은 서로 구분되지 않는다. 데카르트식 지배는 과학이 세계에 가하는 객관적 폭력을 잘 조율된 전략으로 전환시킨다. 여기서 우리가 객체들과 맺는 근본적 관계는 전쟁과 소유로 요약된다.(98 페이지)

 

저자는 동물이 배설행위를 함으로써 흔적을 남기고 더럽히며 자신의 영역임을 표시하듯 인간도 배설적 행위로 다른 종들을 내쫓는다고 말한다. 지구는 인간이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인간은 지구 없이는 살 수 없다. 우리는 기생물처럼 세 들어 사는 존재다. 사회계약은 자기 자신 안으로 문을 닫아버린 채 세계를 문밖에 내버려두었다. 사회계약은 사물들의 거대한 세계를 단지 우리가 마음껏 써먹을 수 있고 가질 수 있는 수동적 대상들의 지위로 격하한 것이다. 인간 이성은 중심부를 차지하게 되었고 외부 자연은 주변적인 것으로 밀려났다.

 

인식과 행위의 주체는 모든 권리를 누리게 되었지만 그 대상들은 아무런 권리도 부여받지 못했다. 이 대상들은 오늘날까지도 어떤 법적 존엄성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오늘날까지도 과학이 모든 권리를 다 차지하고 있다. 오직 사회적이기만 한 우리의 계약 즉 오직 우리 인간들에게만 초점을 두고 있는 이 계약은 결국 우리 자신의 종의 존속을 위협하는, 우리가 이 지구상에서 계속해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위협하는 죽음의 계약이 되고 있다.

 

저자는 [인권선언]모든 인간이라고 말하는 공로를 세웠지만 동시에 오직 인간만이라고 생각하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예전에 세계는 우리의 주인이었지만 얼마 전까지는 우리의 노예였으며 언제나 변함없이 우리의 숙주이고 이제는 우리의 공생자다. 저자가 말하는 자연으로의 회귀란 자연계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이 계약은 객관적 전쟁 속에서 이루어지는 휴전협정이며 공생의 계약이다. 공생의 권리는 상호성에 의해 정의된다.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만큼 인간도 자연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자연은 이제 권리의 주체가 된다.

 

지구는 우리에게 힘과 관계 상호작용이라는 방식으로 말을 건넨다. 그리고 그 정도면 계약을 맺기에 충분하다. 공생하는 두 존재는 마땅히 서로에게 생명을 빚진 자다. 그렇지 않으면 죽음이 따를 것이다.(115 페이지) 저자는 바다 위를 항해하는 배에서는 자기들끼리 다투면 내부의 적을 무찌르기 전에 자신들의 배가 난파당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서로 공격하지 않는다는, 자연으로부터 오는 사회계약을 체결한 선원들을 이야기 한다. 저자는 물러날 곳이 없다는 점에서 지구도 배와 같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제 정치 지도자는 인문학과 도시의 거리, 그 성벽에서 빠져나와야 하며 물리학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물들 없는 인간 집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들 사이의 관계는 사물들을 매개로 이루어지며 사물들에 대한 우리의 관계 역시 타인들을 경유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바로 이것이 법이 그려내는 더욱 안정적인 공간이다. 저자는 자연계약을 형이상학적인 것이라 부른다. 왜냐하면 그것은 여러 국지적 전문 영역의 일상적 경계를 특히 물리학의 경계로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연계약 역시 명시적으로 체결되지 않은 가상적 계약이다. 자연에 우호의 손을 내미는 것이 자연계약의 하나일 것이다. 실로 중요한 근본적 계약들은 모두 암묵적인 것으로인 듯 보인다. 자연계약은 이 지구 전체의 관계망과 자연계약 그 자신에 의해 이루어진 연결망을 그것들이 하나의 네트워크를 이루도록 연결한다. 저자는 서로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라고 말한다. 세계를 사랑하라는 것은 물리적 지구 전체에 대한 보편적 사랑을 요구하는 것이다.(134 페이지) 우리의 두 아버지를, 자연적 아버지와 인간적 아버지, 땅과 이웃을 사랑하라. 인류라는 우리의 인간적 어머니와 지구라는 우리의 자연적 어머니를 사랑하라.

 

저자는 기하학과 물리학에 큰 의미를 둔다. 저자는 기하학을 단순히 도형을 연구하는 학문이 아니라 서로 다른 영역을 연결하고 소통시키는 방법론으로 본다. 저자의 물리학은 고정된 질서를 다루는 고전역학보다는 변화와 무질서를 다루는 현대물리학에 가깝다. 저자는 모방하는 것은 지배하는 것이고 이긴다는 것은 파괴한다는 것이라 말한다. 모방하는 것이 지배하는 것이란 말은 지식이 모방 욕구로부터 나왔기 때문으로 아는 것이 힘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과학의 역사는 법정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스 과학의 시작의 역사는 적이자 쌍둥이인 두 자매 즉 정의와 정확성, 판단하는(재판하는) 이성과 증명하는 이성의 비극적으로 파란만장한 공동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168 페이지) 저자는 사회과학이 제공하는 정보는 언제까지나 그저 평범한 것으로 남아 있는 것으로 모든 이가 모두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반복하는 데 불과하며 자연과학이 제공하는 정보는 계산 가능한 것이며, 그 희귀성에 비례하는 가치를 지닌 것으로서 우리는 그것을 지식이라 부른다고 말한다.(175 페이지) 이는 사회과학이란 인간이라는 폐쇄된 울타리에서 말과 글을 주고 받는 재생산에 가깝고 자연과학은 인간 외부의 거대한 실재인 세계와 직접 대화하는 학문이라는 뜻이다.

 

우리의 자유는 제한에서 비롯된다. 우리의 자유는 부분적으로 법이 없는 공간들에서 오는 것이다. 바로 이 틈으로 자연이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아낙사고라스에게는 공공의 문제보다 자연이 더 큰 관심사였다. 아낙사고라스는 태양이 불타고 있다고 말해 고발되었다. 그가 본 태양은 불타는 돌덩이다. 저자는 자연은 도시의 지옥 또는 문화의 지옥이라 말한다. 저자는 자연을 통제하는 자연과학이 아니라 자연이 보내는 미세한 신호나 소음을 경청하는 자연과학을 사랑한다. 문화는 수천 가지이지만 자연은 단 하나다.

 

저자는 과학과 도덕의 차이도 논한다. 도덕은 명령법으로 쓰이지만 지식은 법처럼 직설법으로 쓰이되 법처럼 수행문적이지는 않다. 저자는 과학들은 그 자신들끼리 서로 분리되고 구분되어 어떤 과학도 자신의 고유 영역 밖에서는 아무런 권한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관할권의 네트워크를 내적으로 제도화한다고 말한다. 이는 경계 짓기(영역 설정)를 의미한다. 과학의 역사 역시 종교의 역사가 그랬던 것만큼 수많은 추방된 자를 남기고 있다. 처음에는 법이 과학을, 재판에 재판을 거듭하며 압도하지만 과학이 점차 법을 압도한다. 모든 판결이 이성의 빛 아래 재검토되기 때문이다.(203 페이지) 물론 법이 다시 과학을 압도하고, 과학이 다시 법을 압도하는 순환이 계속된다.

 

저자는 우리 인간 자신이 하는 행위로 인해 크게 변모되는 지구를 흔들리는 지구라 부른다.(216 페이지) 저자는 세계가 책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는 가운데 책이 세계로 들어오고 있다는 말을 한다. 세계는 담론과 법에 갇혀 있고 가상이 현실을 잠식하고 있다는 의미로 들린다. 저자는 오늘날의 현자(賢者)는 영웅들의 시대의 입법자와 엄밀한 지식으로 무장한 현대의 지식 소유자를 자신의 한 몸 안에 뒤섞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현자는 자연과학에 정통하며 사회과학과는 다소 거리를 두는 사람으로서 보고서보다는 직접적 행동을, 조사나 자료보다는 직접적인 인간 경험을 중요시하며 자연과 사회의 여행자이며 강, 모래, 바람, 바다, 산을 사랑한다. 그는 지구 전체를 걷는 자이며 다양한 몸짓 만큼이나 다양한 풍경을 사랑하며 북서 항로를 홀로 항해하는 탐험가처럼 실증적 지식인 인문학과 섬세하고도 드물게 교차하는 그 장소들을 통과해 간다.

 

그는 무엇보다 지구와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오르는 사람이다. 진정한 교육은 자기 자신의 유한성을 판단할 줄 아는 신중한 존재를 길러내며 참된 이성의 올바른 지적 전수는 이 존재를 무한한 생성 속으로 내딛도록 만든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근원적 대지는 유한하다. 하지만 이 근원적 대지를 발판으로 출발하는 출항은 어떤 끝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 세계를 벗어나 이 세계와 비슷한 곳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다른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 것, 이것을 두고 출항한다고 말한다.(247 페이지)

 

저자는 인간이 된다는 것은 끊임없이 끈을 풀고 다시 다른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끈울 묶는다는 것일까?라고 묻는다. 우리가 출항하는 것은 오로지 끈을 바꾸기 위해서일까?라고 묻는다. 저자가 말하는 바 계약이란 단어는 본래 조여 매는, 끌어당기는 선()이다.(254 페이지) 계약이 반드시 언어를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니다. 밧줄 놀이만으로 충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밧줄로 이어진 것들끼리는 서로 말없이 이해한다/ 아우른다. 어원적으로 볼 때 그리고 그 본성으로 볼 때 계약은 함께 묶이는 것이다.(263 페이지)

 

저자는 밧줄은 나를 형식/ 형태들에, 사물들에, 타인들에 묶고 있으며 그러므로 나를 추상에, 세계에, 사회에 입문시키고 있다.”고 말한다.(264 페이지) 저자가 드는 예는 한 행성 또는 다른 행성의 아주 작은 움직임이라도 지체 없이 다른 모든 행성에 영향을 끼치게 되며 이에 대한 이 행성들의 반응 역시 곧 이 첫 번째 행성들에 작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일련의 상호 제약들의 총체라 한다,

 

저자는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떨어진 이래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소멸 가능성을 우리 자신의 힘 안에 지니고 살아가고 있는 바 이 소멸의 곡선은 계속 수직 상승하고 있다고 말한다.(293, 294 페이지) 추상적으로 되어버린, 더 이상 직접 체험하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린 현대 인류는 땅에서 발을 떼어내어 기호들을 향해 날아오르고 이미지들과 코드들의 세계를 들락거리면서 도시 속에서 살아가느라 더 이상 삶이나 세계의 사물들과 직접적 관계를 맺지 않고 있다. 우리 모두는 발이 완전히 땅에서 떨어진 탈영토화된 상태의 우주비행사가 되었다.

 

저자는 우리는 실로 죽어가는 우리의 늙은 어머니를 위한 어머니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자연에게 그것이 우리에게 주었던 탄생을 되돌려준다는 것의 새로운 의미는 대체 어떤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일까? 동행의 끈들 너무나도 상호적이어서 탄생이 어느 쪽 방향에서 이루어지는 것인지 결정할 수 없게 되는 이 상호 공생의 끈들이 바로 자연계약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저자의 어조는 묵시적이고 시적이며 은유적이다. 흩어지는 듯 하다가도 의미가 연결되고 어렵게 다가오다가도 친절한 면모를 보이는 어조다. 그러면서도 저자의 책은 약 40년 전에 나왔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통합적이고 대안적이고 선구적이다. 깊은 사유의 세계에 초대한 저자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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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09-22 1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셀 세르..앤날에 입장 총서 시리즈로 만나봤었는데 독특한 과학자같다는 안상이 강했습니다. 19년에 사망하셨네요. 소개 감사합니다. 잊고 있었습니다 오랜시간동안..^^;;

벤투의스케치북 2026-09-22 12:12   좋아요 0 | URL
네~^^ 그렇습니다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