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와 히데키(湯川秀樹)1949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다. 어제 한 개구리 책에서 모호한 문장을 보고 그를 생각했다.(‘애매; 曖昧는 일본식 한자고 모호; 模糊는 우리 한자다. 그래서 모호란 말을 썼다.

 

모호란 말을 쓰는 데는 하나의 덕이 더 있다. 모호로비치치 불연속면(Mohorovicic discontinuity)이란 용어를 떠올릴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이렇게라도 지구과학 공부에 도움이 되는 말을 끌어다쓰는...) 모호로비치치 불연속면이란 지각과 맨틀 사이의 경계면을 말하는 것으로 크로아티아 태생의 유고슬라비아의 지구물리학자 모호로비치치에 의해 발견되었다.

 

원더풀 사이언스의 저자 나탈리 앤지어는 맨틀이란 외투를 의미하는 독일어에서 유래한 말이라는 말을 했다. 맨틀이란 지각 바로 아래에 있으면서 (외투처럼) 외핵을 둘러싸고 있는 두꺼운 암석층이다.

 

유가와는 논문의 영문을 몇 번이나 수정했다. 그는 군더더기를 싫어해 문장을 계속 간결해서 수정하는 것을 넘어 문장에 적합한 단어는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해 단어 선택에 극도로 신중을 기했다. 이런 태도는 영어 논문은 물론 일본어 보고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문장을 쓰면 완성된 문장은 어느 한 단어도 삭제할 수 없고 교체할 수 없게 된다. “시퍼렇게 간 칼날과 같은 날카로운 문장이 완성되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그는 훗날 명문장가로 알려졌다. 유가와는 이론은 세 가지 요건을 만족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1) ’관계 있는 모든 현상을 설명해야 한다‘, 2) ’아름다워야 한다‘(단순명쾌해서 아름다워야 한다.) 3) ’증명할 수 있는 실험을 논문에서 제시해야 한다등이다.(고토 히데키 지음 천재와 괴짜들의 일본 과학사‘ 204, 205 페이지)

 

유가와 히데키에 대한 글을 읽으며 생각한 것은 다음의 말이다. ”주희(朱熹)의 세계는 음표 하나만 빠져도 전체가 무너질 듯한 조화로운 교향악의 세계이다. 그것은 또한 세계의 영원한 질서와 시간 속에서의 운동을 화해시키고 있다.“(이정우 지음 인간의 얼굴‘ 124 페이지)

 

전기한 모호한 문장은 다음과 같다. ”수원청개구리는 일본과 한국의 청개구리가 지리적으로 격리되기 훨씬 전인 250만년전에 청개구리로부터 갈라져나온 것으로 추정되었다.“, ”일부 청개구리 집단이 원래 육지였던 황해 어딘가에 살다가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오랜 기간 섬에 고립되어 수원청개구리로 진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훨씬 전이라고만 했을 뿐 구체적 숫자를 말하지 않은 점, 지리적으로란 말은 군더더기란 점(지리적으로 격리되는 것은 너무 당연하기 때문이다.), 청개구리로부터 수원청개구리가 갈라져 나온 뒤 일본과 한국의 청개구리가 격리되었다는 뜻인지? 그렇다면 그렇게 쓰면 되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점 등이다. ’훨씬 전이란 수사(修辭)를 쓰려고 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어떻든 수원청개구리에 대해 알게 되어 다행이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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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괴테의 책들을 마음 잡고 읽으려 한다. ‘파우스트는 재독(再讀), 성장소설인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는 첫 읽기가 된다. 내가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 기대를 거는 것은 제대로 된 통과제의(rites of passage)를 경험하지 못한 내 이력 때문이다. 나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읽기가 부끄러운 반추에서 그치지 않고 조금이나마 나은 미래를 도모(圖謀)하는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

 

나도 프랑스 작가 로르 아들러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태평양의 방파제를 읽고 한 말(“이 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느낌을 항상 받는다.”)을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읽기 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생후 9개월의 아들을 교통 사고로 잃은 그녀는 뒤라스 소설 속의 질서가 자신 앞에 닥친 삶의 혼란을 대신해준 덕에 다시 숨을 쉬고 미래를 그려볼 수 있었다는 말을 했다.

 

괴테는 수성론자(水成論者)와 화성론자(火成論者)의 싸움에서 수성론자의 편에 섰다. 수성론은 모든 암석은 바다 속에 침전된 수성암(퇴적암)이라는 주장이고, 화성론은 모든 암석은 마그마가 굳어 생긴 것이라는 주장이다. 수성론자들은 화산 분출을 지하 깊은 곳의 석탄층이 연소하기 때문으로 보았다.(좌용주 지음 가이아의 향기’ 73 페이지)

 

과학 작가 샘 킨은 사라진 스푼에서 언제나처럼 괴테는 결국에는 지고 말 쪽을 지지했는데 그것은 그쪽이 심미적으로 볼 때 더 마음에 들기 때문이라는 말을 했다. 샘 킨은 파우스트에 나오는 연금술에 대한 진부한 추측보다 더 나쁜 것이 수성론 지지라 말했다.(306, 307 페이지)

 

화성론의 대표 주자는 제임스 허턴(1726 1797)이다. 그는 동일과정의 원리를 주창한 사람이기도 하다. 동일과정의 원리란 지질학적 현상은 과거라고 해서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기에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을 해석해 과거의 일을 알 수 있다는 원리다. 가령 고사리가 살고 있는 환경은 주로 응달지고 습한 곳이다. 그렇기에 고생대 지층에서 고사리 화석이 발견되면 그 지층이 퇴적될 당시 환경도 지금처럼 응달지고 습한 곳이라 추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이한조 지음 라이엘이 들려주는 지질조사 이야기’ 80 페이지)

 

이렇게 고사리 화석처럼 과거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온 생명체의 화석을 시상화석이라 하고 삼엽충(고생대), 공룡(중생대), 매머드(신생대)처럼 특정 지질 시대에만 있었던 생명체의 화석을 표준화석이라 한다. 이 가운데 매머드에 관심이 간다. 연천군 방문자센터에 매머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전까지 생물은 추위, 화산 폭발, 소행성 충돌 등으로 멸종했지만 매머드는 인간에 의해 멸종했다.(이지유 지음 별똥별 아줌마가 들려주는 지구 이야기’ 187 페이지)

 

앨런 와이즈먼의 인간 없는 세상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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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지질연대표보다 물리학의 기본 입자 표가 더 친근하다는 글을 보내고 우연히 작년에 읽은 책(최병관 지음 과학자의 글쓰기‘)을 펴보았어요. 거기에 이런 글이 인용되어 있네요. “어떤 측면에서는 광상학이 양자역학보다 더 중요한 학문”, “세상의 이치를 깨닫기 위해서는 암석학, 광상학을 공부해야 한다.”. 박문호 박사의 글인데요 제가 언젠가 문의한 “Enjoy yourself! It’s later than you think.“란 글이 이 분이 이끄는 박자세(박문호의 자연과학세상)가 쓴 유니버설 랭귀지에 나오지요.

 

35억년 전 호주 시생대 지층탐사란 장에 이런 구절이 있고요. ”지구에는 왜 철이 많은가? 초신성이 터지면서 철 성분이 흩어져서 지구로 많이 왔기 때문이다. 지구에는 실리카 성분이 많다. 모래가 모여 사암이 되고 사암이 모여 규암이 되고 규암은 석영이 되는데...화강암에는 석영이 많이 섞여 있으며 우리나라에 많다.“(279 페이지) 책을 다시 보니 바위에 별이 스며들어 꽃이 되었다란 오규원 시인의 시가 이해됩니다. ”탄소, 산소, , 그리고 나머지 모든 무거운 것들이 별“(데이브 골드버그, 제프 블롬퀴스트 지음 우주 사용 설명서’ 306 페이지)의 폭발에서 유래한 것이니 별이 스며들어 (바위라는) 꽃이 되었다는 말이 가능한 것이겠지요...

 

한 천문학자는 수십억년 전 이름 모를 초신성이 평생을 바쳐 모은 귀한 중원소들을 은하에 환원하지 않았다면 지구 생명은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라 말합니다.(이석영 지음 모든 사람을 위한 빅뱅 우주론 강의’ 17 페이지) 제가 천문학 공부에서 지질학 공부로 전환한 것은 언급한 별과 바위의 관계로 본다면 하늘에서 땅으로가 아닌 오직 하늘에서 하늘과 함께 땅으로라고 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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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엘이 들려주는 지질조사 이야기 과학자가 들려주는 과학 이야기 97
이한조 지음 / 자음과모음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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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조의 라이엘이 들려주는 지질조사 이야기는 지질을 어떻게 학생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게 할까를 고민한 저자의 문제의식이 담긴 정수(精髓) 같은 책이다. “지질조사는 전문가만이 할 수 있는 어렵고 복잡한 일이 아니다.”

 

영국의 지질학자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 1797- 1875)지질학 원리의 저자로 지질학을 근대 과학의 한 분야로 편입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 사람이다. 다윈이 진화론을 저술하는 데 지질학 원리를 참고한 것은 유명하다.

 

지질이란 지각(地殼)을 이루고 있는 암석의 종류와 분포, 구조, 변화된 역사를 아우르는 말이다. 화석을 발견하면 주로 퇴적암으로 이루어진 곳을 조사해야 한다. 지질 조사는 생활의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등고선들의 간격이 좁으면 경사가 급한 지역이고 넓으면 완만한 지역이다.

 

원래 지층은 물밑에서 퇴적될 때 수평으로 쌓인다. 그런데 퇴적 후 오랜 시간이 지나며 지각변동을 받으면 지층이 기울어지거나 휘어진다. 이를 지층이 습곡을 받았다고 말한다. 암석의 종류를 구분하는 방법 중 한 가지는 암석의 색깔을 보는 것이다. 암석이 오랫동안 바깥에 노출되면 원래의 색깔을 잃는다. 이를 암석이 풍화되었다고 말한다.

 

이 경우 암석을 지질조사용 망치로 깨트려 풍화되지 않은 안쪽을 보아야 한다. 암석은 광물들의 집합체고 광물은 일정한 성질을 가진 자연 상태의 물질이다. 화강암은 석영, 장석, 운모로 이루어져 있다. 퇴적물이 암석이 되는 과정을 속성작용이라 한다. 입자 크기가 2mm 이상이면 자갈, 2 1/16 mm면 모래, 1/16 mm이하면 진흙이라 한다.

 

자갈로 이루어진 암석을 역암이라 한다. 역암 가운데 자갈 표면이 각지고 모나 있거나 입자가 거칠면 각력암이라 부른다. 물속에 녹아 있던 소금이 침전되어 암석으로 변하면 암염이라 부른다. 조개껍데기 등을 이루는 탄산칼슘이 침전되어 만들어진 암석을 석회암이라 부른다.

 

땅속 깊은 곳에서 천천히 식는 암석은 마그마가 광물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해 크기가 큰 입자를 만든다. 규산이 많이 모여 이루어진 암석은 대체로 밝은 색을 띤다. 조금 들어 있으면 어두운 색을 띤다. 화강암은 규산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밝은 색을 띠고 현무암은 조금 들어 있어 어두운 색을 띤다.

 

규산 함유 정도, 식은 장소가 지하인가 지표인가 여부 등이 중요하다. 암석을 변하게 하는 것은 열과 압력이다. 700도가 넘어가면 암석이 녹는다. 열에 의해 변성작용이 일어나는 경우(열변성작용)와 마그마의 화학성분에 의해 변성작용이 일어나는 경우(접촉변성작용)가 있다.

 

진흙을 구워 도자기로 만들면 입자가 단단해지듯 혼펠스는 이암(泥巖)일 때보다 훨씬 단단하고 치밀해진다. 암석이 광역변성작용을 받으면 높은 압력에 의해 알갱이들이 눌려서 압력 방향에 직각으로 평행하게 배열된 편리(片理)라는 이름의 줄무늬가 만들어진다.

 

고무풍선에 동그란 점들을 그린 후 위에서 누르면 점들이 납작하게 눌려서 줄무늬로 나타나는 것을 연상하면 좋다.(에는 조각, 한쪽, 납작한 조각 등의 의미가 있다.) 편암은 다른 광물의 색깔이 교대로 나타나며 평행한 단속(斷續)의 줄무늬를 이룬다. 편마암 역시 단속(斷續)의 줄무늬를 이루는데 편암보다 결정이 크다.

 

지각 운동으로 인해 지층이 끊어져 서로 다른 위치로 이동하는 현상을 단층(斷層)이라 한다. 지층이 끊어졌지만 위치가 서로 이동하지 않는 것을 절리(節理)라 한다. 역단층은 양옆에서 미는 횡압력이 작용할 경우 만들어진다. 지질구조 중 지층이 구불구불하게 주름진 것을 습곡(褶曲)이라 한다.(: 주름 습)

 

암맥(dike)이란 지하의 마그마 웅덩이로부터 마그마가 지표로 올라온 길이다. 암맥과 달리 지하 깊은 곳까지 연결되지 않은 줄무늬를 맥(vein)이라 한다. 점이층리(漸移層理)는 하나의 층 안에서 아래에서 위쪽으로 갈수록 퇴적 입자의 크기가 굵은 것에서부터 가는 것으로 점진적으로 변하는 구조를 말한다.

 

아래쪽에 큰 입자가 쌓여 있고 위쪽으로 갈수록 점점 작은 입자가 쌓여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점이층리는 퇴적작용이 일어나는 동안 물의 흐름에 변화가 일어나 생긴다. 사층리(斜層理; cross bedding)는 수심이 얕은 물밑이나 사막 같은 환경에서 퇴적물들이 흘러가면서 쌓여 생긴 퇴적구조를 말한다.

 

화석은 뼈의 종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 생물의 모습, 생활환경 등을 추정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모두 화석이다. 아주 작아서 현미경으로 봐야만 보이는 화석을 미화석(微化石)이라 한다. 나무가 퇴적물 속에 묻힌 뒤 오랜 시간 동안 주변에 지하수가 흐르면 나무의 유기질 성분은 서서히 분해되고 그 자리에 지하수에 포함되어 있는 규산 성분이 들어간다.

 

이런 일이 계속되면 결국 나무 자체는 사라지고 원래 나무와 같은 모양의 규산질 나무 화석이 남는다. 이를 규화목(硅化木)이라 한다. 화석이 될 수 있는 조건은 1) 빨리 묻히고, 2) 단단한 부분이 있고, 3) 화석화 작용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공룡처럼 특정시대(중생대)에만 살았다가 멸종한 화석을 표준화석이라 한다. 삼엽충(고생대), 매머드(신생대)도 표준화석이다. 지질시대의 선후 관계를 비교하는 것을 지층 대비라 한다. 표준화석이 아주 유용하게 쓰인다. 따라서 특정한 한 지역에서만 발견되면 표준화석으로 사용될 수 없다. 지층 대비에 사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동일과정의 원칙은 현재는 과거의 열쇠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다. 고사리는 고생대 말부터 지구상에 번성하여 지금까지도 살아 있다. 고사리가 사는 환경은 습한 응달이다. 고생대 지층에서 고사리 화석이 발견되면 당시의 퇴적 환경도 지금과 같이 습한 응달이라 추정할 수 있다. 이처럼 옛날의 환경을 알아낼 수 있는 화석을 시상화석(示相化石)이라 한다.

 

생존 기간이 길고 일정 환경에서만 사는 생명체의 화석을 시상화석이라 한다. 과거의 기록이 지층과 암석에만 남아 있는 시기를 지질시대라 한다. 지질시대는 선캄브리아대(40억년에서 57천만년), 고생대(57천만년에서 245백만년), 중생대(245백만년에서 65백만년), 신생대(65백만년에서 1만년)로 나뉜다.

 

선캄브리아대는 거의 모두 변성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기반암을 이룬다. 우리나라 고생대 중기 때의 기록이 없다. 부정합(不整合)이 주인(主因)이다. 부정합은 지층이 위 아래로 붙어있지만 연속적으로 퇴적되지 않고 두 층 사이에 오랜 시간 간격이 있는 것을 말한다. 부정합의 원인은 융기와 침강이다.

 

신생대 이전까지 우리나라에 동해는 없었다. 1700만년전 일본이 우리나라에서 떨어져 나가면서 동해가 만들어졌다. 1700만년전의 100배인 17억년전에 우리나라는 남극 쪽에 옹기종기 붙어있던 대륙 한 귀퉁이에 붙어 있었다. 대륙 이동은 고지구자기를 측정하면 알 수 있다.

 

고지구자기는 암석에 보존되어 있는 과거의 지구자기장이다. 머리, 몸체, 꼬리로 이루어진 삼엽충은 몸체가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삼엽충은 고생대 바다에서 번성했던 생물이다.

 

공룡이 지역의 퇴적암이 처음부터 단단하지 않았던 시대에 호숫가의 부드러운 퇴적층을 걸으면 발자국이 찍히고 그렇게 찍힌 발자국 위에 다른 퇴적물이 덮이면 발자국이 퇴적물로 보존된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그 위로 두꺼운 퇴적물이 쌓이고 압력을 받으면 단단한 퇴적암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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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질학은 교실에 앉아서 사고하기보다 야외에서 그 대상을 직접 관찰하고 만져 보고 느낄 수 있을 때 가치가 더욱 빛나는 학문”(이한조 지음 라이엘이 들려주는 지질조사 이야기책머리에)이란 말을 들었을 때 생각한 것이 방콕 여행자(voyager casanier: 보야지 카자니에 정도의 발음일까요?)란 말이다. 피에르 바야르는 바로 이 방콕 여행자란 개념이 담긴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이란 책을 한 번도 자신의 고향 쾨니히스베르크를 벗어난 적 없이 언제나 동일한 도정을 따라 산책을 한 방콕 여행자의 상징같은 칸트에게 바친다는 말을 했다. 칸트는 오직 책을 통해서만 외부 여행을 했음에도 알프스 지형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고 한다.(백종현 지음 인간이란 무엇인가’)

 

피에르 바야르는 동방견문록의 저자 마르코 폴로 이야기를 한다. 마르코 폴로가 가족 소유의 해외 상관(商館)이 있었던 콘스탄티노플에서 숱한 여행객들에게 들은 이야기로 자신의 몽상을 살찌웠을 것이라 주장한 중국학 전공자 프랜시스 우드의 마르코 폴로는 중국에 갔었는가?“란 책을 언급하며 바야르는 폴로가 대단한 상상력의 소유자였던 게 분명하다고 말한다.

 

마르코 폴로가 과연 콘스탄티노플까지 갔는지조차 의심스럽고 차라리 베네치아 외곽의 어느 평화로운 장소에 은둔했으리라는 것이 바야르의 생각이다. 마르코 폴로는 청금석(靑金石)이라 불리는 라피스라줄리와 인연이 깊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라피스라줄리를 세상에 알린 사람이 바로 마르코 폴로다.

 

그가 아버지 니콜로와 숙부 마테오를 따라 중국을 향해 가던 중 방문한 아프가니스탄의 바다흐샨 광산에서 본 것이 푸른색으로 빛나는 돌과 그 표면에 박힌 금이었다. 마르코 폴로 일행이 광산을 방문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당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교황과 쿠빌라이 칸의 친서를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기 때문이다.(좌용주 지음 가이아의 향기‘ 65 페이지)

 

진실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이란 책의 저자인 바야르가 쓴 자매격의 책인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에 대해 말할 필요는 있겠다고 생각한다. 바야르는 책들에 관한 담론에서 관건이 되는 것은 전체를 숙지하고 있느냐는 것이라고 말하며 자신이 언급한 숙지란 고립된 요소들을 잘 아는 것이 아니라 관계들을 잘 아는 것이라 말했다. 공감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충분한 바탕 지식이 있어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문리(文理)가 트이기 위해서는 충분한 지식을 습득해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참고할 말을 꺼내고 싶다. 철학 박사이자 글쓰기 강사인 이유선의 말이다. ”거의 일년 내내 책을 읽으면서도 항상 책을 읽으면서 살았으면 하는 꿈을 꾸면서 산다. 아마도 나는 책을 읽으면서도 그 책이 내가 진정으로 읽고 싶은 책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책을 읽는 대부분의 상황이 내가 꿈꾸었던 여유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럴지 모르겠다...늘 시간에 쫓겨 책을 읽는다. 아무리 읽어대도 책들은 마치 공포영화의 좀비들처럼 새롭게 나타난다.“(‘아이러니스트의 사적 진리’ 16, 17 페이지)

 

철학박사이자 글쓰기 강사로 책을 그렇게 많이 읽는 그가 세상의 이치를 깨우치지 못해 읽고 싶은 책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쉼없이 나타나는 공포영화의 좀비들에 비유한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고, 세상에는 하나로 수렴하는 앎의 총체성이 있기에 지식들의 관계니 맥락이니 하는 말을 하는 것이겠지만 사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문학평론가 정은경(鄭恩鏡) 교수가 이런 말을 했다. ”모든 이야기는 다 얘기되었고 모든 형식도 다 실험되었다고 생각했다. 니체의 영원회귀처럼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될 것 같고 그 파도의 출렁임 속에 피로와 허무로 잔뜩 찌들어 있던 어느 날, 이 책은 나의 눈을 번쩍 뜨이게 했다. 세상의 모든 일이, 서사가 다시 반복된다 해도 인간은 끊임없이 새로 태어나고 이야기는 새로운 인간과 작가들에 의해 첫 키스처럼, 첫 리듬으로 탄생하는 것이 아닐까.“(‘밖으로부터의 고백 디아스포라로 읽는 세계문학’ 109 페이지)

 

할레이드 호세이니의 장편 소설 연을 쫓는 아이를 두고 한 말이다. 문학작품이기에 가능한 이야기였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인문과학이나 자연과학 분야의 책들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읽은 인상적인 책들 가운데 김경만 교수의 글로벌 지식장과 상징폭력을 들지 않을 수 없다.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한 상징폭력이란 개념을 논한 책이다.

 

상징폭력이란 선학(先學)들이 이루어놓은 지식의 장()에 진입해 그들의 의견에 동의하든 하지 않든 그들이 이루어놓은 성과로부터 연구를 시작해야 하기에 감수할 수 밖에 없는 후학들의 고통을 말한다.(123 페이지) 김경만 교수는 거인의 어깨를 논한다. ”내가 더 멀리 볼 수 있었던 것은 거인의 어깨에 올라탔기 때문이라는 뉴턴으로부터 유래한 말이다.

 

작가이자 수학자인 로빈 애리앤로드는 뉴턴의 말이 진리를 겸손하게 인정한 말일뿐 아니라 자신에게 끊임없이 표절 혐의를 씌운 키가 작고 구부정한로버트 훅을 겨냥한 말이기도 하다고 말한다.(‘물리의 언어로 세상을 읽다’ 101 페이지) 애리앤로드는 거인의 어깨운운한 뉴턴의 말을 뉴턴답지 못한 말이라고 말했다.

 

어떻든 뉴턴이 설령 훅을 조롱해 그런 말을 했다고 해도 이는 후학이 선학으로부터 상징폭력을 당하기도 하고 도움을 받기도 하는 사태를 잘 말해주는 경우라 하겠다.(후크는 최초로 세포; cell‘이란 말을 사용했고 뉴턴과 달리 빛의 파동설을 지지한 사람이다.) 요컨대 선학과 후학의 근원적 관계는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는 점이 중요하다.

 

만일 상징폭력이란 말을 숙지하고 있다면 그런 관계를 길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된다. 개념을 숙지하는 것도 관계를 숙지하는 것만큼 중요하다. 학문(學問)이란 말은 주역(周易)‘에서 비롯된 말이다. 배움으로써 모으고, 물음으로써 분별할 일(’학이취지: 學以聚之 問以辨之’)이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주역 건괘 문언전)

 

칸트 전공자인 백종현 교수는 많이 배우는 것이 먼저이고 분별하는 것은 나중이라고 말한다.(‘인간이란 무엇인가’ 75 페이지) 개별 지식보다 관계를 보라는 말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내공이 어설픈 사람은 해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백종현 교수는 철학을 배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철학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 칸트를 언급한다.(‘인간이란 무엇인가’ 76 페이지이 말은 고립된 지식에 집착하지 말고 지식들의 관계를 헤아려야 한다는 말과 맥락이 같다. 지질학 공부를 위해 책을 펼쳤으나 첫 줄을 읽고 이런 가외(加外)의 상상을 하는 나는 무엇을 하려 하는가? 나는 고향 밖을 한 번도 여행한 적 없으면서도 알프스의 지형을 누구보다 많이 숙지했던 칸트가 부럽다.

 

사물들 속으로 산책하기 위해 눈을 통해 나선 내 정신의 여행을 접어야겠다. 나는 엄청난 암기력과 학구열로 분야를 가리지 않고 지식을 흡수(홍대선 지음 어떻게 휘둘리지 않는 개인이 되는가’ 147 페이지)했기에 책만으로도 알프스의 지형을 깨알처럼 알 수 있었던 칸트를 섣불리 닮고자 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한다. 공부하자. 나는 많으면 달라진다(more is different)란 말을 믿는다. 물론 내 지식의 맥락 안에서 의미 있는 개별 지식들의 자리를 마련하는 것을 염두에 두는 공부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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