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한 전문직업인으로부터 과한 찬사를 받았다. '어떤 분이기에 몇 시간의 대화를 통해 접한 내 초라한 지식을 감탄스럽다고 평하실까?' 지식이 부족해서일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을 감동의 눈으로 대하지는 않으리라.

 

넓은 아량으로 인생을 즐기며 감동하는 사람이기에 나 같은 사람에게 찬사를 보내는 것이리라. 어떻게 해야 할까?

 

"선생님은 아직 저를 잘 모르십니다. 몇 번 더 만나 대화하면 저에 대해 실망하실 것입니다. 얕고도 좁은 제 관심사와 지식의 실체를 여지 없이 보실 것입니다. 과한 기대는 거두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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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앉아 있으면 혈류 상황이 좋지 않아 뇌가 위축된다고 한다. 오래 앉아 있은 뒤 뇌혈류 상황을 좋게 할 생각으로 운동을 오래 한다고 해서 위축된 뇌가 복구되지 않는다고 한다. 미리 미리 운동하고 오래 앉아 있지 말아야겠다.

 

어느 정도는 누구에게나 지금 좋지 않은 행동을 하고 후에 되돌리려고 하는 경향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뒷북치기는 비효율적이고 상당한 힘이 든다. 시간을 내어 발뒤꿈치를 드는 운동을 하거나 발끝치기를 하면 좋으리라. 가장 좋은 것은 자주 움직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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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유형의 사람들이 부자가 되지 못하는지 논한 책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사업체를 운영하는 경영자 가운데 부자가 되지 못하는 특성들을 가진 경우들을 논한 책이기에 일반적인 대인 관계에 적용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 그래도 참고거리는 되리라 생각한다.

 

각설하고 책에 의하면 1.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는 사람, 2. 거절을 어려워 하는 사람, 3. 무엇이든 쉽게 양보하는 사람, 4. 다른 사람(잘못한 부하직원이라 해야 할 듯)을 잘 혼내지 못하는 사람, 5. 지나치게 염려하는 사람, 6. 항상 웃는 사람(힘들거나 화가 나도 웃어넘기는 사람이라 해야 옳을 듯), 7. 도움 청하기를 힘들어 하는 사람들은 부자가 되기 어렵다.

 

나는 어떤가. 거절을 어려워 하는 편이고 도움 청하기를 힘들어 하는 경향이 있는 정도니 착한 사람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듯 하다. 예의 지키며 살고자 애쓰는 사람이라고 하면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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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가로 보는 경성 풍경 식민지 일본어 문학.문화 시리즈 58
엄인경.김보현 편역 / 역락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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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카(’短歌; 단가’로 보는 경성 풍경‘은 엄인경, 김보현이 편역한 책이다. 경성의 일흔 네 명소를 읊은 재조(在朝) 일본인의 단카 사백여 수를 번역하고 원문과 함께 각 명소의 과거 혹은 현재의 사진을 함께 실은 책이다. 단카는 5.7.5.7.7의 다섯 구 서른 한 음절로 이루어진 일본의 전통적 문예 장르다.

 

조선은행(朝鮮銀行)을 보자. 우리나라 최초의 중앙발권은행인 구(舊) 한국은행은 1909년 10월에 설립되었다. 1911년 8월 15일 일본이 조선은행법을 공표하면서 명칭을 조선은행으로 개칭하였고 조선총독부 산하에 놓이게 되었다. 1950년 한국은행법에 의해 조선은행을 인수하여 대한민국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세워졌다.

 

하세가와마치(長谷川町)를 보자. 소공동은 러일전쟁 당시 조선군사령관이었던 하세가와 요시미치가 거주했다 하여 일제강점기에 하세가와마치로 불렸다. 러일전쟁의 수훈으로 자작 지위를 받은 그는 1916년 조선 총독에 취임, 무단정치의 주역으로 군림했다. 하세가와마치는 1946년 동명 개정 시기에 소공동이란 이름으로 바뀌었다.

 

단카를 보자. 나도 모르게 마음 차분히 걷는 포장도로의 가로수 그늘에는 가을바람 불었네. おのづからこころしづかに步みゆく鋪道樹かげや秋風ふきつ.

 

조선호텔은 1914년 현 서울시 중구 소공동에 건립된 호텔이다. 조선총독부 철도국에서 조선 국왕의 제례를 행하던 환구단(또는 원구단)의 일부를 헐고 지은 건물이다. 처음에는 철도 호텔이라 불렸다. 호텔 내에 황궁우, 석고, 석조 대문이 남아 있다. 독일 건축 기사가 설계를 맡았다. 광복 이후 운영권이 일본인에서 조선인으로 넘어오게 되어 현재 조선호텔에 이르렀다.

 

일본 최초의 백화점인 미쓰코시는 조선에 건너와서 1906년 미쓰코시 백화점의 경성 출장소인 미쓰코시 오복점(吳服店)으로 출발하였고 1929년 미쓰코시 백화점 경성 지점으로 승격했다. 1930년 현 회현동 충무로 1가(소공로 63) 신세계백화점 본점 자리에 근대식 백화점 건물을 신축, 개점했다. 해방 후 동화백화점으로 상호를 변경, 1963년 삼성이 인수하면서 오늘날의 신세계백화점으로 이어졌다. 별이 빛나는 아름다운 밤 경성 미쓰코시의 옥상에는 가을의 화초들과 물소리.

 

1898년 10월 3일 남산 왜성대(倭城臺; 임진왜란 때 일본군의 주둔지였던 것에서 유래한 마을 이름)에 남산대신궁(南山大神宮)이 건립되었으며 1925년 5월 22일 조선신궁이 건립되면서 이름이 경성신사로 바뀌었다. 광복 후 해체되었으며 신사가 철거된 자리에는 현재 숭의여자대학교가 들어섰다.

 

약수대(藥水臺)는 지금의 종로구 가회동 취운정 아래의 약수대다. 취운정은 1870년대 중반 조선 후기의 정치가 민태호가 지은 정자로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가들의 회합장소로 이용되었다. 현재 정자는 사라지고 삼청동 감사원 뒤에 취운정 터가 남아 있다.

 

박문사는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추념하는 사찰로 이토의 23주기 기일인 1932년 10월 26일 현재 장충동 신라호텔 영빈관 자리에 완공되었다.

 

경복궁은 서울 종로 세종로의 조선시대 정궁으로 태조 이성계가 창건하였고 1592년 임진왜란으로 불타 없어졌다가 고종 때인 1867년 중건되었다. 중구 정동의 조선시대 궁궐인 덕수궁은 본래 명칭은 경운궁이었으나 1907년 고종 황제의 장수를 비는 마음에서 덕수궁이라 부르게 되었다. 덕수궁 안의 잔디밭에는 붉게 타오르는 사루비아(サルビア) 꽃이 지금 한창 피어 있다.(샐비어가 원래 이름이다. 영어로는 sage라 한다.)

 

조선총독부는 일제강점기 일본이 조선에 설치한 식민 통치의 중추 기구로 경복궁 근정전과 광화문 사이에 1926년 10월 건립되었다. 독일인 게로르크 드 라란데가 설계 초안을 마련하고 노무라 이치로가 마무리 설계를 한 총독부 청사는 당시 동양 제일의 건축물로 꼽힐 정도로 압도적 규모와 외관적 위용을 갖춘 건물이었다.

 

서대문편에는 이런 내용의 글이 나온다. 서대문을 부순다고 하는 날 살짝 소매에 넣어서 집에 왔네 바로 이 돌멩이를. 파고다공원은 지금의 탑골 공원이다. 고종 때 원각사 터에 조성한 최초의 공원이다.

 

경학원(經學院)은 1887년 조선 최고의 국립교육기관이었던 성균관이 개칭된 이름이다. 성균관은 유생들의 교육기관으로 명목만을 유지하다가 1894년 폐지되었다. 일제에 병합된 후 조선총독부가 남아 있던 성균관을 경학원이라는 이름으로 재개칭했다. 일제강점기 경학원은 천황의 하사금으로 설립되어 총독부의 식민 정책에 부합하는 교육기관으로 전락하였다. 1920년 명륜학원으로 개칭되었고 1937년에 명륜전문학원, 1942년에 명륜전문학교를 거쳐 1946년 성균관대학교로 이어졌다.

 

푸른 잎 짙은 은행나무 그늘에 오래된 공자님의 혼백 사당 절 올리기 잊었네.(은행나무가 있지만 ’행단; 杏壇’의 행은 살구나무라는 말이 있다. 살구나무가 유교의 상징나무라고 한다.) 신당리는 현 중구 신당동의 1936년 이전 명칭이다.

 

한강은 강원도, 충북, 경기도, 서울 등 한국 중부를 거쳐 서해로 유입하는 큰 강이다. 고기잡이 배 불빛 하나 비치는 강의 수면에 삐걱 노 젓는 소리 고요히 전해오네. 월파정(月波亭)은 조선 시대부터 한강 서남쪽의 노량진 부근 언덕에 존재했던 정자로 현재는 터만이 남아 있다.(동작구 노량진동 수산시장 내 15-1 번지) 일본의 토목청부업자였던 아라이 하쓰타로가 소유했었다. 해방 이후에는 국무총리를 지낸 장택상이 별장으로 사용하였다.

 

뚝섬(둑도; 纛島)편을 보자. 현 광진구 자양동과 성동구 성수동 1가에 걸쳐 있던 마을로 임금의 행차를 알리는 깃발인 둑기(纛旗)를 세운 곳이라는 의미다. 물이 흐르지 않는 삼전도에서 아득히 멀리 대청황제비석이 서 있는 것을 보네. 삼전도는 송파구 삼전동의 나룻터다. 조선시대 광주부 서북쪽 한강 연안에 있던 나루였으며 여주, 충주로 가는 길목이 되었다. 조선시대 한강도(漢江渡), 양화도(楊花渡), 노량도(露梁渡)와 더불어 4대 도선장의 하나였다. 글이 새겨진 비석 앞쪽 여진족 글자 못 읽어도 한 글자 한 글자를 눈으로 응시하네.

 

개운사(開運寺)는 성북구 안암동의 절로 1396년 무학대사가 현대 고려대학교 이공대학 부근에 창건하여 영도사라 하였던 것을 1779년 인파당(仁波堂) 축홍(竺洪) 스님이 지금의 자리로 옮기고 개운사라 하였다. 산 속 절에서 낮이 깊어갈 때에 마당 앞에는 백일홍이 만발해 어지럽게 피어 있네. 돌베개 삼아 구름이 돌아오길 기다린다는 이 산속 절 주련에 적혀 있는 글귀네.

 

망우리(忘憂里) 고개는 망우산 북쪽 능선에 있는 고개로 옛날부터 서울로 들어오는 동부 관문이었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조선 개국 후 묏자리를 정하기 위해 고심하다가 동구릉의 건원릉 터를 유택지로 정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이 고개에 이르러 잠시 쉬면서 주위의 산천기세를 둘러보고 오랜 근심을 잊게 되었다 하여 유래한 이름이다.

 

서빙고는 용산구 서빙고동에 있던 마을로서 조선 후기부터 국가에서 사용하는 얼음을 저장해 둔 빙고의 서쪽에 있던 마을인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 하늘 뒤덮은 구름의 어느 한 곳 햇빛 새나와 저쪽 편 기슭 물이 하얗게 반짝이네. 신촌(新村)은 조선시대에 새터말이라 부르는 것을 한자로 바꾸어 부른 이름이다. 산을 넘어 온 골짜기에 들국화 흐드러지게 꽃 피우고 낮 시간 고요하게 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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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문학 기행 - 방민호 교수와 함께 걷는 문학도시 서울
방민호 지음 / arte(아르테)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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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문학 기행이다. 다른 곳이 아닌 “설레는 마음 없이 생각할 수 없”는 서울 문학 기행이다. 열 명의 문학인들을 다루었다. 이상 시인, 윤동주 시인, 이광수 소설가, 박태원 소설가, 임화 시인, 박인환 시인, 김수영 시인, 손창섭 소설가. 이호철 소설가, 박완서 소설가 등이다. 우리의 서울을 “더 깊이, 더 넓게, 더 새롭게 알 수 있게 해주는 내용을 찾고 다듬어 이야기로 만”든 책이다.

 

이상은 슬프고 가난한 시인, 다재다능했지만 시대 상황에 좌절한 천재였다. 저자는 이상의 모더니즘과 관련해 알렉스 캘리니코스를 이야기한다. 모더니즘은 모더니티(현대성)가 가장 발달한 곳에서가 아니라 새로운 문물이 유입되는 낙후된 사회에서 나타난다고 한 사람이다.(어느 문헌에서 한 말인지 알려주었다면 좋았을텐데 책 뒤의 참고 자료 코너에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것은 소개되어 있지 않다.)

 

새로운 해석이 드러난 부분은 미츠코시 백화점 옥상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는 이상의 ‘날개’의 주인공의 행위를 푸코의 판옵티콘(일망 감시체계)을 전도(轉倒)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윤동주편에서 저자는 윤동주를 이야기하는 데 백석이 등장해 의아해하실지 모르겠지만 윤동주와 백석은 어떻게든 연결된다고 설명한다.(60 페이지) 윤동주와 연결되는 분은 많다. 윤동주가 히라누마 도쥬로 창씨개명했듯 송몽규는 소무라 무게이로 창씨개명했다.(74 페이지) “더 넓게“에 해당할 것이다.

 

저자는 윤동주의 별을 자연물과 인간의 운명이 연결되어 있다는 상응론의 관점으로 읽으며 루카치의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인용한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 있고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80 페이지)

 

세 번째 이야기는 이광수 이야기다. 이광수는 홍지동에 산장을 가지고 있었다. 이광수는 18세나 차이가 나는 모윤숙과의 사랑이 문제가 되자 ‘조선일보’ 부사장직을 사직하고 스님이 되겠다고 선언한 뒤 금강산으로 갔다. 그런데 이 길에 모윤숙이 동행했다. 어떻든 금강산에 찾아온 아내의 설득으로 서울에 돌아온 이광수가 지은 것이 홍지동 산장이다.

 

모윤숙은 ‘렌(Wren)의 애가(哀歌)’를 썼다. 이광수와의 사랑은 플라토닉 러브라는 주장을 담은 책이다. 이 사랑론을 반박한 사람이 나혜석이다. 나혜석은 사랑이란 영육의 조화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육체를 부정하는 정신적 사랑은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을 했다. 이광수의 소설 ‘사랑’은 모윤숙의 주장에 손을 들어준 작품이다.

 

박태원은 종로구 화동 1번지의 경성제일공립보통학교에 다녔다. 위치상으로 보면 청계천을 가로질러 학교를 다닌 것으로 보인다. 박태원은 이상보다 먼저 도시 공간의 역학에 관심을 가졌다. 모더니즘에는 반복되는 현재라는 개념이 있다. 그것이 일상성이다. 자본주의의 현대 세계는 삶의 반복성과 규율의 내면화를 중심으로 조직된 체계다.

 

박태원의 홀르 주인공으로 한 구보는 한낮에 다옥정의 집을 나선다. 어슬렁어슬렁 청계천변을 걸어 광교 모퉁이에 다다라 종로 네거리를 향해 걸었다. 거기서 구보는 전찻길을 건너 화신백화점쪽으로 간다. 구보가 들른 곳에 조선은행도 있었다.(125 페이지) 구보는 조선은행 앞의 커피숍에 들어가고 경성부청 앞을 지나 덕수궁 대한문 앞을 걷는다. 박태원은 경성부청 다음에 본 대한문의 모습을 매우 초라하게 그렸다.(127 페이지)

 

제국주의적 자본화 과정에서 식민지에 도시가 형성되는 유형은 셋이다. 1) 전통적인 중심지에 제국주의 권력이 침투해 도시를 변형시키는 것. 2) 전통적인 도시 옆에 신시가지를 조성하는 것. 3) 신도시를 건설하는 것.(앤서니 킹의 ‘도시문화와 세계체제’ 참고..경성은 첫 번째 예다.) 일제는 폭력적으로 서울의 전통적인 중심지를 심하게 훼손시켰다. 일본이 을지로와 퇴계로를 바둑판 모양의 직교형 도시로 만들었다.

 

‘1868(메이지유신) - 1874(개항) - 1884(갑신정변) - 1894(청일전쟁) - 1904(러일전쟁) - 1905(을사늑약) - 1910(한일병합)’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흥미로운 점은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는 구보가 남촌에 가는 장면이 없다는 점이다. 박태원은 기교주의자였다. 붓가는 대로 거칠게 쓰지 않았다는 의미다. 엄격한 구성에 의해 소설을 썼다는 의미다.(145 페이지)

 

임화는 짧은 생을 사는 동안 자본주의와 대항하는 미학적 대응물을 순차적으로 거쳐서 결국 마르크시즘에 당도한 시인이다.(171 페이지)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를 보자. 한국전쟁의 참화가 채 진정되지 않은 시기에 박인환은 명동에서 살다시피했다.(189 페이지) 그는 일제강점기에 오로지 일본을 경유해서만 서양 문화를 받아들이던 당대 문인들과 달리 직접 미국에 가서 그 세계를 경험한 사람이다.(193 페이지)

 

박인환이 치기(稚氣) 어린 낭만의 시를 쓰는 시인으로 알려진 이면에는 시인 김수영이 자리한다. 박인환은 이상이 죽은 날을 기려 ’이상 그가 떠난 날에‘라는 부제가 붙은 시 ’죽은 아폴론‘을 썼다. 김수영은 박인환을 신랄하게 비평했다. 저자는 박인환이 ’버지니아 울프, 인물과 작품‘을 먼저 쓰고 ’목마와 숙녀‘를 썼다고 말한다.(207 페이지)

 

울프가 전쟁 중 삶을 자살로 마친 것은 ’목마와 숙녀‘를 해석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박인환은 버지니아 울프에게 깊은 동질감을 느꼈다. 박인환이 이상을 깊이 평한 것은 진정성이 있어 보인다. 저자는 ’목마와 숙녀‘가 인파 속의 쓸쓸함과 외로움을 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221 페이지)

 

이호철의 ’서울은 만원이다’를 보자. 이호철은 1950년 12월 15일부터 열흘 동안 진행된 원산 철수 당시 미군 함정을 타고 부산으로 내려온 분이다. 이 배에 최인훈 작가도 있었다.(306, 307 페이지) ‘서울은 만원이다’는 제1차 전후 문학의 시기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나왔다.

 

박완서 작가의 ‘나목(裸木)’이 마지막 작품이다. 이 작품의 공간은 미쓰코시백화점이다. 현 신세계백화점이다. ”박완서는 일상성에서 예술을 배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일상성을 넘어서는 예술의 끝없는 가능성을 보았지요. 그러나 결국 작가가 최종적으로 선택하는 것은 생존, 생계, 일상성이라고 할 것입니다.“(365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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