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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문학 기행 - 방민호 교수와 함께 걷는 문학도시 서울
방민호 지음 / arte(아르테) / 201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서울 문학 기행이다. 다른 곳이 아닌 “설레는 마음 없이 생각할 수 없”는 서울 문학 기행이다. 열 명의 문학인들을 다루었다. 이상 시인, 윤동주 시인, 이광수 소설가, 박태원 소설가, 임화 시인, 박인환 시인, 김수영 시인, 손창섭 소설가. 이호철 소설가, 박완서 소설가 등이다. 우리의 서울을 “더 깊이, 더 넓게, 더 새롭게 알 수 있게 해주는 내용을 찾고 다듬어 이야기로 만”든 책이다.
이상은 슬프고 가난한 시인, 다재다능했지만 시대 상황에 좌절한 천재였다. 저자는 이상의 모더니즘과 관련해 알렉스 캘리니코스를 이야기한다. 모더니즘은 모더니티(현대성)가 가장 발달한 곳에서가 아니라 새로운 문물이 유입되는 낙후된 사회에서 나타난다고 한 사람이다.(어느 문헌에서 한 말인지 알려주었다면 좋았을텐데 책 뒤의 참고 자료 코너에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것은 소개되어 있지 않다.)
새로운 해석이 드러난 부분은 미츠코시 백화점 옥상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는 이상의 ‘날개’의 주인공의 행위를 푸코의 판옵티콘(일망 감시체계)을 전도(轉倒)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윤동주편에서 저자는 윤동주를 이야기하는 데 백석이 등장해 의아해하실지 모르겠지만 윤동주와 백석은 어떻게든 연결된다고 설명한다.(60 페이지) 윤동주와 연결되는 분은 많다. 윤동주가 히라누마 도쥬로 창씨개명했듯 송몽규는 소무라 무게이로 창씨개명했다.(74 페이지) “더 넓게“에 해당할 것이다.
저자는 윤동주의 별을 자연물과 인간의 운명이 연결되어 있다는 상응론의 관점으로 읽으며 루카치의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인용한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 있고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80 페이지)
세 번째 이야기는 이광수 이야기다. 이광수는 홍지동에 산장을 가지고 있었다. 이광수는 18세나 차이가 나는 모윤숙과의 사랑이 문제가 되자 ‘조선일보’ 부사장직을 사직하고 스님이 되겠다고 선언한 뒤 금강산으로 갔다. 그런데 이 길에 모윤숙이 동행했다. 어떻든 금강산에 찾아온 아내의 설득으로 서울에 돌아온 이광수가 지은 것이 홍지동 산장이다.
모윤숙은 ‘렌(Wren)의 애가(哀歌)’를 썼다. 이광수와의 사랑은 플라토닉 러브라는 주장을 담은 책이다. 이 사랑론을 반박한 사람이 나혜석이다. 나혜석은 사랑이란 영육의 조화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육체를 부정하는 정신적 사랑은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을 했다. 이광수의 소설 ‘사랑’은 모윤숙의 주장에 손을 들어준 작품이다.
박태원은 종로구 화동 1번지의 경성제일공립보통학교에 다녔다. 위치상으로 보면 청계천을 가로질러 학교를 다닌 것으로 보인다. 박태원은 이상보다 먼저 도시 공간의 역학에 관심을 가졌다. 모더니즘에는 반복되는 현재라는 개념이 있다. 그것이 일상성이다. 자본주의의 현대 세계는 삶의 반복성과 규율의 내면화를 중심으로 조직된 체계다.
박태원의 홀르 주인공으로 한 구보는 한낮에 다옥정의 집을 나선다. 어슬렁어슬렁 청계천변을 걸어 광교 모퉁이에 다다라 종로 네거리를 향해 걸었다. 거기서 구보는 전찻길을 건너 화신백화점쪽으로 간다. 구보가 들른 곳에 조선은행도 있었다.(125 페이지) 구보는 조선은행 앞의 커피숍에 들어가고 경성부청 앞을 지나 덕수궁 대한문 앞을 걷는다. 박태원은 경성부청 다음에 본 대한문의 모습을 매우 초라하게 그렸다.(127 페이지)
제국주의적 자본화 과정에서 식민지에 도시가 형성되는 유형은 셋이다. 1) 전통적인 중심지에 제국주의 권력이 침투해 도시를 변형시키는 것. 2) 전통적인 도시 옆에 신시가지를 조성하는 것. 3) 신도시를 건설하는 것.(앤서니 킹의 ‘도시문화와 세계체제’ 참고..경성은 첫 번째 예다.) 일제는 폭력적으로 서울의 전통적인 중심지를 심하게 훼손시켰다. 일본이 을지로와 퇴계로를 바둑판 모양의 직교형 도시로 만들었다.
‘1868(메이지유신) - 1874(개항) - 1884(갑신정변) - 1894(청일전쟁) - 1904(러일전쟁) - 1905(을사늑약) - 1910(한일병합)’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흥미로운 점은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는 구보가 남촌에 가는 장면이 없다는 점이다. 박태원은 기교주의자였다. 붓가는 대로 거칠게 쓰지 않았다는 의미다. 엄격한 구성에 의해 소설을 썼다는 의미다.(145 페이지)
임화는 짧은 생을 사는 동안 자본주의와 대항하는 미학적 대응물을 순차적으로 거쳐서 결국 마르크시즘에 당도한 시인이다.(171 페이지)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를 보자. 한국전쟁의 참화가 채 진정되지 않은 시기에 박인환은 명동에서 살다시피했다.(189 페이지) 그는 일제강점기에 오로지 일본을 경유해서만 서양 문화를 받아들이던 당대 문인들과 달리 직접 미국에 가서 그 세계를 경험한 사람이다.(193 페이지)
박인환이 치기(稚氣) 어린 낭만의 시를 쓰는 시인으로 알려진 이면에는 시인 김수영이 자리한다. 박인환은 이상이 죽은 날을 기려 ’이상 그가 떠난 날에‘라는 부제가 붙은 시 ’죽은 아폴론‘을 썼다. 김수영은 박인환을 신랄하게 비평했다. 저자는 박인환이 ’버지니아 울프, 인물과 작품‘을 먼저 쓰고 ’목마와 숙녀‘를 썼다고 말한다.(207 페이지)
울프가 전쟁 중 삶을 자살로 마친 것은 ’목마와 숙녀‘를 해석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박인환은 버지니아 울프에게 깊은 동질감을 느꼈다. 박인환이 이상을 깊이 평한 것은 진정성이 있어 보인다. 저자는 ’목마와 숙녀‘가 인파 속의 쓸쓸함과 외로움을 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221 페이지)
이호철의 ’서울은 만원이다’를 보자. 이호철은 1950년 12월 15일부터 열흘 동안 진행된 원산 철수 당시 미군 함정을 타고 부산으로 내려온 분이다. 이 배에 최인훈 작가도 있었다.(306, 307 페이지) ‘서울은 만원이다’는 제1차 전후 문학의 시기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나왔다.
박완서 작가의 ‘나목(裸木)’이 마지막 작품이다. 이 작품의 공간은 미쓰코시백화점이다. 현 신세계백화점이다. ”박완서는 일상성에서 예술을 배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일상성을 넘어서는 예술의 끝없는 가능성을 보았지요. 그러나 결국 작가가 최종적으로 선택하는 것은 생존, 생계, 일상성이라고 할 것입니다.“(365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