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이 존대어 시(명칭이 정확한지 모르지만)를 쓰는 이유는 무얼까? 누군가에게 물어보려다가 적당하지 않다는 생각에 그만 두고 내가 가진 시집들을 찾아보았다.

존대어 시란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로 시작하는 한용운의 ‘님의 침묵‘과 같은 시를 말한다.

물으려다 그만 두었지만 그런 마음을 가졌던 것은 유종인 시인의 입상(立像)이란 시를 보고서이다.

‘님의 침묵‘을 보고서는 그런 궁금증을 갖지 않았고 유종인 시인의 ‘입상‘을 보고 그런 생각을 갖는 것은 이상한 일일까?

˝아, 참 헷갈려도 좋은 다면체(多面體)구나, 요정을/ 버리고 절간으로 돌아든 마음이 그래도 여간 요염하/ 지 않았습니다˝ 이 부분이 ‘입상‘의 마지막 부분이다.

요정이란 백석 시인의 연인이었던 김영한 여사의 대원각을 말하고 절이란 길상사를 말한다. 시인이 말한 입상은 설법전 앞에 서 있는 이채로운 입상을 말한다.

권현형 시인의 ‘포옹의 방식‘에도 그런 시가 하나 있다.˝서울에 함박눈이 내린다는 소식/ 우주 밖의 일인 듯 아득해집니다/ 저는 지금 고대 왕조의 수도에 와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시.

˝다른 사람을 쳐다보지만 그 뒤에/ 가려진 당신을 보고 있습니다/ 부처는 지워지고 부처 손톱이 자라듯/ 나무가 성장통을 겪으며 자라고 있습니다/ 나무 뒤에, 뒤에, 우리는 아프게 서 있습니다˝로 끝나는 시.

‘역광‘이란 제목의 시. 그럴 줄 알았으면 지난 해(5월) 용산도서관에서 시 수업을 들을 때 물었으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지만 사실 나는 내가 들은 강의의 시인이 권현형 시인이란 사실은 알았던 반면(누가 강의하는지도 모르고 수업을 듣는 사람이 있는가? 묻는 소리가 들려올 것 같다.) 내가 그 시인의 시집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기억하지 못했다.

시집 속에서 낯익은 시들이 몇 편 보여 이름을 확인하니 그 시인이었다. 이 분의 시들 가운데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시들이 많다.

무엇보다 이 분의 시 강의 스타일이 마음에 들었다. 이론을 잘 활용하는 분이다.

내가 가진 ‘포옹의 방식‘ 외의 ‘중독성 슬픔‘, ‘밥이나 먹자, 꽃아‘ 등 나머지 두 시집도 제목만으로도 호기심이 생긴다.

그런 시집을 알게 되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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