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순천 이야기를 하다가 송광사, 선암사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자연히 두 사찰의 종파가 다르다는 데로 이야기가 이어졌다.

나는 두 사찰 중 정확히 어떤 사찰이 그런지는 모르지만 한 곳은 태고종이고 다른 곳은 조계종이라는 말을 했다.

내 이야기에 상대는 태고종, 조계종이 아니라 천태종, 조계종이라는 말을 했다. 반박하지 않고 나는 슬며시 검색을 해 내 말이 맞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가볍게 웃으며 그에게 검색 결과를 보여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런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생각해서다.

정확히 어떤 사찰이 조계종 사찰이고 어떤 사찰이 태고종 사찰인지 몰랐던 데다가 조계종과 태고종의 차이를 모르니 그들에 대해 거의 백지 상태나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어째서 그가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검색도 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옳다고 생각했는지가 궁금하다.

집에 돌아와 윤후명 작가의 ‘곰취처럼 살고 싶다’에 이런 구절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조계산(曹溪山)은 전라남도 승주군에 있는 산이다. 산을 경계로 동남쪽과 서북쪽으로 태고종의 선암사와 조계종의 송광사가 버티고 있다.”(176 페이지)

나는 태고종은 대처승들의 종파, 조계종은 비구, 비구비들의 종파라 아는 정도이다.

조선에서 풍수를 전면에 내세우는 경우도 정치적 이해관계라는 실제 동기가 있듯 불교에도 교리가 다른 경우도 정치적 이해관계가 사실상의 동기인 경우가 있을 것이다.

정치 이야기만도 아니고 교리 이야기만도 아닌 선후와 비중을 고려해 양자를 모두 아우르는 이야기를 나는 하고 싶고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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