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가 밥을 짓는 것이 아닌 죽을 쑤는 것처럼 느껴져 글쑤기라 명명하는 경우도 있겠고 한글의 빈문서를 빚문서로 읽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페북에 거(居)하는 글쓰기의 대가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글쓰기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을 보면 많은 생각이 명멸한다.

가스통 바슐라르 만큼 글쓰기의 어려움을 멋지고 낭만적으로 표현한 경우도 드물 것이다.

램프가 비추는 책상 위에 흰 종이가 펼쳐지면 고독이 증가한다. 흰 종이, 건너야 하지만 결코 건너지지 않는 거대한 사막. 매일 밤을 새울 때마다 하얗게 남아 있는 흰 종이는 끝없이 다시 펼쳐지는 고독의 거대한 표시가 아닌가..

바슐라르는 이런 말도 했다. ˝인간은 고통이 아니라 기쁨 속에서 자기 정신을 발견했다. 잉여의 정복은 필요의 정복보다 더 큰 정신의 흥분을 준다. 인간은 욕망의 창조물이지 결코 욕구의 창조물이 아니다.˝(‘불의 정신분석‘)

욕구는 생물학적이고 사회적인 필요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고 욕망은 내적으로 충만한 잉여에 바탕을 둔 것이다.

글쓰기도 그렇게 몽상을 하듯 내적 충만에 의해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과학이 생계수단만 아니면 경이로울 텐데˝란 말을 한 사람은 아인슈타인이다.

˝과학자는 유용함 때문에 자연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 속에서 희열을 느끼고 그 아름다움에 희열을 느끼기 때문에 연구한다.˝는 말을 한 사람은 앙리 푸앙카레이다.

무엇이든 유용함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로 아름다움과 희열을 느낄 수 있어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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