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라는 시를 생각한다. 고(故) 최진실 씨가 나온 영화에 인용되어 널리 알려진 시이다.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나는 사실 "슈베르트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 건반을 폴리니가 때리니 스피커들이 미리 알고 슬퍼하는구나.." 같은 명상적인 시(이 시의 제목은 '면벽面壁'이다.)나 '꽃의 고요' 같은 시집에 수록된 달관의 시들이 더 마음에 든다.

그럼에도 '마지막 편지'를 생각하는 것은 '사소한 일'이란 말 때문이다.

사소한 일이란 말이 생각나게 하는 것은 내가 숨쉬고 걷고 일하고 읽고 쓰는 일련의 행위들이다. 그냥 몸짓이고 마음짓이라 해야 옳을지도 모를..

"오로지 그냥 쓰는 일, 오로지 그냥 절하는 일, 오로지 그냥 앉아보는 일, 나의 부처님 공부는 그 자리에서 시작되었으며 지금도, 앞으로도 변함이 없으리라 생각한다."는 말을 한 김정아 시인처럼 나도 그런 사소하지만 버릴 수 없는 것으로 읽기와 쓰기를 생각한다.

어쩌면 내 몸 그리고 마음짓은 볕을 흘려버리기 아까워 빨래를 해 너는 마음으로 하는 어떤 것이다. 그냥 유유자적인 잉여의 행위..

하이젠베르크가 고교 방학 숙제로 플라톤의 '티마이오스'를 읽게 된 사연은 극적이다. 그는 그 책에 나오는 데미우르고스라는 조물주가 설계도를 보고 물질 공간인 코라를 빚어 우주를 창조하는 부분을 보고 영감을 얻어 불확정성원리를 고안했다.

코라가 설계도를 완전히 따르지 않은 것이다. 미세한 어긋남이 생긴 것이다.

당시 그가 책을 읽던 곳은 볕이 좋은 옥상이었다. 이 부분을 알게 된 뒤부터 나는 읽기를 낭만의 한 유형으로 생각해왔다.

그가 만일 볕이 좋지 않은 날 책을 읽었다면 어쩌면 다른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말하면 실례일까?

오래 지속될 미래를 생각하게 된다.(새벽 세 시가 가까운 이 늦은 때에..) 사소한 것을 대하듯 가벼운 평상심으로 보내야 할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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