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와 포천은 내가 사는 연천(漣川)과 접경(接境)하는 지자체들이다. 접경 시()인 파주에 사시는 최동군 작가께서 올린 글과 고현희 선생님께서 링크한 또 다른 접경 시()인 포천에 관한 글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최동군 작가님의 글은 파주 지역에 거주하면서 파주의 역사, 고전, 문화, 인문학에 관심 있는 몇몇 사람들이 스터디 모임을 만들었다는 글이고, 고 선생님께서 링크하신 글은 포천시립 소흘 도서관에서 진행한 인문학 기행 소식을 알리는 글이다.

 

경북 영주의 부석사와 소수서원에서의 최근 프로그램에서 강연자인 김현철 님은 자신의 행동준칙을 타인 위함에 두고, 다독을 하면 인생 후반부가 빛나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는 말을 했다.

 

부러운 모임이고 인상적인 기행이자 말이다. 나는 잠시 나를 돌아보게 되는데 어쩌다(?) 조선 궁궐과 조선 왕릉, 유교 등을 공부하고 있지만 고려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하리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같은 군()에 속해 있지만 거리가 꽤 먼 미산면 숭의전지에서 제 8회 연천 고려문화제가 열린다.(이번 주 토요일: 1021) 미산면은 고려 태조를 비롯한 7왕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숭의전(崇義殿)이 있는 곳이다.

 

선사 박물관과 구석기 유적지가 있는 같은 군끼리인 전곡에서 미산까지보다 미산에서 다른 시인 파주가 더 가까운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파주의 심부(深部)와는 사정이 다를 것이다.

 

연천 고려문화제가 열리는 미산면이 가깝다면 나는 어땠을까? 지금까지 구석기 축제에 고작 한 번 간, 그리고 선사박물관은 한 번도 가지 않은 내 습()을 고려하면 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나는 조선과 깊은 관계를 갖는 서울은 멀기 때문에 좋아하고 빠진 것인가? 그것은 아니겠지만 묘한 마음이 든다. 그제 정동 해설에서 나는 이 세계 밖이라면 어디든이라고 말했던 시인 보들레르의 습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무언가가 몸에 익은 것 즉 습()은 무언가에 빠져 들고 젖어드는 것이니 젖을 습()이라 해도 될지 모르겠다. 어떻든 자연을 산책한 몽상가인 18세기 루소와 함께 이야기한 19세기의 보들레르는 유행의 물결과 도시의 거리를 걸은 몽상가였다.(김상환 지음 해체론 시대의 철학’ 359 페이지) 해설은 걷기이며, 걷기는 몽상이란 생각이 든다.

 

(꼭 유교 국가여서는 아니지만) 내가 조선에 약산성의 양가감정을 갖는 것은 리()는 유교 형이상학(:)이 불교의 공()을 보고 만든 형이상학적 개념이라는 말을 들은 것과도 연관이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정조와 정조 이후를 통해 다시 정조를 문제시하는 책을 접하게 되면서부터이다. 더 읽어야겠지만 정조와 정조 이후는 세도(勢道) 정치의 책임은 정조라고 주장하는 책이다.

 

(관념적인) ‘주희(朱熹)에서 (실학적인) 정약용(丁若鏞)으로를 슬로건으로 삼았지만 정약용에서 주희로를 생각할 때가 되었다는 한형조 교수의 말이 조금 이해되는 듯 싶다. 나의 양가감정은 자료를 보는 방식의 차이로 나타난다. 동기들은 역사 자료를 그대로 원용(援用)하지만 나는 다르게 쓴다.

 

창덕궁 금천교(錦川橋)의 대칭을 이루는 두 개의 홍예(虹蜺)를 설명할 때 대칭인 나비 날개 사진을 보여준 것이 한 예이다. 생물학의 중간 화석과 제논의 역설을 연결지어 설명해 한 자연과학자로부터 참신하다는 말을 들은 부분은 설명이 길어지고 재미없을 듯 해 생략...

 

그나저나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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