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펜젤러는 정동(貞洞)에 가면 자주 들을 수 있는 이름이다. 정동 제일교회와 배재학당을 세운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 이화여고 6대 교장을 지낸 그분의 따님 아펜젤러..

정동 제일교회와 배재학당을 세운 아버지 아펜젤러는 헨리 아펜젤러(Henry Appenzeller: 1858 – 1902)이고 이화여고 6대 교장을 지낸 따님 아펜젤러는 앨리스 레베카 아펜젤러(Alice Rebecca Appenzeller: 1885 – 1950)이다.

헨리 아펜젤러는 44세에 성경 번역을 위해 목포로 가는 배에서 한국인 소녀를 구하다가 물에 빠져 목숨을 잃는다.

마이어 구겐하임의 여섯째 아들인 벤자민 구겐하임이 1912년 딸 페기 구겐하임의 생일에 가려고 타이타닉호에 탔다가 배가 가라앉기 시작하자 여자와 아이들을 구명 보트에 태우고 자신은 정장 차림으로 신사답게 죽을 것이라면서 구명 조끼를 거부하고 죽은 것을 생각나게 한다.(아,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 솔로몬 구겐하임 미술관..)

앨리스 레베카 아펜젤러는 1912년 이화여고 교사가 되었고 1922년에는 교장이 되었다. 이화여고 창립자는 감리교 선교사 메리 스크랜턴(Mary Scranton: 1832 – 1909)이다.
헨리 아펜젤러 선교사가 배재학당을 설립하자 이에 자극을 받아 이화학당을 설립했다.

한편 고종과 명성황후 민씨의 주치의이자 선교사였던 알렌은 호레이스 뉴턴 알렌(Horace Newton Allen: 1858 – 1932)이다.

헨리 아펜젤러와 동갑이다. 장로교 선교사인 언더우드는 호레이스 그랜트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 1859 – 1916)이다.

그런데 “정오가 되면 성공회쪽 담을 넘어 종소리가 들린다/ 시내의 한복판에서 듣는 종소리는 일종의 슬픔과 같은 것이었다..”는 김용범 시인의 시는 어디서 전문(全文)을 찾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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