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독실(篤實)한 신앙인으로 알려진 한 기독교 신자 부부가 갑질의 주체로 떠오른 것은 씁쓸한 일이다. 과연 새벽 교회에서 무슨 기도를 했을까 궁금하게 하는 그 부부에 대해 내가 할 것은 규탄(糾彈)이 아니다.

언론은 독실이라는 말을 신앙 행위만 보고 쓰지 말거나 독실을 도타울 독(篤)과 방자할 실(肆; 이 글자는 방자할 사이기도 하다.)을 써서 독실(篤肆)이라고 하든지 해야 할 것이다.

언론에 문제가 있다. 그런 새 갑질 인생들이 등장하면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는 말을 할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알려졌지만 이제는 아닌 기독교 신자라고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그런 갑질을 한 사람에게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기독교에도 좋은 일이 아니다.

교회 열심히 출석하고 헌금 잘 내고 미소 지으며 적당히 교양 있는 척하는 사람에게는 갑질을 해도 독실한 신자라는 이름을 붙인다면 교회를 욕보이는 일이 된다.

예수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 언론에서 그런 식으로 독실이란 말을 무분별하게 써왔기에 냉소를 부르는 것이다.

물론 기독교인들이 냉소의 대상이 되거나 욕을 듣는 것은 언론의 책임이기 이전에 기독교인들이 보인 행태 자체로 인해서이다.

신앙 양심과 일상에서의 양심이 일치하지 않거나 상충하는 사람은 온전한 사람이 아니다. 그런 기독교인들을 독실한 신앙인이라 부르는 언론은 문제 있는 언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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