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으로 하여금 결혼과 사랑을 분리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책이었다는 미국의 페미니스트 작가 벨 훅스의 말은 다소 의외이다.(‘사랑은 사치일까?’ 참고) 책은 체험보다 더 소중한 것일까?
훅스는 타인을 향한 사랑을 통해 기꺼이 과거의 정체성을 떨쳐내고 영혼의 어두운 밤으로 들어가 우리 존재의 거대한 신비로움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는 경험을 통해서만 얻어진다는 말을 강조한다.(책과 체험을 우열을 가려야 할 대상으로 나누지 말 것.)
어떻든 그런 분리의 결과 훅스가 포기한 것은 결혼이고 떨칠 수 없었던 것은 전능한 사랑에 대한 믿음이었다고 한다.
약 2년 만에 ‘사랑은 사치일까?’를 다시 읽는 내 눈에 새롭게 들어오는 것은 사랑은 우리가 내면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을 때에만 찾아오며, 사랑의 여정은 자기인식을 감수(甘受)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말이다.
훅스는 미국의 정신분석가 존 웰우드의 말을 인용하는데 그에 의하면 타인과의 관계는 그저 내면의 삶의 확장에 불과하며 자기 자신과 열려 있는 관계를 맺을 때에만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그럴 수 있다.
이런 유의 사유를 우리는 유식(唯識) 불교의 저서인 ‘대승장엄경론(大乘莊嚴經論)’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붓다는 실로 어떤 진리도 설파하지 않으셨다. 자신의 내면에서 진리를 깨달아야 함을 통찰하셨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문제는 “당신이나 나나”(허수경 시인의 표현) ‘내면의 사랑’을 발견하고 ‘자기인식’을 감수하는 일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