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A는 세계 3대 요리학교의 하나인 Culinary Institute of the America의 약자이다. 그곳에서 유학한 뒤 귀국해 요리와 미술을 주제로 칼럼을 쓰다가 그림책까지 내게 된 최지영. 요리와 그림의 관련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내 관심은 그가 미술서를 탐독하고 갤러리를 제 집 드나들 듯 오가며 애정을 키워 나간 끝에 미술 교양서를 썼다는 사실에 닿아 있다.

 

여기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세잔이다. 그는 사과를 많이 그린 화가이다. 그런데 그를 보며 그림과 먹을 것의 연관성을 논할 수 있는지 자신하지는 못하겠다. 세잔은 사과를 먹을 것으로 보고 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잔은 참으로 다양한 색깔의 사과들을 그렸다. 세잔은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본 사과들이 필연적으로 하나의 각도를 형성하는 화폭에 공존하는 그림들을 그렸다.(이정우 지음 ‘세계의 모든 얼굴’ 94 페이지)

 

세잔은 모델들에게 심한 부동성(不動性)을 요구했다. 세잔은 초상화 하나를 그리는 데도 백 번도 넘게 모델을 세웠다. 이런 이유로 인해 그의 후기에는 주로 아내의 초상과 자화상이 주를 이룬다. 세잔은 모델에게 사과처럼 가만히 있을 것을 요구했다.(전영백 지음 ‘세잔의 사과’ 238 페이지) 이 글만 보면 세잔이 사과를 움직이지 않을 수 없는 사람 대신으로 활용한 것으로 알겠지만 세잔에게 사과는 그런 의미를 훨씬 뛰어넘는다.

 

궁금한 것은 앞서 이야기한 ‘그림의 맛’의 저자(갤러리를 제 집 드나들 듯 오갔다는..)가 갤러리에서 어떤 걸음을 걸었을까, 이다. 거트루드 스타인은 미술관 안에서는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걸으라는 말을 했다.(요한 이데마 지음 ‘미술관 100% 활용법’ 25 페이지) 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대상을 보기 위해 한 자리에 오래 머물지는 않았을까?

 

카뮈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관(棺)을 닫기 전 어머니와의 마지막 인사를 거절했다. 반면 세잔은 생트빅투아르산을, 자신의 예술적 뜻을 이해해주고 끊임없이 후원해주었던 어머니의 장례가 있던 날에도 찾았다.(전영백 지음 ‘세잔의 사과’ 375 페이지) 세잔은 그 산에 오래 머물려 그림을 그렸다. 차이가 있다면 ‘그림의 맛’의 저자는 그림을 공부한 것이고 세잔은 화가여서 한 군데 오래 머물러야 했다는 점이다.

 

세잔은 빛에 반사된 산이 아닌 산의 존재감 자체를 그리려 한 화가라 말해진다. 대상을 입체적으로 조합한 뒤 분할하는 등의 방법 등으로 그림으로써 세잔의 생트빅투아르산은 실재하는 생트빅투아르산과 사뭇 다른 모습이 되었다. 실재보다 그림을, 대상보다 표상을 중요하게 여긴 결과일 것이다. 그간 너무 소원(疎遠)했던 세잔을 통해 현대 미술로 진입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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