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宮闕)에 대한 관심이 압도적 크기의 건축물에 대한 관심으로 전이(轉移)되고 있는 듯 하다. ‘생의 철학과 건축이론‘이란 책을 샀고 ’건축을 위한 철학‘을 다시 읽고 있다. 공포에서 비롯되는 감정인 칸트의 숭고(崇高)라는 개념으로 압도적 크기의 건축물을 보려는 생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지난 24일 경복궁 단청(丹靑) 시연 때 나는 정전(正殿)인 근정전(勤政殿)을 크기가 압도적인 건물이라 설명했는데 이는 아마도 무의식 차원에 자리한 숭고(崇高)에 대한 관념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초기 불전(佛典)인 소연경이 말하는 집의 기원에 대해 더 상세하게 알려는 마음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 경전은 마음으로 이루어진 신체를 가지고 밝게 빛나면서 자유로이 허공을 떠다니던 중생들이 감천(甘泉)이라는 거품 맛에 빠진 결과 신체의 광명이 사라지고 해, 달, 별, 낮과 밤, 계절 등이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이때부터 탐욕이 생기고 성의 분화가 생겼다.

 

그리고 중생들은 자신들의 성행위를 숨기기 위해 집을 짓기 시작했다.(안성두 외 지음 ’붓다와 다윈이 만난다면‘ 34, 35 페이지) 캐롤 던컨의 ’미술관이라는 환상‘과 백상현 교수의 ’라깡의 루브르‘에서 공통적으로 다루어진 루브르가 생각난다.

 

백상현 교수의 ’라깡의 루브르‘에서 설명된 루브르는 신경증, 히스테리, 강박증, 멜랑꼴리 등의 증상이 드러나는 미술품들을 전시한 공간 즉 정신병동이다. 캐롤 던컨의 ’미술관이라는 환상‘에서 설명된 루브르는 공적인 국가의례의 장이다. 한겨레 신문의 건축 담당 기자로 활약했던 구본준 저자의 2주기를 맞아 나온 ’세상에서 가장 큰 집‘이 나를 붙든다.

 

베르사유 궁전은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한 규모의 건축물이다. 베르사이유는 권력을 과시하는 극장이다. 구본준 기자의 책은 경복궁도 포함되어 있어 다루어져 더욱 관심을 끈다. 문제는 이해와 수용이다. 고통스럽지만 즐거운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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