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 그렇지만 지난 주 선정릉 수업 시간에 나는 선생님께 정현왕후, 단경왕후 등이라 말하지 않고 정현왕후 윤씨, 단경왕후 신씨 등이라 말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것입니까란 질문을 드렸다. 다행히(?) 그렇지 않다는 답이 돌아욌다. 사실 예의에서 벗어난 것이라면 명성황후 민씨라 하지 않고 민비(閔妃) 식의 호칭을 하는 것이리라. 우리는 가령 정조(正祖)라고는 해도 그의 이름인 이산(李蒜)을 이용해 그를 산왕(蒜王)이라고는 하지는 않는다.
이런 식의 불평등은 너무 많다. 이른 아침 강남순 교수님의 글을 읽었다. 대통령을 비난하는 오피니언 리더들(대부분 남자들)의 발언에 성차별 및 여성혐오적 감정이 강하게 섞여있는 것을 우려하고 새로운 전환을 촉구하는 글이다. 역시 좋은 글은 문제를 제기하는 글이고 그에 답하는 형태로 글을 쓰게 하는 하는 힘이 있는 글이다. 평소 생각하는 바이지만 사람들은 남자가 잘못하면 그 사람 개인 문제로 사태를 대하지만 여자가 잘못하면 역시 여자는 안된다는 식의 말을 한다.
여성혐오나 여성차별의 정서는 판도라의 상자(또는 항아리)라는 말을 하는 것으로도 강화된다. 가령 ‘최** 판도라의 상자 열리는가‘ 식으로. 판도라는 온갖 불행을 넣어둔 상자(또는 항아리)를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열었다고 알려진 그리스 신화의 최초의 여자이다. 하지만 김상준의 ’심리학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판도라는 헤시오도스에 의해 실상이 왜곡된 피해자이다.
남성신들이 득세함으로써 기존에 자리를 잡고 있던 여성신들은 남성신들에게 자리를 뺏기거나 격하되고 심지어 판도라처럼 악명높은 여자로 전락한 것이다. 헤시오도스 사태는 어쩌면 니체가 말한 소크라테스 - 에우리피데스에 의한 비극의 죽음 만큼 문제적이라 할 수 있다. 여성에 방점을 두는 것이 아닌 대통령에 방점을 두는 바른 참전(參戰)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