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편지 - 죽음을 통해 풀어낸 더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
신정일 지음 / 판테온하우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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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에는 무슨 일로 울기라도 하면 사내가 눈물이 흔하면 안된다는 말을 듣곤 했습니다. 심지어는 ‘예로부터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만 운다’라는 말이 내려온다고까지 했습니다. 태어났을 때,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 그리고 나라가 망할 때야말로 남자가 울어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눈물을 흘릴 일을 당해도 겉으로 표현하지 말고 속으로 삭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연행에 나선 연암선생이 요양의 백탑이 모습을 드러내는 산모롱이에서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어 이마에 얹고는 “훌륭한 울음터로다! 크게 한번 통곡할 만한 곳이로구나!(박지원 지음,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상) 135쪽, 그린비, 2008년;  http://blog.joins.com/yang412/13129725)라고 외쳤다는 것을 읽고는 생각을 고쳐먹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가 뭔가 잘 못 알고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런 생각은 전송렬교수님의 <옛사람들의 눈물; http://blog.joins.com/yang412/12254105>을 읽으면서 분명해졌습니다. ‘조선의 만시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옛사람의 눈물>에는 모두 35편의 만시(挽詩)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만시(挽詩)란 죽은 자를 애도하여 지은 시를 말합니다. 이 책에 실린 만시 가운데 허난설헌과 남씨 부인이라는 두 사람의 만시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조선의 사대부라는 남성들의 작품입니다. <옛사람들의 눈물>에는 아내를 위해 지은 도망시(悼亡詩), 친구를 위한 도붕시(悼朋詩), 먼저 간 자식을 위한 곡자시(哭子詩) 외에 스승과 제자, 선배, 심지어는 자신이 데리고 있던 종을 위해서 지은 만시, 나아가 자기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기린 자만시(自輓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만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감정을 억누르며 살았다고 배워온 조선시대의 사대부들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추사 김정희선생이 제주에 유배 가있는 사이에 세상을 하직한 아내를 위하여 지은 만시입니다. “那將月姥訟冥司 來世夫妻易地爲 我死君生千里外 使君知我此心悲(나장월모송명사 내세부처역지위 아사군생천리외 사군지아차심비; 뉘라서 월모에게 하소연하여 / 서로가 내세에 바꿔 태어나 / 천 리에 나 죽고 그대 살아서 / 이 마음 이 설움 알게 했으면”(전송열 지음, 옛사람들의 눈물 105쪽, 글항아리, 2008년)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에 대한 안타까움, 미안함 그리고 원망 등 복잡했을 심사가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전송렬교수님은 시는 때로 긴 호흡으로 설명하는 산문보다도 더 애절하게 우리의 감성을 흔들어놓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슬픔을 설명하지 않는 만시에서 오히려 깊이 농축된 한없는 슬픔을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만시(輓詩)를 통하여 죽음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했던 조선의 사대부들이 다른 형식으로는 슬픔을 표현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고, 문화사학자 신정일님의 <눈물편지>에서 그 의문이 풀렸습니다. 선인들은 특히 사람이 죽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피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의학수준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었던 옛날에는 명대로 살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서 특히 슬퍼할 일도 많았을 것입니다. 저자는 ‘지극한 슬픔 뒤에 찾아오는 눈물이 나를 서럽게도 했지만 살게 했던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라고 서문에 밝히고 있습니다. 나아가 ‘슬픔으로 흐르는 자연스러운 눈물을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 그 자체이다. 하지만 정작 슬픔이 아름답다고 깨닫게 되는 것은 오랜 세월이 흐른 뒷일지도 모른다.’라고 했습니다. 슬픔에 굴복하여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은 애도하는 과정에서 슬픔을 승화시켜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아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슬픔의 감정을 가슴에 담아 억누르기보다는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고 하는 것입니다.

 

<눈물편지>의 저자는 어린 자식, 배우자, 형제자매, 그리고 벗과 스승을 잃은 슬픔을 담은 시, 제문 혹은 서한문 등 산문을 통하여 그 슬픔을 느껴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어린 자식을 잃은 슬픔을 담은 글들은 윤선도가 막내아들의 죽음을 전해 듣고 지은 시의 한 대목 ‘눈물은 수저에 흘러내리고’를 제목으로 하여 모았습니다.

 

첫 번째 글은 다산 정약용이 네 살 된 막내아들 농(農)이 죽었다는 소식을 유배지에서 듣고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다산은 남양 홍씨와 결혼한 뒤 19년 동안 10여명의 아이를 두었지만, 큰 아들과 작은 아들 외에는 모두 요절했다고 합니다. 편지에 쓴 농은 여덟 번째 아이였던 모양입니다. 농의 죽음을 전해 듣게 된 다산은 ‘오호라, 내가 하늘에서 죄를 얻어 이처럼 잔혹한 일이 벌어지니 이를 어찌할거나’라면서 울부짖었다고 합니다. 자식을 앞세우는 일이 얼마나 참혹한 일이었으면 참척(慘慽)이라고 하겠습니까? 전염병에 속수무책이었을 조선시대에는 지금보다도 자식을 앞세우는 일이 더 많았을 것입니다. 다산은 자신의 애달픔도 가누기 어려운 지경이었을 터임에도 아내가 겪고 있을 고통에까지 마음을 쓰고 있습니다. “생사고락의 이치를 조금은 깨달았다는 나의 애달픔이 이러할진대 하물며 네 어머니야 뱃속에서 직접 낳은 애를 흙구덩이 속에 집어넣었으니 그 애가 살았을 때 어리광부리던 말 한마디, 귀엽던 행동 하나하나가 기특하고 어여쁘게만 생각되어 귓가에 쟁쟁하고 눈앞에 삼삼할 것이다. 더구나 여자들이란 정이 많아 이성에 의지하지 못하는 것이 십상인데 얼마나 애통하겠느냐?(19쪽)”라며 두 아들에게 어머니를 잘 모시도록 당부한 것입니다.

 

다산은 여자들이 감성에만 의지한다고 보았지만, 심의당 김씨를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열여덟 살에 죽은 큰딸을 위해 심의당 김씨가 지은 제문에서 그녀는 슬픈 심사를 이렇게 적었습니다. “아아, 슬프다! 사람이 일찍 죽는 것을 누군들 원망스럽고 한스럽게 여기지 않을까마는 어찌 너처럼 장성하여 요절함만 같음이 있겠느냐. 사람의 부모라면 누군들 비통하지 않을까마는 어찌 나처럼 후회하면서 슬퍼함과 같겠느냐.(82쪽)” 슬픔이 지극함에도 불구하고 심의당 김씨는 “어쩔 수 없구나! 세월은 지나가고 이승과 저승의 길은 다르니(…) 아아, 슬프다. 운명이 아닌 것이 없으니, 오직 편안하게 거처하기를….”이라고 마음을 추스르고 있습니다. 슬픈 감정을 이성적으로 잘 다스렸던 것으로 보입니다.

 

자신의 과실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사람이 드문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을 것 같습니다만, 조선시대의 가사문학을 꽃피우게 했던 송강 정철은 남다른 면모를 가졌던 것 같습니다. 기축옥사에서 많은 동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송강 역시 정쟁에서 밀려 유배를 가야했습니다. 유배 중에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적은 제문에서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네 배필을 가릴 때 애혹(愛惑)에 빠짐을 면치 못하여 병이 든 사람에게 출가시키어 두어 달 만에 네 남편이 죽으니 나이가 겨우 스물 둘이었다. 유약한 네가 이런 참혹한 변을 당하여 곡벽을 절차 없이 하며 죽기로 작정하고 먹지를 않아 하루에도 몇 번씩 기절을 하니 이 소식을 들은 나는 차마 가까이 할 수조차 없었다.(55쪽)” 송강이 애달파한 것은 사위가 될 사람의 건강을 미리 챙겨보지 못해 딸이 청상에 과부가 된 것이었고, 남편을 앞세운 딸이 먹는 것을 조심스러워하면서 천식을 얻어 병이 깊어져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 모두 자신의 잘 못이라고 탄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애혹(愛惑)이라 함은 여자와 사랑에 빠져 눈이 멀었다는 의미인 바, 딸의 결혼을 앞두고 젊은 여인과 사랑에 빠져 집안을 제대로 챙기지 않았음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또한 후회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즈음 남편들은 아내가 죽으면 울다가도 화장실에 가서 웃는다는 우스갯말이 있습니다. 이런 우스갯말을 주고받을 정도의 세태가 되었나 싶으면서도 옛날에는 어떠했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눈물편지>에 수록되어 있는 조선의 사대부들을 보면 대체로 아내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담긴 글을 남기고 있습니다. 순조시절 지방관을 역임한 심노숭이 “아내를 잃고 너무 슬퍼하는 자는 세상에서 비웃는 까닭에 아내를 잃은 자는 풍속을 두려워하여 그 슬픔을 숨긴다.(심노숭 지음, 눈물이란 무엇인가 17쪽, 태학사, 2002년; http://blog.joins.com/yang412/12280442)”라고 적은 것을 보면 조선 말기 이르러서야 남자의 눈물을 비판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던 모양입니다.

 

명종 때 사간을 지낸 권문해는 마흔아홉이 되던 해 후사도 없이 아내가 죽었습니다. 30년을 같이 산 부인에 대하여 그는 이렇게 칭송했습니다. “엄전한 모습과 아름다운 덕을 지녀 집안을 화평하게 하고, 부녀의 도리를 다하여, 짜증을 부리거나 시샘하는 것을 우리가 부부로 맺어진 이래 30년 간 나는 한 번도 보고 듣지 못하였소.(95쪽)” 며느리의 수의를 시어머니가 직접 지었다니 고부간의 사이도 아름다웠던 것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여든 노모가 생존해계서서 봉양은 물론 돌아가셨을 때 장례를 어떻게 모실 것인가 하는 권문해의 걱정은 오히려 아내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에둘러 말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그대는 상여에 실려 저승으로 떠나니 나는 남아 어찌 살리. 상여소리 한 가락에 구곡간장 미어져서 슬퍼할 말마저 잊었다오’라고 애달픈 심사를 마무리하는 것을 보면 그의 슬픔이 얼마나 지극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권문해는 아내의 죽음 이후에 슬픔에 빠져 울면서 지내느라 일기마저도 쓸 겨를이 없었다고 합니다. 사실 앞서 아내가 죽으면 화장실에 가서 웃는다는 남편이 있었기나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혼자 된 남자의 허리춤에 이가 서 말이라는 옛말처럼 혼자된 남편의 모습은 아무리 잘 보아주려해도 그럴 수가 없다는 이야기가 오히려 더 실감이 날 것 같습니다.

 

심노숭의 아내는 죽음을 앞두고 ‘공연히 지아비 잠깨우지 마세요. (…) 가군께 인사를 못 드리니 죽어가면서도 더욱 마음이 아픕니다.(115쪽)’라고 했다고 합니다. 아내가 아프면서 멀리 나가지 못하고 머뭇거렸다는 심노숭이 아내 완산 이씨의 영전에 바친 제문도 인용되어 있습니다. 슬픔과 눈물에 대하여 천착한 심노숭은 무려 26제의 시와 23편의 문을 남겨 아내를 애도한 것도 공연한 일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심노숭은 파주에 새로 집을 지어 이사를 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이사도 하기 전에 아내가 죽음을 맞았던 모양입니다. 덩그렇게 큰 집을 홀로 지키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마치 길가는 나그네 같은 느낌이 들었던 심노숭은 “불교에 원업이란 말이 있다. 말하자면 인과라는 말인데, 당신은 낙토(樂土)로 갔는데, 나는 악도(惡道)에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네(113쪽)”라고 스스로의 신세를 한탄합니다.

 

죽은 아내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만시에 함축적으로 담았던 김정희는 아내에 바치는 제문에도 절절한 마음을 담아냈습니다. “아아, 나는 강 앞에 있고 산과 바다가 뒤를 따랐으나 아직 내 마음을 흔들리게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한낱 아내의 죽음에 놀라 가슴이 무너지고 마음을 걷잡을 수 없으니, 이 무슨 까닭인가. 아아, 대체로 사람마다 죽음이 있거늘 홀로 부인만 죽음이 없을 수 없으리오. 죽을 수 없는데 죽은 까닭에 죽어서 지극한 슬픔을 품게 되었을 것이고 기막힌 원한을 품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장차 품어내면 무지개가 되고 맺히면 우박이 되어 족히 공부자(孔夫子)의 마음이라도 움직일 수 있었기에 지고보다도 더 심하고 산과 바다보다도 더 심함이 있는가 보다.(120-1221쪽)” 유배에 처해졌음에도 흔들림 없던 마음이 아내의 부음에는 황망해질 지경이 되었다는 것이고, 아내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마음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책읽기를 마치고서는 한 가지 의문이 남았습니다. 예로부터 아버지의 죽음을 천붕지통(天崩之痛)이라고 했습니다.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고통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인륜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조선의 사대부들이 천붕지통이라고 하는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지극한 슬픔을 담은 글은 없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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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미술 ㅣ 아트 라이브러리 17
로버트 어윈 지음, 황의갑 옮김 / 예경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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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여행에서 만난 이슬람 유물들과 이번에 준비하고 있는 터키에서 만날 이슬람 유물에 대한 미술사적 호기심을 풀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읽은 로버트 어윈의 <이슬람 미술>은 생각했던 것보다 잘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본문 앞에 넣은 지도에서는 1250년부터 1800년경까지 이슬람세계를 표시하였는데, 서쪽으로는 피레네 산맥을 경계로 이베리아반도 전체를, 지브롤터해협을 건너와 모로코의 마라케시가 위치한 위도을 유지하면서 이집트에 이르기까지 아프리카의 북쪽을 포함하고, 아라비아반도는 물론 동쪽으로는 사마르칸트 동쪽까지 인도의 북부 지역을 아우르고 있고, 북으로는 카프카스산맥에 이르고, 터키반도는 물론 보스포루스해협을 건너 발칸반도의 북쪽에 이르고 있습니다. 지중해에서는 시칠리아 섬과 이탈리아반도의 남쪽 끝까지 영역에 포함되고 있습니다. 물론 시대적으로는 이슬람제국의 흥망성쇠가 있었으니 강역의 변화가 있었습니다만, 생각해보면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이라 로마제국도 차지해보지 못한 광대한 영역이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자는 이슬람 미술을 시대적으로 구분하여 연대기적으로 기술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점을 미리 밝히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제별로 광범위한 접근 방식을 택하였고, 오늘날 이슬람의 영향이 미치고 있는 인도나 동남아시아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까지는 포함할 수 없어, 스페인과 모로코로부터 아프가니스탄까지 반건조기후대의 이슬람 미술을 시기적으로는 5세기로부터 17세기 후반까지로 국한하고 있다고 제한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광범위한 지역에서 발전한 이슬람 미술이 남긴 다양한 유물들을 인용하여 그 미술사적 의미를 정리하고 있어, 시대적으로 이를 주도한 세력들에 대한 설명이 곁들여져 있어 이슬람예술을 큰 틀에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이슬람세계의 역사적 배경을 요약하고, 이슬람 건축물을 종교 건축물과 세속적 건축물로 구분하여 설명하였고, 시대별로 들어선 이슬람제국의 예술적 취향을 설명합니다. 궁전에 대하여도 스페인을 비롯하여 이집트, 중동지역에 들어선 제국의 왕궁에 대하여 개별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건축양식은 물론 내부 장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헌자료를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스페인 그라나다에 있는 알람브라 궁전의 벽에 새겨진 “이 가운데 있는 물동이의 물은 하나님의 기억을 믿는 신자의 영혼과 같다(61쪽)”라는 내용의 명각을 인용하였는데, 이어서 하나님을 제외하면 모든 형태가 소멸하여 세상만물이 덧없다는 것을 내포한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슬람의 웅장한 무덤에 관한 글에서 저자는 이슬람 초기에는 수 세기에 걸쳐 화려한 무덤을 세우는 것이 용인되지 않았고, 예언자 무함마드의 가르침에 따르면 무덤 앞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조차 금지되었다고 하는데, 모로코의 라바트에 있는 하산왕의 거대한 무덤을 보면서 이렇듯 거대한 무덤이 왜 필요했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터키 이스탄불의 아야 소피아성당의 예를 보면서 우리는 이슬람이 다른 문명을 파괴하지 않았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만, (사산왕조의) 페르시아인들이나 이슬람 이전의 아랍사람들처럼 이슬람 초기에는 이전 왕조의 흔적을 철저하게 지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면 코르도바에 있는 메키스타 역시 그리스의 신전에서 뽑아온 기둥들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고트의 교회 위에 세웠다고 했던 것을 보면 이해가 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건축물은 세밀화는 물론 직물, 그리고 도자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미술품과 거기에 적힌 내용까지도 인용하여 그 배경을 설명하고 있어 이슬람 미술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책의 말미에 붙여둔 연대표에는 역사적 사건과 예술 및 건축 그리고 문학과 과학을 시대적으로 구분하여 비교가 가능하도록 한 것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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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소비자라면 - 야무진 소비자라면 알아야 할 시장경제 지침서
이종인 지음 / 이담북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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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복잡해지다보니 새롭게 등장하는 것들에 대하여 호기심보다는 두려움 같은 것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문제가 눈앞에 닥치기 전까지는 무엇이 문제인지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그러다보니 정작 문제가 생기게 되면 문제의 내용을 알지 못하여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기 일쑤인 것입니다. 옛말에도 ‘알아야 면장을 한다’라고 했습니다. 새롭게 등장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깊이까지는 몰라도 수박 겉핥기식으로라도 파악은 하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여의도연구원의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계신 이종인교수께서 쓴 <당신이 소비자라면>을 읽게 되었습니다. ‘야무진 소비자라면 알아야 할 시장경제 지침서’라는 부제가 달려 있기도 합니다만, 소비자라는 좁은 시각에서가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이런 문제들은 파악하고 있으면 좋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였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당신이 소비자라면...?’이라는 질문에 가까운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답으로 ‘이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이렇게 당신의 권리를 주장하십시요’라는 적극적 입장표명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하였더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저자는 소비자라는 개념과 권리에 관한 담론을 풀어내고, 이어서 건강한 경제, 안락한 주거, 안전한 국가, 공정한 사회, 그리고 소비자를 위한 행복한 정책 등 총 여섯 가지의 주제에 관하여 소비자의 시각에서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를 설명하였습니다. 각장의 말미에 붙인 공감문답은 해당 주제에 관하여 책을 읽는 사람들의 소비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문답식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소비자라고 하면 우리가 살면서 쓰고 있는 다양한 상품들의 소비만을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소비의 의미는 더 넓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도 다루고 있는 것처럼 국가가 시행하고 있는 정책들의 궁극적인 소비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건강한 경제에서 논하고 있는 기름값이나 일반약의 수퍼판매, 혹은 안락한 주거에서 논하고 있는 것처럼 다양한 주택정책과 치솟는 전세수수료 등과 같이 우리 실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문제에 있어서는 우리가 소비자임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전한 국가, 공정한 사회, 행복한 정책 등의 문제는 쉽게 피부에 와 닿지 않는 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자가 국내외의 사례들을 참고로 하여 설명하는 것을 읽다보면 왜 이런 부문에서도 우리가 소비자인지를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공직 인사에 관한 문제도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 우리들 가운데 누군가도 중요한 자리를 맡아할 수도 있는 투명한 인사정책이 펼쳐지려면 소비자인 국민들이 제대로 목소리를 내야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마나, 일반약 수퍼판매에 관하여 설명하면서 이를 의사와 약사의 집단이기주의가 깔려 있다는 양비론적 입장에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고 하겠습니다. 일반약의 수퍼판매를 약계가 반대하는 것은 당연히 자신들의 영역을 내놓아야 하기 때문이겠습니다만, 의료계가 찬성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이라는 점입니다. 즉 경증의 환자가 수퍼에서 일반약을 사먹고 치료가 가능하다면 의사를 방문하지 않게 되기 때문에 진찰료와 처방료를 받을 기회가 줄어들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의료계에서는 국민들의 편의성을 고려하여 찬성하는 입장을 내놓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런 점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듯합니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소비자는 모든 경제활동의 중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산자와 비교하면 늘 약자로 인식되어왔습니다. 저자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소비의 주체인 소비자가 약자의 위치를 벗어나기 위해 알아야 할 것들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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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트 특급살인 ㅣ 애거서 크리스티 추리문학 베스트 2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유명우 옮김 / 해문출판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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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들은 오래 전부터 읽어왔고, <쥐덫>처럼 무대공연으로도 여러 번 만나보았습니다. 터키여행을 앞두고 있어 <오리엔트 특급살인>을 다시 읽어보면 또 다른 느낌이 들 것 같았습니다. 이 작품은 영국 런던에서 유럽대륙을 가로 질러 터키의 이스탄불까지 운행하는 오리엔트 특급열차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파리에서 이스탄불까지 운행하는 오리엔트 특급열차는 공식적으로는 1883년 10월 4일 파리를 출발해서 루마니아의 지우르지우에서 다뉴브강을 건너 불가리아의 바르나까지 기차로 운행하고 바르나에서 이스탄불까지는 페리로 운항하는 코스였다고 합니다. 오리엔트 특급열차가 태동하게 된 계기는 1882년 벨기에의 조르주 나겔마케르가 1882년 10월 10일 18시 30분에 파리를 떠나 다음날 23시 20분에 빈에 도착하고, 10월 13일 16시 40분에 빈을 출발해서 다음날 20시에 파리로 왕복한 초호화열차를 운행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 열차는 2개의 수하물 차와 58개의 침대를 갖춘 침대차 그리고 식당차로 구성되었습니다. 이후에 알프스 산맥을 관통하는 터널들이 잇달아 개설되면서 취리히, 베니스 등을 거치는 노선들이 추가되었고, 아테네까지 운행하는 노선도 개설되었습니다.

 

1930년대 무렵 오리엔트 특급열차는 호사스러움이 극에 달해서 왕족과 귀족, 외교관, 사업가들이 애용하게 되었지만,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동유럽국가들이 공산화되면서 생긴 국경문제로 운행이 중단되는 노선이 생겼고, 항공노선이 확대되면서 위축되기 시작한 오리엔트 특급열차는 1970년대 들어 고속도로와 고속도로가 발달하면서 유지가 어렵게 되고 결국 1971년 오리엔트 특급열차를 운영하던 국제침대차회사가 운영에서 손을 뗐고, 1977년 직행 오리엔트 특급이 폐지되었습니다. 2009년 빈과 스트라스부르를 연결하는 오리엔트 특급열차가 부활되기도 했지만, 다음해 다시 폐지되고 말았습니다.

 

잘 알려진 작품이기는 하지만 추리소설이기 때문에 이야기를 요약하는 것은 역시 적절치 못한 것 같습니다. 전체 이야기는 살인사건이 일어나기까지의 정황과 배경을 설명하는 ‘사건’편에 이어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의 증언을 듣고, 증거물을 확보하는 ‘증언’편이 이어지고, 우리의 주인공 포와르가 증거와 증언을 꿰맞추어 사건을 해결하는 ‘포와르, 앉아서 생각하다’편으로 구성됩니다. 사건은 그림에서 보시는 것처럼 이스탄불을 떠난 오리엔트 특급열차가 베오그라드역서 아테네로부터 올라온 열차와 결합하여 운행하던 중에 눈에 갇혀 있는 동안에 살인 사건이 일어났으니 일종의 밀실살인의 전형이 되는 셈입니다. 결국 범인은 오리엔트 특급열차의 1등실과 2등실 승객들 가운데 있는 셈입니다. 공작부인, 백작부부, 대령 등 한눈에 보아도 호화캐스팅에 국적 또한 다양한데,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국적에 따른 민족성의 차이 등에 대한 이해 역시 중요한 관심대상이 되겠습니다.

 

이야기의 초반에 나오는 데베넘양이 “이 기차는 6시 55분에 도착해야 돼요. 그리고 우리는 보스포루스해협을 건너서 9시 정각에 심플론 오리엔트 특급 열차를 타야 해요.”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비엔타를 경유하는 노선이 아니라 베니스를 경유하는 노선입니다. 그러니까 사건은 유고슬라비아에서 일어난 셈입니다. 사건은 오리엔트 특급열차에서 일어났지만, 이야기는 시리아의 알레포역을 떠나 이스탄불까지 가는 토러스 급행열차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열차의 이름에서도 느낌이 옵니다만, 터키의 토러스산맥의 경치는 정말 장관인가 봅니다. 에르큘 포와르는 프랑스군의 초청을 받아 모종의 중동문제를 해결하고 돌아가는 길이었고, 이스탄불에서 2~3일 머물면서 구경을 할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초청한 장군은 소피아성당이 멋진 곳이라고 추천합니다. 하지만 포와르는 영국에서 온 한통의 전보를 받고 사건이 일어난 오리엔트 특급열차에 타게 되는 것입니다. 사건의 전개와 범인이 남겨놓은 증거들, 그리고 열차승객들의 증언들 사이에 정교하게 힌트를 담아서 독자들로 하여금 사건을 추리하도록 하는데, 사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힌트들이 추가되기 때문에 독자가 생각하는 범인도 바뀌어 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독자의 추리능력이 떨어진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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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름살 수술 대신 터키로 여행간다
수잔 스왈츠 지음, 이혜경 옮김 / 나무생각 / 2002년 10월
평점 :
품절


낚였다는 표현이 딱 맞는 경우입니다. 터키여행에 대한 조언을 담았을 것으로 생각하고 고른 책이었는데, 터키에 관한 이야기는 한 줄도 읽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우아하게 늙어가기’라는 또 다른 관심주제에 관한 내용이어서 조금은 위안이 되었습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터키에 대해 언급한 부분은 딱 한 줄입니다. “담당의사가 (성형) 수술하기 전에 심전도검사를 받으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검사결과가 부정맥과 심장판막에 이상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나왔어요. (…) 심전도 검사결과로는 성형수술을 하게 되면 죽을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는 거였으니까요. (…) 주름수술할 돈으로 터키와 그리스로 여행을 다녀왔어요.(96-97쪽)” 저자는 주름수술할 돈이 있어서 터키여행을 했지만, 저는 주름살을 수술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터키여행을 다녀올 돈을 따로 마련해야만 하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입니다.

 

저자는 “어느 날 아침잠에서 깨어 ‘빌어먹을. 벌써 쉰이네.’하는 생각이 들 때 집어 들고 읽을 수 있는 책”을 쓰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특히 폐경기에 접어든 장년의 여성들에게 ‘우리가 자신의 진정한 나이를 인정하지 않으려 든다면 현재의 자신뿐 아니라 다음 단계의 자신까지 속이는 것이다.(8쪽)“라고 조언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여성들 역시 나이 먹는 것이 죄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나이 드는 것에 대하여 기대감을 가지고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을 깨우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서문이 아니더라도 저자는 이 주제를 다루기 위하여 무수히 많은 여성들을 인터뷰하고, 그 결과들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먼저, 나이듦을 정의하고, 청춘과 중년은 단지 종이 한 장 정도의 차이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를 이겨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인터뷰한 사람들의 의견을 너무 많이 인용하다보니 저자의 견해가 무엇인지 모호해지는 것 같습니다. 머리염색에 관한 내용을 잠시 보면, 30대부터 흰머리가 나기 시작했던 여성은 일찍부터 염색을 해서 흰머리를 가렸는데, 50이 되면서 흰머리를 그대로 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20대부터 새치가 많았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오래 전부터 염색을 하면 젊어 보일 것이라는 조언을 듣고는 있지만 생긴대로 살겠다는 생각 때문에 염색을 심각하게 고려한 적은 없습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대부분 미국여성들이지만 요즈음의 추이를 보면 우리나라 여성들과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데 ‘열정의 불을 지피자’라는 주제에서 보면 중장년 여성들이 성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특히 폐경기에 접어들면 임신에 대한 걱정이 사라지는 한편 성욕도 그런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반면에 남성들의 상대적으로 성기능이 위축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괴리가 생길 수도 있어서 조화를 이루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서로의 진심을 터놓고 의논을 하면 의외로 좋은 길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알랭 드 보통역시 <인생학교 섹스>에서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성문제는 의외로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은데 기인한다고 보았습니다.

 

요즈음의 화두는 성형수술을 받거나 보톡스를 찾는 등 들어가는 나이를 거슬러 보겠다는 처절한 몸부림이 대세인 것 같습니다. 저자는 이런 대세와는 달리 나이듦을 인정하고 나이듦에 따라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 인생을 제대로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수많은 중장년 여성들을 만나서 얻은 결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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